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일년살기
일을 하지 않고 치앙마이에서 홀로 1년을 보낸다는 것은 죽어서도 나태지옥에는 가지 못한다는 한국인들은 일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을 의미한다. 한 달 살기를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할 것이다.
갑자기 시간이 너---무 많아진다.
일 년에 한 달 이상은 장기 휴가를 받아서 전 세계로 놀러 다니는 유럽인 친구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현생에 붙잡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을 사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무척 어색하고 생소한 상황이다.
지나치게 바쁘게 살았던 동료 한국인이라면 한 달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한량처럼 푹 퍼져서 지내는 것은 삶 전체에서 봤을 때는 내 몸의 고장난 어딘가를 고쳐주는 자가치유의 시간이니 불편해하지 말고 이 게으름을 충분히 즐겼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는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이 한 달이 아니라 1년이고 이제 11개월이 남았단 말이다. 시간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금주한 지는 오늘로 55일 차니 술을 마시느라 낭비하는 시간과 체력은 없다. 그 외에 태국어 공부와 글쓰기, 독서, 무에타이 등의 자잘한 일거리가 있는데 이것들을 하기는 하지만 아주 열심히 하지는 않고 있다.
문득 배낭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수년 전 라오스 방비엥이라는 마을에 갔던 때에 있었던 일이다. 방비엥은 수려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인데 풍경이 어떻냐 하면 신선들이라면 마땅히 여기에 살아야 할 것 같은 영험한 첩첩산중의 모습이다. 아니면 중국 무협지에 나오는 화산파의 본거지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이 첩첩산중의 아름다운 산골 마을에 약에 취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헤헤거리면서 하루를 보내는 서양인들이 적잖이 있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들 중 한 명은 방비엥으로 향하는 버스 옆자리에 앉았어서 버스에서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었는데 버스 도착 후 다음날인가, 식당에서 봤을 때는 약에 취해서 내가 불러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식당에서 틀어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고만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로, 의도적으로 약물의 힘을 빌려서 생각을 멈추고 삶의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냈다. 이런 비슷한 사람들은 인도 여행을 할 때도 몇몇 보았다.
여유롭게 지내는 삶을 너무 극단적인 케이스에 비교했나 싶기도 하지만 치앙마이에서는 나를 감시하는 눈이 없고,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아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다. 약을 하면서 헤롱거리지는 않겠지만 하루종일 TV를 보면서 누워있을 자신은 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일 년이 지나있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더 이상은 나를 청년이라고 부르지 못할 시기에 다달았을지도 모르겠다.
"나태지옥은 거부한다 빡세게 빡세게 빡세게~ !!!"를 외치며 한국인 모드로 살고 싶지는 않아도 적어도 나 스스로가 나를 봤을 때 부끄럽지 않게는 살기 위해 치앙마이에서도 시간 관리를 해야겠다 싶다.
그래,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부모님의 기대, 회사의 성과평가 등 타인의 시선에 맞추고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내 삶을 허비했다. 그 어떤 시간도 편히 보내지 못했고 힘듦을 잊기 위해 알코올의 힘을 빌려서 방비엥에서 약을 하던 사람처럼 생각을 차단하기도 했다. 여기 치앙마이에서는 그럴 필요는 없다. 치앙마이까지 부모님과 회사 사람들이 쫓아오지는 못한다. 이제는 나의 시선만 신경 쓰면 된다. 그래서 지금 머리 스타일도, 옷 입고 다니는 것도 내 마음대로다. 옷은 편하게 츄리닝 바지에 반팔 티셔츠에 쪼리를 신고 다닌다. 절대로 갖춰 입고 다닐 생각이 없다.
오늘은 태국어 수업에 다녀왔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일기를 썼고 이제는 무에타이를 하러 갈 참이다. 이 정도면 오늘 하루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오늘의 이 느낌을 기억하면서 치앙마이에서의 남은 11개월의 시간을 꾸려야겠다.
*글쓰기의 좋은 점은, 이렇게 글을 쓰다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