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소비생활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해서 그런가, 문득 갖고 있는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갖고 있는지 크게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10여 년을 갖고 있는 물건이다.
2012년 12월, 네팔에 갔을 때 산 동전지갑인데 네팔에서 한 달을 머물렀던 호숫가 도시 '포카라'에서 샀을 것이다. 당시에도 굉장히 저렴하게 샀을 텐데 이후 내가 어디를 가건 여행지에서는 이 동전지갑을 지갑으로 사용했고 지금도 그렇다.
10년된 동전지갑
빨래를 하는 김에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지갑도 빨려고 보니 와, 정말 만듦새가 튼튼하다. 지갑 안쪽에 fair trade라고 적혀있는데 아마도 네팔 여성 분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단체에서 만들었다는 것을 샀던 것 같다.
네팔은 인도 서북부의 '다즐링'이라는 곳을 여행하다가 너무 추워서 대충 지도를 보고 넘어갔던 곳이다. 다즐링, 홍차의 이름이기도 한 지명으로 영국인들이 자국으로 홍차를 가져가기 위해 만든 거대한 홍차밭이 있는 곳이다. 아름다웠지만 계절을 잘못 택해서 너무 추워서 오돌오돌 떨다가 3일 만에 도망쳤다.
다즐링 홍차밭에서 만난 티베트인 가족, 사실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아쉬울 건 없는 여행이었다
네팔은 인도보다도 인프라가 열악해서 하루의 절반은 정전이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친절해서 마음만은 편했던 곳이다. 자주 가던 식당집 가족이랑 친해져서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까지 있다. 지금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여행이었다.
10여 년 전의 포카라 풍경
포카라 단골집에서 종종 먹던 메뉴, 네팔 분들은 음식 솜씨가 상당하다
손재주도 참 좋은 분들이 많았고 그래서 음식도 맛있었는데 보니까 이 작은 동전지갑 하나도 10년이 지나도록 올 하나 풀린 곳 없이 튼튼하다.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바보 같은 제품일지도 모른다. 적당히 쓰면 찢어져야지 다시 사지 않는가? 태국에서 관광객들이 매우 많이 구입하는 코끼리 바지처럼 말이다. 아주 얇은 천으로 대량으로 공장에서 찍어낸 코끼리 바지는 조금만 힘을 주어도 툭툭 터져서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제품이다.
사실 얼마 전에 지갑을 다시 사려고 둘러본 적이 있었다. 새 지갑은 비싸지도 않고 디자인도 세련되었고 동전지갑 대비하여 지폐도 편리하게 수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동전지갑을 다시 보니 이런 물건을 갖고 있다는 것이 뭐랄까 자랑스러워져서 지갑을 사려는 계획은 보류하기로 했다. 이 정도의 상태라면 10년을 더 써도 멀쩡할 것 같다.
치앙마이를 여행하기 좋은 시즌이 본격적으로 다가오는지, 네이버 블로그의 치앙마이 게시글의 조회수가 높아져 오늘 애드포스트로 5만 원이 정산되어 들어왔다. 네이버 블로그는 주로 정보성의 게시물을 올려놓았는데 작년에 올린 게시글이고 올해는 올린 게 하나도 없어도 조회수가 꽤 올라온 것이다.
여행 컨텐츠는 이렇듯 정보성 컨텐츠가 기본적으로 많은 조회수를 올린다. 사업계획서를 쓰거나 마케팅을 할 때 '숫자'를 강조해야 상대방을 설득하기 쉽다는 전략이 있는데 블로거나 유튜버들도 컨텐츠 제목에 숫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치앙마이 몇 대 맛집, 팟타이 한 그릇에 900원이라고? 치앙마이 한 달 살기 비용 같이 말이다.
가장 컨텐츠를 만들기 쉬우면서도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끄는 것, 즉 스테디셀러 컨텐츠가 맛집과 쇼핑이어서 여행 크리에이터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맛집과 쇼핑할 것들을 찾아다니며 경쟁한다. 그렇게 추천을 받아서 간 곳이나 산 물건은 내 마음에 썩 들지 않을 때가 많다. 혹은 크리에이터는 별로였다는 것이 나에게는 충분히 괜찮았던 것들도 꽤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라는 영화에 보면 매튜 매커너히가 역할을 맡은 선배 주식 중개인이 디카프리오에게 어떻게 하면 주식 중개인으로서 돈을 벌지 설명해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디카프리오에게 주식 중개인과 고객이 둘 다 윈윈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은 영원히 돈을 벌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우리가 돈을 번다고 강조한다. 영화이고, 주식 중개인들을 바보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캐릭터를 과장하여 연출했겠지만 사실 이것은 주식 시장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전반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흔히 취하는 전략이다.
자본가들은 소비자들이 소비하게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소비자의 욕구와 불안을 자극한다. 여행 하나도 맘 편히 갈 수가 없게 만든다. 어떻게 여행을 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 여행이고, 어디에 가야 하고,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쇼핑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그 과정에서 내 여행은 사라지고 타인의 여행만 존재하게 된다. 굳이 쓸 필요가 없는 비용도 지출되지만 주위에서 다들 좋다고 떠들어대는 곳에 와 있으니 이것이 필요없는 지출인지 인식을 못하거나 혹은 알아도 그냥 넘어간다.
10년을 써도 멀쩡한 동전지갑 같은 제품을 만들어서 팔면 안 되는 걸까? 소비자의 불안을 자극하지 않으면 장사는 안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