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당 Oct 23. 2023

태국, 나의 젊음

#치앙마이 일년살기

태국은 나의 젊음이다.


어젯밤, 감상에 젖어서 시티 팝 장르의 노래를 듣다가 잤다.


stay with me_마츠바라 미키

연극이 끝난 후_샤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인데 지금 들어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고 세련되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내가 태어나기 전 시대임에도 그 시대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요즘 세대에게는 앤 마리의 2002도 비슷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30대 후반을 달려가는 나는 아직 젊음에도 더 어렸던 시절을 회상하며 감상에 잠겼고 나에게는 태국이 젊음이었다는 생각을 하다 잠들었다.


나는 나의 10대, 20대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겁에 질려있었다. 아빠에게 혼나지 않기 위한 삶을 살았고 정말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해보지 않았다. 대학까지는 어떻게 잘 졸업했는데 이미 나의 시대에는 대학교의 간판이 취업과 연결되는 시대가 지나있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이력서를 내도, 면접을 봐도 면접관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내가 면접관이었어도 이상하게 주눅 들어있는 나를 선뜻 뽑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된 취업은 못하고 알바를 전전하다가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났다. 고백하건대 도피성 여행이었다. 1년, 6개월씩 두 번에 걸쳐서 배낭여행을 떠났고 인도, 네팔,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다양한 국가를 여행했다. 여행을 다니다 마음에 들어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 태국이다. 치앙마이 근처의 빠이pai를 시작으로 치앙마이, 푸켓 등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처음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했을 때는 공항 근처의 현지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의 12만 원짜리 월세방에 살기도 했다.


나는 내가 뚱뚱하고 볼품없다고 생각했고 태국에서 무에타이를 하면서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슬프지만은 않았던 것은 무에타이는 나의 체질에 맞았다. 무에타이를 하면서는 나 스스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잊었다. 운동을 하는 시간에는 오로지 나의 몸의 움직임과 호흡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평생을 아빠에게 혼나며 살았던 나는 없었다. 아빠는 아빠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는데, 체육관에서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푸켓에서는 시합에 나가보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의 전성기였다.


지금은 없어진 치앙마이 KC 무에타이에 다니던 시절 (2013)
푸켓 탑 팀 다니던 시절 (2015)
지금도 영업 중인 치앙마이 Santai muay thai 시절 (2015), 집에 갈 때마다 따라 나오던 고양이 남매 ㅠㅠㅠㅠ


이 시기의 마지막은 치앙마이 외곽의 싼캄팽이라는 마을에서 한 달을 머물며 무에타이를 배우는 것으로 끝냈다. 여기서는 집주인과 친해져서 주인분이 태워주는 차를 타고 치앙마이 곳곳을 함께 여행 다녔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귀국한 후 힘겹게 일자리를 구했고 그때의 커리어를 시작으로 거의 10여 년을 일을 하다가 퇴사하고 다시 태국 치앙마이로 돌아와 일 년 살기를 하고 있다.


태국은 내가 나의 젊음을 즐겼던 장소고 이곳으로 일 년을 살기 위해 돌아온 것은 다시 나의 젊음을 즐기고 싶어서겠구나, 어젯밤 시티 팝 계열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엔싱크의 여러 노래도 들었는데, 당시의 나는 백 스트리트 보이즈의 팬이었어서 엔싱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게 벌써 15년은 더 된 일인데 지금 들어보니 엔싱크의 노래는 왜 이리 좋은가. 이때부터 내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지금의 나의 삶은 꽤 달라졌을까?


더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겠지만,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부모님은 나를 소유할 수 없고 나에게 '너는 틀렸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옳지 않다. 틀린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 그들의 말에 주눅이 드는 순간 내가 가진 힘을 그들에게 순순히 넘겨준 것이다.


치앙마이에서의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나의 젊음을 즐기고 나에게 집중하는 법을 치열하게 연구하는 중이다. 이 시간이 쌓이면 미래의 어느날 누군가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너는 틀렸다고 강요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때 '아니, 틀린 건 당신인데'라고 웃어 넘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약간 좋아하지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