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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마케팅은 이제 안녕

#애프터 치앙마이

by 송송당

얼마 전 이전 직장의 팀장님을 만나 점심을 함께 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어 왜 이렇게 살이 쪘어?!"를 외쳤고 나는 속으로 당황했다.


나름 두 달째 크로스핏도 하는 데 살이 쪘다고? 그 길로 당장 체중계를 사서 몸무게를 재보니 아뿔싸, 그의 지적이 정확했다. 퇴사하고 불과 한 두 달 사이에 7kg가 쪄 있었다.


작년에 치앙마이에서 일 년간 무에타이를 하면서 뺀 13kg가량의 살이 한국에 돌아와서 그대로 다시 쪄 있었다.


젠장,


나는 한 숨을 푹 쉬고는 주말부터 다시 다이어트 모드에 돌입한 참이다.


나는 평생 살이 찌면 나쁘다는 공포 마케팅에 시달렸다.


이건 그 누구도 아닌 부모님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


부모님은 엄마 아빠 할 것 없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이 찐 나에게 압박을 줬다. 남들 앞에 보이기 부끄러워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20대 중반에 크게 다이어트에 한 번 성공하고서야 나는 그들의 칭찬을 받았지만 이후 3년 정도를 폭식증에 시달려야 했다.


말 그대로 먹고 토해냈다.


살은 빼기만 하는 게 끝이 아니라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건 이후 수차례의 요요를 반복하며 배웠다.


수차례의 다이어트를 반복한 끝에야 나는 음식을 먹고 토하는 것을 멈췄다. 이제는 건강해지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지 살이 찐 나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이어트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금주 상태인 데다가 외부의 충격(퇴사)이라는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요인으로 생활 습관이 엉망이 되어서 살이 찐 것으로 판단하기에 습관을 올바로 돌려놓으면 살은 자연스럽게 다시 빠질 것이라 생각한다.


몸에 대한 인식이 일종의 공포마케팅이라고 생각하니 얼마 전 봤던 한 유튜버의 영상이 떠오른다.


그는 고독사를 두고 '고독사가 비참한 것이라는 인식'자체를 공포 마케팅이라고 보았다. 흔히 고독사를 다루는 미디어는 고독사 현장을 두고 끔찍하고 애처롭고 비참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대체 혼자 죽는 것이 왜 나쁘다는 것인가? 꼭 자식들에 둘러싸여서 '감사했어요'라는 말을 들으며 죽는 것이 이상향이란 말인가? 죽음조차 이상향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죽을 때도 '혼자 죽으니 난 실패했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죽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의 영상을 보고 왜인지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서도 이 이야기를 했을 정도다.


왜 이렇게 세상은 나에게 겁을 못 줘서 안달인가.


모델 같은 몸을 자랑하지 않아도, 혼자 조용히 살아도,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전문직이 아니어도 나는 거의 그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으면서 충실히 세금을 납부하며 사회에 해 안 끼치고 잘 살아가고 있다.


내가 두려워할 것은 없다.


내 두려움의 근원을 계속 파헤쳐 내려가다 보니, 그 어떤 것도 말이 되는 것이 없다.


나이가 마흔이 근접해서야 이제야 공포 마케팅도 튕겨낼 수 있게 되었나 보다. 그렇다면 이 나이 듦도 꽤 근사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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