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에는 감정이 고조되어서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워드 7장 분량의 편지로 쓰기도 했다. (나의 불안의 주된 원인은 부모님과의 관계니까)
오늘 아침에는 평소보다 많이 먹었는데, 먹고 나니까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니라 나의 불안이 음식을 먹었나보다.
볼 일이 있어 치앙마이 시내의 마야몰이라는 쇼핑몰을 찾았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비싼 것을 사지는 못해도 쇼핑을 좋아한다. 엄마에게 쇼핑은 친절하지 않은 남편에 대한 스트레스를 달래는 길이었을 거라고, 지금은 그렇게 이해한다.
마야몰 전경, 치앙마이 시내에 거주하게 되면 일주일에 세네 번은 찾게 된다
마야몰은 꽤나 화려하다. 한국의 대형 백화점에 비해서는 규모는 작지만 치앙마이의 일반 서민 거주지의 모습을 상상했을 때는 다른 나라에 온 기분이다. 백화점 정문에는 문 앞에서 문을 열고 닫아주며 손님들에게 경례를 해주는 경비원 분들도 계신다. 아주 멋진 제복을 차려입고 계신다. 쇼핑몰에 들어설 때부터 손님들의 마인드셋을 '돈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경례를 받으며 화려한 쇼핑몰에 입장하고 나면 마야몰에 머무는 순간만큼은 나도 상류층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나도 엄마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외로울 때면 쇼핑몰을 찾는다. 다만 엄마에 비해 적극적으로 물건은 사지 않는데, 이건 아빠의 영향이 크다. 아빠는 구두쇠에 가까울 정도로 절대로 비싼 물건은 사지 않는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안 쓰는 것이다. 아빠와 엄마는 소비에 있어서는 N극과 S극 수준이다. 이렇게 안 맞는 사람들이 30년을 같이 살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도 한다. 나는 아빠의 소비 성향을 배웠으나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만큼은 엄마에게서 배웠다.
나는 백화점에서 절대로 옷을 사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한다면 인터넷 가격부터 검색해 보고 가격이 적당해도 이게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묻고 또 묻는다. 주로 거의 사지 않는다. 다만 금액이 크지 않은 생활용품 같은 것들은 필요가 없어도 사들일 때가 있다.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니 적은 금액이라도 구매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전셋집을 정리하면서 물건은 멀쩡한데 실제로는 쓰지 않는 물건이 꽤 많아서 팔거나 기부하거나 무료 나눔을 했다.
마야몰도 생긴 지 꽤 오래된 쇼핑몰이다. 태국에 처음 왔던 거의 10년 전부터 계속 본 기억인데... 볼 때마다 내부 인테리어를 새로 했는지 계속 반짝거린다. 물건도 마르지 않는다. 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이 마를 날은 오지 않겠지.
엄마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꽤 복잡하다. 나는 엄마가 아빠와의 관계에서 겪은 어려움에 공감하나 엄마가 나에게 정서적으로 끊임없는 요구를 할 때 들어주기를 버거워했고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는다. 내가 엄마에게 공감은 하지만 엄마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죄책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래서 쇼핑몰을 걸을 때면 엄마 생각이 난다. 이 쇼핑몰의 모든 물건을 다 사주면 엄마의 정서적 허기도 채워질까? 내 삶 전부를 엄마에게 바치면 엄마는 행복해질까?
하지만 마야몰에서 판매하는 물건이 마를 날이 없는 것처럼 엄마의 정서적 허기도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샘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고민에 대한 답이 있을까, 모녀관계를 다룬 책을 종종 읽는데 많은 작가들이 이렇게 말했다. 그건 엄마의 삶이고 엄마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엄마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이론적으로는 아는데 그런 생각을 떨쳐내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닌데도 그렇다.
엄마가 나의 정서적 허기를 채워준 적이 없었던 것은 까맣게 잊고 내가 엄마의 정서적 허기를 외면하는 것에만 죄책감을 느끼다니.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과도 손절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주식도 2년째 물려있는 주제에 너무 큰 희망 사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