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치앙마이
상황: 불안장애 치료 + 팀장과의 갈등으로 회사의 무급 병가 요청을 받고 일종의 대기 발령 중
운동 다니는 곳이 회사 근처라(*집과 회사는 그리 멀지 않다) 계속 하루에 한 번은 회사 근처로 나오는 중이다. 불안장애에는 운동만한 처방이 없는지라 집에서 아무리 무기력하게 있어도 어떻게든 운동은 하러 나오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회사 출근길과 똑같은 길을 나서며 회사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는 것이다. 나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몇몇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한 인사팀 팀장이나, 그 말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나를 길들이려고 한 우리 팀 팀장이나 둘 다 생각하면 할수록 열이 받는다. 내가 15시간씩 일하며 그들의 수고를 덜어줬을 때는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더니 나에 대한 안 좋은 말이 나오자 빛의 속도로 반응하다니. 이런 사람들에게 일희일비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기분이 나쁘다. 기분이 나쁘지만 기분이 나쁜 것을 멈출 수 없다.
오늘은 운동을 가는 길에 회사 직원을 만났다. 그녀는 기쁘게 나를 부르며 안부를 물었지만 내 상황을 얼핏 알기에 대화를 길게 이어가지는 못했다. 눈빛이 파르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기에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굳이 볼 일은 없는 사람일 것이다. 왜인지 모를 허무함이 밀려왔다.
인사팀장에게 찍혀서 일을 그만두게 된 이전팀 팀장님이 나에게 이런 소리를 했었다.
'A 씨, 그렇게 일해줘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너무 자신을 갈아가면서까지는 일하지 마'
처음 그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누가 알아주는 것을 바라고 일하는 것이 아닌데요'라고 생각했지만 또 그렇지는 않았나 보다.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고 이런 식으로 대하는 회사에 너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한 야근만 합쳐도 풀타임으로 한 달은 될 텐데 무급 휴가를 강요하는 게 말이나 되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결국 나의 문제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그 무언가(회사, 친구, 가족 등등)를 붙잡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회사나 타인의 반응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붙잡고 화를 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나 자신을 위해 화를 좀 내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마음도 존재한다. 나 아니면 누가 나 자신을 위해 화를 내준단 말인가.
나 정도면 훌륭한 직원이라고, 너네가 어딜 가서 나 같은 직원을 구할 수 있냐고.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서 나를 공격하는 너네가 잘못된 거라고.
화는 실컷 내되 이 화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걸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이번 강제 병가는 그래도 어떤 의미가 있기는 할 거다.
번아웃이 터졌을 때는 치앙마이에 갔고, 치앙마이에서 불안장애와 공황발작이 터졌을 때는 격한 운동을 하면서 다스렸고, 한국에 와서 증상이 심해지자 정신과에 갔고, 그리고도 안 되니까 심리상담도 받았다.
계속 멈추지 않고 사방에서 일이 터지지만 나도 계속 멈추지 않고 대응하는 중이다.
정말 훌륭하지 않나?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내는 이 훌륭한 직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들의 능력 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