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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Aug 29. 2023

치앙마이 날씨 맑음, 내 마음은 흐림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 날씨 맑음, 내 마음은 흐림

1년을 살러 온 나의 치앙마이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일찍 끝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치앙마이 도착 5일 차에 겪은 공황발작 비슷한 증상 이후, 매일 밤 불안한 마음과 함께 눈물이 터져 나오고 있다. 좋은 친구들 덕분에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며 위로와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울, 불안, 공황 등 마음의 병에 관련된 증상에 좋다는 건 죄다 하는 중이다. 계속 거울을 보고 나 자신을 칭찬하고, 어르고, 달래고 있고 매일매일 감사할 거리를 찾는다. 특히 최근 며칠간 늦은 시간에도 나를 붙잡고 대화를 나누어준 친구들이 있어 이에 마음 깊이 감사한다. 이중 한 명에게는 119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너무도 적절한 표현이었다. 그 친구가 긴급출동하여 나와 대화하지 않았다면 그 공포스러운 시간은 영원히 끝나지 않았을 것만 같다. 


그리고, 오늘의 내 감정이 어떠했는지 글을 써보고자 한다. 


치앙마이는 지금이 우기의 끝무렵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화창한 날씨였다. 너무도 사랑해 마지않는 치앙마이 대학교의 부설 어학원에 비자 관련하여 볼 일이 있어 찾아갔는데 맑은 날의 치앙마이 대학교는 너무도 아름다웠고, 싱그럽고, 학생들이 내뿜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이 느껴져서 나까지 설레었다. 여기서는 나도 뭐라도 이뤄낼 수만 있을 것 같았다. 


치앙마이 대학교에는 앙깨우 저수지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데 오랜만에 가보니 역시나,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저수지를 따라 안쪽까지 이어진 공원으로 걸어 들어가면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거대하고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웅장하지만 고즈넉한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대학교 학생들, 관광객, 조깅하는 사람들 등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나 전혀 번잡한 느낌은 아니다. 언제 가도 좋지만 일몰 무렵에 가서 코랄색으로 물드는 하늘과 저수지를 감상하는 것도 좋다.



좋아, 과거와 미래는 생각하지 말고 현실을 살아야지. 지금 내 눈앞의 풍경을 즐겨야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가서 볼 수 있는 최고의 풍경이었고 분명 나는 오늘 이 순간을 즐겼다.


하지만 아무리 현실만 생각하려고 해도 불안이라는 존재는 예고 없이 순식간에 찾아왔고, 손과 발 끝에서부터 찌릿한 감정이 타고 올라와서 눈물로 터져 나왔다. 감정을 돌리려고 노력해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손발이 찌릿한 감정을 일상에서의 감정에서 비유하자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느끼는 공포와 비슷하다. 나는 높은 곳을 무척 싫어하고 롤러코스터도 타지 못하며 어쩌다 바이킹이라도 타면 내려서 구토하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높은 곳에서 느끼는 공포는 꽤나 큰 것이고 요즘 매일매일을 이러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 무서운 걸까? 


혼자 나와서 산지도 꽤 되었고 외국에서 생활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태국에서 무엇을 할지 계획도 나름 잘 세워서 왔다. 수업을 듣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특히 이제 곧 내가 좋아하는 무에타이도 하러 갈 참이다. 일할 때를 생각해 보면 매일매일 전쟁을 겪고 지쳐서 집에 와서 술 없이는 잠도 청하지 못했는데 이에 비하면 얼마나 여유롭고 즐거운 생활인가. 당장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분명히 일 년은 여기서 놀고먹어도 앞으로의 내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서면서부터 손과 발끝에서부터 찌릿거리는 공포의 전조 증상을 마주하고 이내 엉엉 울어버리는 일상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중이다. 그때마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안정을 되찾고, 앞으로는 괜찮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음날 밤이 되면 불안과 공포는 여지없이 나를 엄습한다.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지점은 내가 여기서 1년을 버틸 자신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매일 공포감에 눈물을 흘려야 한다면 나는 여기서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닌 것이 아닐까? 


비슷한 고통을 겪은 누군가가 유튜브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불안, 공황 증상을 없애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없앨 수 없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에 집중해라. 


계속해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미 지불한 어학원이나 숙소 비용을 손해 보면서까지 빠르게 한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으려고 한다. 그것이 내가 나를 돌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후회는 하지 않으려 한다. 태국에 오겠다는 결정은 환경을 바꾸어 가족, 회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보고자 하는 나름의 계획이었고 그 계획이 틀린 계획이었다고 해도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귀국 결정을 하기 전, 운동이 불안한 상태에 도움이 된다고 하기에 무에타이 수업을 며칠 들어보고 상태가 호전되는지 확인해보고자 한다.


치앙마이에서는 뭐든 크게 크게 잘 자란다. 나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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