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을 위해 꾸준히 일기를 쓰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글쓰기이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플랫폼에 쓰는 것이기도 하니 자가검열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희망하기로는 나만의 진솔한 이야기가 묻어난 여행 에세이 같은 글을 쓰고 싶은데 현실은 불안한 감정을 배설하거나 정보 위주의 여행 블로그 같은 글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틀간 쓴 글을 만지작 거리다 그냥 두어버렸다.
요즘 새로 나가기 시작한 무에타이 체육관은 이전 체육관 대비 훈련 강도가 더 높아서 수업을 한 번 다녀올 때마다 누가 매질을 한 것처럼 온몸이 아프다. 이전 체육관에서는 나를 전담해서 운동을 시켜주는 코치의 수준과 운동 강도가 높지 않아서 운동을 해도 땀은 났지만 딱히 힘들지는 않았다. 운동의 강도를 높일 때가 되었는데 때마침 체육관을 잘 찾아 옮겼다.
체육관 바로 앞에는 이런 시골 마을에 있으리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운 예쁜 카페가 하나 있는데 들를 때마나 커피나 음료 맛이 꽤 괜찮아서 깜짝 놀란다. 우리나라로 치면 읍, 면 같은 규모의 마을에 커피맛이 좋은 예쁜 카페가 있는 셈이다. 태국은 커피만큼은 정말 금수저라고 할 수 있어서 그 어떤 외진 마을에 가도 이런 카페 몇 개쯤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여행객들은 굳이 찾아서 오기 어려운 곳일 텐데 무에타이를 하겠다는 일념하에 이 동네까지 찾아 들어왔기에 맛볼 수 있는 커피일 것이라 나름 뿌듯해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이런 카페가 있을 법하지 않은 동네다 여기는 / 카페 앞에서 날 보자 돌진한 개냥이
통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 나중에 이런 집을 지어봐야지 싶은데 태국에 이민 오면 되려나...
태국식 밀크티를 시켰는데 데코레이션 보소...맛도 밀크티 치고는 비싼 80바트의 값을 하는 고급진 맛이다
10년 전에도 치앙마이에서 무에타이를 했었는데 이렇게 10년 후에도 또 무에타이를 배우고 있다. 10년 전에도 치앙마이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마을의 체육관이었는데 지금도 그렇다. 치앙마이라는 도시가, 치앙마이 중에서도 외곽의 한적한 마을이 나라는 사람의 취향인 건가 싶기도 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글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고 명확하지 않아서 머뭇거리게 된다. 무에타이를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순전히 나의 지금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겠노라 다짐했지만 결국은 사람 마음이 그건 아닌가 보다. 무에타이도, 글쓰기도 어떤 경지를 이루어 내고 싶은데 지금의 1년이 그걸 가능케 할 유일한 시간일지도 몰라서 조바심이 난다.
어제 무에타이 수업을 들을 때 코치와 1:1로 운동하는 미트훈련이라는 것을 3분 5라운드 진행했다. 3라운드까지는 그럭저럭 하다가 4,5라운드에서는 체력이 방전되어서 눈이 풀린 채로 운동했다. 5라운드 가니까 킥 하나를 차기도 어려웠다. 이렇게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올해 치앙마이에 와서 아주 명확히 느끼는데 만으로 37세라는 나이는 아직 체력을 다시 기르기에 부족하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달 넘게 운동하고 있는데도 체력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조금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체육관에서 운동하면서 보는 풍경 / 이 개는 동네 개인데 종종 체육관에 들어와서 사람들의 이쁨을 받고 간다
솔직히 말하면 '늦지 않았을 거야,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내가 스무 살 때부터 하던 생각이다. 스무 살 때까지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름) 좋은 대학교에 갔다. 그러니까 나는 머리가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토익시험, 다이어트 같은 몇몇 태스크는 성공의 경험을 맛보기도 했었다. 그러다 20대 중후반부터는 인생의 큰 성취는 이루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 와중에도 '나는 늦지 않았어, 하면 잘할 거야'라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뭔지 깊게 고민도 하지 않았고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간에 스마트폰을 하면서 온갖 곳으로 내 정신을 분산시키고 숙면을 방해받았다.
10년 전에도 치앙마이에서 무에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10년 후에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지금도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결국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걸까 두려운 마음이 인다.
이런 나는 어제 무기력증이 왔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친구에게 '꼭 뭘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두어봐'라는 조언을 건넸다. 그 조언은 나에게도 필요한 조언인 걸까?
치앙마이에 오기 전에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같은 류의 글이었다. 무에타이를 할 때의 나 자신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었다. 지금도 종종 초보 여자인데 무에타이 배울 수 있어요?라고 묻는 질문이 많아서 그 질문에 대한 답도 하고 주변에서 어떻게 보더라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즐거움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말고 단순하게 다시 원래의 계획으로 돌아가서 무에타이에 양껏 심취하는 게 글쓰기 슬럼프를 이겨내는 길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