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한 달 차 돌아보기

#시끄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일기쓰기

by 송송당
금주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는 날이다.


금주를 첫 시작한 날인 8월 25일이 공황발작으로 극도로 불안한 시기였음을 생각하면 지금의 이 마음상태에 감사하고 누군가에게 절이라도 해야 할 일이다. 근심 걱정은 평소와 비슷한 수준이나 적어도 걷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30일, 짧으면 짧고 길면 길었다


술을 끊고 무에타이 수업을 15회 나갔는데 생각만큼 살이 쑥쑥 빠지지는 않는다. 다만 얼굴만큼은 부기가 굉장히 많이 빠져서 거울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


치앙마이에 온 한국인 중 나만큼 재미없게 지내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자신한다. 하루에 한 번 글을 쓰러 근처 카페를 찾는 것 말고는 굳이 맛집을 찾아다니지도 않고 운동 아니면 어학원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생활을 한다.


어제는 어학원에 다녀온 후 몸이 안 좋았는지 오후 1시 즈음에 집에 들어와서 간단하게 식사하고는 낮부터 다음날인 오늘 오전 10시까지 내내 잠만 잤다. 15년 정도를 술에 절어있었던 몸이 한 달 금주한다고 금방 좋아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인간의 노화가 본격화된다는 만 35세 이후가 아닌가. 태국 음식도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이 없다시피 해서 태국 음식으로 건강 챙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집에서 최대한 음식을 해 먹으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거나 너무 더워서 지치면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팟타이 같은 것을 잔뜩 시켜 먹는데 먹고 난 다음 속이 좋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인도에서 길거리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체력이 남아돌던 시기가 고작 10년 전인데 서글픈 생각까지 들었다.


술을 처음 마셔본 것은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술을 마셔본 적도 없는 나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정확히 소주 1병을 마시고 신촌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헤롱거림을 만끽했다. 물에 잠겨서 둥둥 떠있는 기분이었다.


대학생 시절은 내가 모르는 새로운 세상을 배워나가는 시기였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패스트푸드점이라든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봤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핸드폰을 샀고 해외에도 나가보았다. 우리 집은 부자인 것도 가난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빠는 나와 같은 대학교를 다니는 친구네 아빠들과는 달랐다. 어떤 친구는 차를 몰고 다녔고 어떤 친구는 기사가 학교로 데리러 오기도 했다. 나는 갑자기 그런 친구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기에는 옷도 허름했고 살도 찌고 얼굴도 예쁘지 않았다.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인데 그때는 그런 생각은 나쁜 거고 자신감을 갖고 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준비도 못한 채로 너무도 새로운 세상에 갑자기 발을 들였고 주변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자극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 술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평생 술 한 번 마셔본 적이 없던 나는 대학교 3학년 즈음이 되어서는 칵테일을 마시러 다녔다.


대학교에서 어울리는 무리들은 꼭 술을 함께 마시러 다녔다. 술을 마셔서 친해졌고 만나서 술을 마시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무리들 중 누군가는 연애를 했고 누구랑 누가 사귄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또 술을 마셨다. 어떤 선배는 나에게 담배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에는 아빠에게 논리적으로 말대꾸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갈등은 극심해졌는데 20대가 넘은 나에게 아빠는 예전처럼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수위 높은 언어폭력으로 대체했다. 나는 사람의 입에서 이렇게까지 많은 욕이 끊임없이 나올 수 있는지를 아빠를 통해 배웠다. 그 스트레스를 친구들과 술로 풀었다.


그때 함께 술을 마시고 나의 시간을 할애하였던 친구들 중 지금 만나거나 연락하는 친구는 거의 없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자발적 아웃사이더의 길을 택했을 텐데, 나는 애정결핍이었고 소속감을 원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가 끊임없이 파티를 벌이고 공허해하는 장면을 보면 나는 그만큼 이룬 것도 없으면서 그 외로움에 깊게 공감한다.


그렇게 누군가의 애정을 갈망하고 술을 마셨던 나는 2023년 현재의 치앙마이에서는 은둔생활을 하는 것처럼 혼자 조용히 지내는 중이다.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무례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를 거절하기도 했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지금 타인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나 자신을 깊게 탐구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 분명하다.


원래의 나라면 혼자 여행을 가도 여행지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 항상 일행을 만들어 함께 다녔기에 '여행을 혼자서 해본 적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글을 쓰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것도 체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지금의 나에게는 그럴 체력이 현저히 떨어졌구나 싶기도 하다. 지금은 그저 천천히 체력을 회복하고 글을 쓰면서 타인이 아닌 나에게만 집중해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다시 사람을 만나고 싶을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은 작년에 왔었던 일본식으로 꾸며진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창 밖으로는 작게 정원이 보이고 간간이 새소리가 들린다. 나에게 욕하는 아빠 목소리도, 불안을 호소하는 엄마의 목소리도, 사업을 따와야 하는데 지금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고 독촉하는 팀장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고요함을 즐길 수 있을 때 깊게 즐기자.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일 수 있다. 아니, '고요함을 즐겨야 한다'도 스스로에게 강압적인 요구일 수 있으니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있어보자. 뭐든 다 내 마음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