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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Nov 27. 2023

주 6일 근무자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할 수는 없지

#치앙마이 일년살기

이번주는 정말 열심히 무에타이 수업에 나갔다. 일주일 동안 5일이나 참여했다. 


일요일인 오늘도 수업에 나갔는데, 다 끝나고 집에 가려는 나를 붙잡고 코치님이 질문을 했다. 


"내일도 나올 거야? 내일 오면 스파링 하자."


내일인 11월 27일은 치앙마이 최대 축제인 '러이 크라통' 축제가 있는 날이라 내일도 체육관 문을 여나 싶어서 질문하니 그가 답변했다. 


"우리는 모든 요일 다 문을 열어."


주 7일 내내 수업을 한다는 소리인데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에 약간의 슬픔이 묻어났다고 느낀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이 체육관이 유독 특이한 것이 아니라 치앙마이의 거의 모든 무에타이 체육관이 주 7일 내내 문을 연다. 이 말인즉슨 체육관 코치들도 주 7일 근무라는 소리. 물론 지금 다니는 체육관은 코치들끼리 돌아가면서 쉬는 날을 정해서 주 1회 정도는 쉬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엄청난 근무량이다. 


오전에는 2015년에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무에타이 수업을 들었던 치앙마이 외곽의 '산캄팽'이라는 동네를 다녀왔다. 그때 수업을 들었던 체육관은 '산타이 무에타이'라고 치앙마이의 유서 깊은 무에타이 체육관인데 아직도 여전히 건재하더라.


오랜만에 들른 산캄팽 마을은 예전에 비해서는 조금 더 붐비는 모습이었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니 태국 시골 특유의 정겨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나는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사람처럼 들떠서 동네를 돌아다녔다.


관광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조용한 마을의 모습, 오랜만에 찾아도 산캄팽 마을은 여전했다


2015년도에 다니던 카페가 아직도 그대로였다. 코코넛 음료 주문이 들어오면 마당에서 바로 코코넛을 따다가 만들어주는 초특급 산지 직송 시스템을 갖춘 곳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천천히 마을을 돌아보는데, 산타이 무에타이 체육관 초입의 구멍가게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라. 체육관 코치들이 하루 일과가 끝나면 여기 앉아서 맥주 한 잔을 하면서 힘듦을 달래던 모습이 떠올랐다.


태국의 무에타이 코치의 일이란 무척 고된 중노동이다. 하루에 적어도 두 번은 수업을 진행하며 수많은 수강생들과 1:1로 미트 훈련을 하면서 수강생들의 킥과 펀치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에타이 코치생활을 한다는 것은 과거에 무에타이 선수였다는 의미인데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시합을 뛰어서 못해도 200번 이상의 시합 경력을 쌓았을 것이다. (이름 있는 무에타이 체육관이라면 코치들의 수준이 적어도 이 정도는 된다)


태국의 최저임금이 일 350바트 정도인데 무에타이 시합에 나가면 한 번에 5천 바트 가량의 대전료를 받게 된다. 그래서 이들에게 무에타이는 치열한 삶의 수단이었다. 가난한 집의 부모 손에 이끌려 선수 생활을 하는 아이들도 더러 보았다. 돈이 있는 집의 아이들은 무에타이가 아니라 태권도를 배운다는 소리도 들었다. (태권도는 피터지게 싸워야 하는 무에타이에 비해서는 안전한 편이고 잘하면 올림픽 메달을 노릴 수 있어서 태국에서 많이 가르친다고 한다.)


십수 년을 고된 훈련이 수반된 무에타이 선수 생활을 하고 또 십수 년을 코치 생활을 하면서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삶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렇게 고된 생활임에도 지금 다니는 체육관의 코치는 나를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시간을 더 내서 스파링 연습까지 시켜준다. 너무 고마워서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코치에게 '내일 체육관에 오겠다'라고 말해버렸다. 


요즘은 또 뒷목의 통증이 도져서 한동안 멍 때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적어도 주 6일 이상을 일하면서 고된 생활을 하는 무에타이 코치들이 보면 하는 것도 없이 빌빌 거리면서 툭 하면 아픈 내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데 지금 아픈 건 십 년이 넘는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에서 얻어온 거라고!


물론 무에타이 코치 생활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덜할 것 같기도 하다. 코치들은 수업을 하다가도 노래가 나오면 흥겹게 춤을 추거나 장난을 친다. 서로 편을 갈라서 누구를 험담하거나 성과평가라는 명목 하에 가스라이팅을 하거나 당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만 37세의 나이에 태국에서 무에타이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2015년도의 내 몸과는 현저히 다르다. 수업을 끝내고 오면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을 때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수업을 해주는 코치들과 시간을 보내면 한국에서 겪었던 직장생활에서의 고통스러운 기억도 잊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인생의 전략이네 뭐네 생각하고 싶지 않다. 치앙마이에 있는 동안은 그저 단순하게, 나에게 뭐 하나라도 더 못 가르쳐서 안달 난 코치들과 운동이나 해야지. 이 생각뿐이다. 


산캄팽에 다녀오다 들른 동네 공원 풍경, 치앙마이의 자연환경은 CG같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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