모든 지나간 잊혀진 직장인들을 위하여
#애프터 치앙마이
어째, 월요일은 늘 야근이다.
월요일인 오늘 한참 야근을 하고 밤11시가 넘어 귀가한 참이다.
아까인 9시부터인가, 심장을 조여오는 느낌에 시달렸지만 당장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 작업의 초안 완성은 끝내놓고 왔다.
사실 이틀 전에는 낮에도 심장 떨림 증상이 너무 심해서 비상용으로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처음으로 복용하기도 했다.
신경정신과에 방문한 첫 날, 의사 선생님은 자기 전에 복용할 약과 더불어 낮에 비상사태(공황발작)가 발생했을 때 먹을 약도 추가로 처방해주셨다.
그 이후로 세 달이 지났나, 밤에 먹는 약만 먹었지 낮에 먹는 비상약은 먹지 않는다는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는데 결국 낮에 먹는 약에도 손을 대버린 것이다.
불안장애 증상에서 순조롭게 회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아찔한 기분이다.
최근 들어서 증상이 심해진 까닭은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여러 갈등 상황이 있었고, 오늘은 만들어진지 3개월된 우리 팀이 반으로 쪼개진다는 소리를 인사팀에게 갑작스럽게 전달받았다. 같이 일하던 팀장님은 쪼개진 다른 팀의 팀장으로 가고 내가 속할 팀의 팀장님은 뜬금없이 다음주부터 출근이라고 한다.
조직개편이 잦은 곳이라는 소리는 들었는데 3개월만에 이럴 줄이야.
그 이유에는 나와 같이 입사한 팀장님이 경영진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고 내가 잘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경영진의 탓...
어쨌건 경영진과의 갈등에 멘탈이 나간 팀장님이 나에게 하소연을 시작한지는 오래된 일이고 팀장님이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자 영향을 받은 팀원들은 각자 나에게 힘듦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 일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고 나는 그 빈 틈을 메꾸기 위해 나름의 노력은 했다고 생각한다. 야근에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일을 했고 비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회사의 실세 앞에서 따져 묻기도 했다.
어떻게든 일을 해보려 했는데 3개월만에 팀이 분리되자 팀원들은 동요하고 누군가는 냉소적이 되었다. 역시 여기서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반응.
그러니까 또 업무 공백이 생겨서 오늘 그걸 채우려 야근을 하고 돌아온 참이다.
한 달 전인가, 심리상담가 선생님이 나에게 파산 직전의 은행같다고 한 말이 딱 맞기는 한가보다. 나를 챙길 여력도 없는데 남을 챙기다가 다 퍼주고 나에게 남은 건 심해진 불안 증상 뿐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 일을 하다가 이대로 죽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세상을 떠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일을 하다가 쓰러져 간 많은 직장인들. 외국의 어딘가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지만 현재의 한국에서는 전쟁만큼 지독한 일 때문에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내가 가진 걸 다 퍼주더라도 나는 내 주위에서 힘들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야근을 해서라도 그 사람들의 일을 덜어주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나야 불안증상이 극대화되어서 자살사고가 커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일에 몰두해야하는 사람이니까. 하는 김에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그렇다면 일을 하다가 나도 쓰러져 죽는다고 해도 무의미한 죽음은 아니지 않을까?
이 무슨 비논리적인 사고의 흐름인가 싶지만 오늘은 왜인지 나를 앞서서 쓰러져간 많은 직장인들을 떠올렸고 그들에게 깊은 연민의 마음을 느꼈다.
오늘의 야근은 그들을 위한 나만의 일종의 추모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