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주체

#시끄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일기쓰기

by 송송당
오늘은 쇼핑의 날이었다.


운동도 할 겸 숙소에서 40분을 걸어서 '징짜이 마켓'이라는 토요마켓에 먼저 들린 후 거기서 치앙마이 최대 쇼핑몰인 '센트럴 페스티벌'과 역시나 치앙마이 최대의 스포츠 용품점인 '데카트론'에 들렸다.


순서로만 보면 징짜이 마켓-센트럴 페스티벌-데카트론-센트럴 페스티벌 순이었다. 센트럴 페스티벌은 점심식사와 쇼핑을 위해 두 번을 들렀다.


징짜이 마켓은 굳이 갈 필요는 없었지만 들러서 점심이라도 먹을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이곳은 일반 시장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곳인데 유럽식이라고 해야 할까, 아주 깔끔하게 시장을 꾸며놓고 음식과 옷, 공예품들을 팔아서 현지인 관광객 할 것 없이 많이들 찾는 곳이다. 나름 브랜딩을 잘 한 곳이라고 보면 된다. 들어가 보면 파는 물건이나 음식은 일반 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인데 시장이 깨끗해서 그런지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참고로 태국은 엄청난 소비문화를 지닌 나라로 마케팅에도 매우 일가견이 있다. 국제 광고제에서 꾸준히 수상하는 나라다. 태국인들은 소비를 하고 이를 주변에 과시하는 경향이 매우 강해서 인스타에 사진을 찍어 올리기 좋은 공간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징짜이 마켓도 그런 곳 중에 하나다. 한국이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겠지만 태국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이 소비한 것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서 주변에 널리 알린다.


그리고 나는 정확히 징짜이 마켓에서부터 정신이 조금씩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아침을 먹고 가지 않아서 거기서 뭘 좀 집어 먹으려고 했는데 인파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흥이 나지 않았다.


센트럴 페스티벌 쇼핑몰로 이동해서는 음식을 먹긴 먹었지만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했다. 이곳은 규모가 매우 커서 인파와 진열된 물건들 모두에 압도되었다. 여기서는 정신을 놓고 좀비처럼 걸어 다녔다.


데카트론에 가서는 확실히 사야 할 물건이 있었기에 이것저것 비교해 보고 물건을 구입하기는 했는데 다시 센트럴 페스티벌로 돌아와서는 완전히 지쳐서 지하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가려는 계획도 취소하고 택시를 불러서 숙소로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내가 오늘 뭘 한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징짜이 마켓에서부터 센트럴 페스티벌, 데카트론까지 내가 다 셀 수도 없는 가짓수의 새 물건이 진열되어 있는 화려한 쇼핑 공간에서 내 정신은 길을 잃었다. 즐겁지 않았다.


물건이 끝없이, 끝없이 진열되어 있다
치앙마이에서 만난 탕웨이님, 직원이 고객에게 열심히 제품의 효능을 설명하고 있었다


치앙마이에서 특별히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아니고 한국에 있을 때도 비슷했다. 왜 가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로 쇼핑몰에 들어갔다가 정신이 몽롱해져서 황급히 쇼핑몰을 빠져나온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쇼핑몰은 화려하고 깨끗하고 밝다. 쇼핑몰에 가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간'에 들어선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이내 인파와 물건 모두에 압도되어 정신을 놓아 버리는데 문제는 이런 행동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물건은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집 근처 가게에서 사도 충분한데 나는 굳이 시간을 들여 쇼핑몰에 가고, 잔뜩 지쳐서 쇼핑몰을 빠져나오는 행동을 반복한다.


쇼핑몰에 가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나란 사람의 특성이 이런 것이다. 분명, 쇼핑몰에 가는 행위는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다. 하지만 종종 '쇼핑을 해야만 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쇼핑몰로 향하고, 지쳐서는 도망쳐 나온다. 이런 경우 하루 반나절 혹은 하루 전체를 쇼핑몰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으로 낭비해 버릴 때가 많다. 확실히 시간 낭비다.


치앙마이에서까지 이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 더 이상은 이런 행동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쇼핑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하는데 습관처럼 쇼핑몰에 가서는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체력만 빼앗기다니. 쇼핑에 대한 알 수 없는 이끌림, 강박이 아니었다면 오늘 하루를 쇼핑몰 방문에 할애할 필요가 없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주인공 부모님이 가게 주인의 허락도 없이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다 돼지로 변하는데 가끔은 나도 그렇게 될까 무서울 때가 있다. 끊임없이 소비만 하다가 나도 돼지가 되어서 영영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음식이 아니라 쇼핑에 대입해도 무리가 없을 모습


내가 소비라는 것에서 계속 느끼는 피로감은 스스로의 생각을 갖고 소비를 하고 싶다는 나의 정신이 보내는 신호인 것 같다.


참...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기에 힘든 성격이나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면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옷은 최신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내가 생각하기에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딱 필요한 만큼만 갖고 싶고 음식도 마찬가지다. 치앙마이 3대 맛집! 치앙마이에 와서 이걸 안 먹어보면 평생 후회!라고 누군가가 말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먹는지는 내가 선택하고 싶다.


일을 다시 하게 된다면 그것이 어떤 종류의 제품이건 타인에게 소비하게 해야먄 할 것이다. 이 때도 내가 생각하기에 제품이 소비할 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것이 확실한 것만 권하고 싶다.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고 포장하는 행위에 더 이상 가담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센트럴 페스티벌을 떠나며 택시 안에서 나름의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제 굳이 시간을 내서 이곳에 방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더이상 쇼핑몰에서 길을 잃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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