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것

#시끄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일기쓰기

by 송송당
인간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은 적이 있다.


그런 인간의 특성 때문인가, 유전자 지도까지 만드는 인간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이 말이 참 와닿는 요즘이다. 숙소에 들어온 후, 며칠간은 밤에 나는 이상한 소음 때문에 무서워서 잠을 설쳤다. 잔뜩 긴장한 채로 소리의 근원을 따라가 보니 냉장고에서 나는 소리였고, 그 이후에는 적어도 무서워서 잠을 설치지는 않고 있다.


치앙마이라는 도시 자체도 마찬가지다. 참 익숙한 도시고 작년에도 와서 한 달을 지냈던 도시이나 치앙마이 도착 후 초반, 공황발작이 온 후로 거리를 걷기도 힘겨워하던 시기가 있다. 치앙마이라는 타지에서 이런 정신상태로 1년을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평소 같으면 바로 스쿠터를 빌렸을 텐데, 불안한 상태로 운전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서 치앙마이 도착 후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정말 먼 거리가 아니면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있다. 하루 이만 보씩은 거뜬히 찍었다. 걸어 다녀서 그런가,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녔던 것에 비해서 치앙마이 시내의 길을 속속들이 익히게 되었는데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나니 평소에는 낯설다고 생각했던 지역의 거리마저 익숙해졌고 길이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불안한 마음도 줄어들었다. 금주+운동의 효과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분명 치앙마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 것도 불안감 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오늘은 오전에 친구가 추천해 준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의 앞부분을 읽었다. 제목을 보자마자 나를 떠올리고 친구가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책의 초반을 읽는데 책으로 이렇게 팩트 폭행을 당해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책의 저자 두 명은 임상심리학자인데, 완벽주의로 인해 고통받는 내담자들과의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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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완벽주의자를 적응적 완벽주의자부적응적 완벽주의자로 나눈다. 적응적 완벽주의자는 완벽주의를 긍정적으로 활용해 성과를 얻는 부류인데, 이를테면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이런 부류일까?라고 생각한다. 부적응적 완벽주의자가 이 책에서 치료를 위해 다루는 부류이다. 완벽주의에 매몰되어서 자신의 삶을 저당 잡히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적응적 완벽주의자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아마도 성장기 시절 완벽주의를 요구하는 환경에서 자랐을 경우 그렇게 될 확률이 크다고 한다. 아, 그게 나다. 이를테면 학교 성적을 93점을 받아오면 100점이 아니라고 한 소리를 들었고 학교 성적이 되었건 다이어트가 되었건 성과를 가져와야만 인정을 받았다. 성적이 좋기 이전에는 부모님, 특히 아빠에게 그 어떤 칭찬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때로는 '내가 숨 쉬는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빠한테 욕을 먹을 거야'라고 생각해 본 적까지 있다.


부적응적 완벽주의자들은 그 누구도 기준을 명확히 알 수 없는 자신만의 기준에 부합하는 성과를 위해서 살아가며 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다. 그리고 대부분 성과가 나도 성과에 만족하지 못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살아가며 성과를 내지 못하면 끝없이 자책한다. 때로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 두려워서 일부러 어려운 일을 피하기도 한다.


부적응적 완벽주의자들에 대해 설명하는 초반 부분만 읽었는데도 이 사람이 내 인생을 들여다본 것인가 하고 소름 끼쳤다. 갑자기 전 직장 생각이 났다. 회사에서 내 일에 충실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나는 사업개발매니저라는 본연의 업무 이외에 사업 운영, 마케팅 등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는 다 짊어지고 갔다. 완벽한 PPT를 만들겠다며 새벽까지 일하는 것은 허다한 일이었다.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상대는 그냥 몇 초만 보고 넘어갈 내용인데 나는 그 문서의 디자인까지 신경 쓰느라 잠을 못 잤다.


아주 좋은 팀장을 만나서(반어법), 서포트해 주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도 사업 수주에 줄줄이 성공했지만 '더 잘했어야 했는데'라며 가혹할 정도로 자책하고, 자기반성을 했다. 특히 다른 팀에 피해 주는 것을 격렬히 싫어해서 초긴장상태로 일을 하며 혹시라도 피해를 주는 일이 발생한다면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이용하는 직원들도 많았을 거다. 아니, 거의 확실히 그런 분들이 있었다.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일을 피하는 모습도 있다. 분명히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완벽하게 잘하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하면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업무를 하면서 피플 매니징의 업무는 맡은 적이 없다. 잘못된 피플 매니징을 받아서 팀장과 격렬하게 부딪힌 적이 있기에 팀장이나 중간 관리자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아져 버린 탓이다.


그래서 글쓰기도 이렇게 늦게 시작한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재미없을 거야. 나는 완벽한 글을 쓸 수 없어. 이렇게 생각한 까닭에 글을 쓰고는 싶지만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비슷한 의미에서, 내가 조금만 완벽주의를 버렸다면 1세대 여행 유튜버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행 유튜버들이 가기도 전에 인도, 네팔 같은 곳에서 혼자 씩씩하게 여행을 다녔는데 말이다.


그래, 내가 부적응적 완벽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알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를 내일 읽어볼 참이다. 나를 설명하는 책의 앞부분을 읽으며, 내용을 보는 것만으로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결국 이것도 '알아가는 과정'이라면 그 이후에 해결책을 찾거나 불안감이 해소되거나 하는 효과가 있겠지 생각한다. 물론 많은 책들이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더 알고 싶다. 나에 대해서 최선을 다 해서 알아내서 나 자신에게 느끼는 불안감을 없애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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