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치앙마이
쉬기 위해서 온갖 발악을 하는 중이다.
회사와의 갈등으로 강제 휴식 중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못 쉴 줄이야.
최근에는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밤에 누워도 몇 시간을 계속 심장의 비트박스를 듣다가 겨우 잠든다. (신경안정제를 먹었는데도 이렇다)
잠을 잘 자려고 오후 6시 이후에는 금식을 하고 자기 전에 핸드폰을 안 보려고 노력 중이지만 쉽지는 않다. 책도 보고 필사도 하고 손 놓았던 태국어 공부도 하지만 그때 잠시 마음의 평화를 찾고 말 뿐이다.
인정중독 말고는 기댈 곳이 없었던 것일까?
어려서는 부모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가 원하는 부모님의 애정이라는 결과물은 얻지 못한 듯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애정결핍은 공부나 일, 여행, 운동, 음주와 같은 다른 것으로 채웠다. 현실세계에서의 나는 부모님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아빠가 소리 지를까 걱정하는 아이였지만 뭔가 잘하는 게 생기면 속으로는 '이거 봐, 나는 못난 사람이 아니야'라는 위안을 느꼈다. 때로는 자만하기도 했다. 말도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라 종종 재수 없다는 소리도 듣는다.
그중에 가장 큰 분량을 차지한 것은 단연 일인데, 그 일이 중단되니 내가 느끼는 불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나 이번처럼 나의 의지와 다르게 일이 중단된 것은 처음이라 더 그렇다. 낮에는 복용 중인 신경안정제 약기운이 몸에 도는데 할 일이 없으니까 꾸벅꾸벅 졸기 일수다.
며칠 전에는 같이 일했던 팀장님이 잠시 동네 근처에 들를 일이 있다고 해서 만났다. 나를 보시더니 '조금 더 쉬는 게 어때요?'라고 했다. 눈에 총기가 완전히 사라져서 아직 안 돌아왔단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일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정서적인 지지를 받는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오, 너무 마음에 와닿는 말이라 그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정서적 지지라. 부모님에게도 받아본 일이 없어서 타인에게 그런 걸 받는 것을 아예 믿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일에 내 모든 걸 바치는 건 그렇게까지 옳은 선택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일을 잘해서 받는 인정이 정서적 지지는 아니지 않을까?
예전에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어떤 영화에서 그가 마약중독에 시달리다가 벗어나는 과정을 연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찾아보니 '앙코르'라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는 시간 문제상 그가 '너무도' 괴로워하는 연기로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는 장면을 묘사했다. 하지만 그게 고작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겠는가. AI에게 질문하니 약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10%만이 마약중독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난다고 한다. 90%는 실패한다는 소리다.
내가 인정중독, 애정결핍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로 사는 것도 마약중독에서 벗어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까.
그러니까 만만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싶다. 정말로 일하다가 죽기 전에 나에게 내려진 마지막 기회.
일단 그전에 마음 편히 쉬는 법부터 배워나가야겠다. 물론 이것 저것 시도할 뿐 방법은 아직 모르겠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