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은 치앙마이 최대 축제인 '러이 크라통(Loi Krathong)' 축제 기간이다. 도시 전역에서 축제를 축하하기 위한 조형물이 세워지고 퍼레이드에 폭죽에 난리가 났다. 축제를 축하하는 공간에서는 '러이 크라통 ~러이 크라통'을 외치는 트로트 느낌의 노래가 계속 울려 퍼졌다. 러이 크라통 축제라고 러이 크라통 노래를 부르는 치앙마이 사람들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축제에서는 강물에 연꽃의 모양을 한 작은 배(이 배의 이름이 크라통이다)를 만들어 띄우거나 하늘에 풍등을 날린다. 특히 풍등을 날리는 모습이 장관이라 매년 러이 크라통 축제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11월 말 러이 크라통 축제 시기가 치앙마이행 비행기 티켓이 가장 비싼 시기이기도 하다. (음력이라 매년 축제의 정확한 일자는 달라진다)
지금 다니고 있는 치앙마이 대학교 어학원에서 러이 크라통 축제를 기념해 다 같이 모여서 강에 띄우는 배를 만드는 일종의 특별 행사를 진행했다. 바나나 나무의 밑동과 잎을 이용해 배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생화로 장식을 하고 향과 작은 초를 올리더라.
허접하게나마 만들어본 배, 자세히 보면 최다 스테이플러로 고정시켰다
러이 크라통 축제에서 추는 춤을 다같이 춰보는 시간, 춤은 매우 간단한데 노래는 계속 '러이 크라통~~'이라는 가사만 반복된다
'와 굉장히 자연 친화적으로 만드네?'라고 생각했는데 이 모든 것을 스테이플러나 작은 쇠못으로 고정시키는 것을 보고 생각을 거두어들였다. 스테이플러와 쇠못이 잔뜩 박힌 것들이 강으로 흘러 나가면 나중에 자연에 얼마나 피해를 끼칠까 싶더라. 실제로 태국 내에서도 이런 인식이 있어서 아이패드를 이용해서 강물 위해 배를 띄워 보내는 시늉만 하는 경우도 있다는 뉴스를 봤다. MZ세대의 러이 크라통이라고나 할까.
치앙마이 일년살기를 준비하며 나도 러이 크라통 축제는 꼭 즐기겠노라 생각했었고 기대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인 것인지 하필 축제 기간에 몸이 많이 안 좋았다. 몸살도 나고 평소 고생하던 일자목, 거북목 증상도 매우 심해졌다.
몸이 좋지 않으니 잘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멘탈도 흔들렸고 잊고 있었던 마음의 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과호흡이 오려는 것을 요가, 명상 혹은 유튜브를 보면서 정신 놓기 등을 하며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몸 상태가 조금은 좋아지고 난 후, 러이 크라통 축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축제가 아직 이틀은 더 지속된다는 소식을 듣고 도시 외곽의 '도이사켓'이라는 동네로 향했다. 러이 크라통의 화려한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곳은 입장료만 4천바트에(16만원) 육박하는데 도이사켓으로 가면 무료로 축제를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집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도이사켓으로 향하는데 생각보다 먼 거라, 족히 한 시간은 달려서 축제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장소는 고즈넉한 호숫가였고 해가 떨어지기 전의 호숫가의 모습은 굉장히 아름다워서 기대가 크게 고조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에서 축제가 진행된다
날이 어두워지고 사람들이 하늘 위로 하나 둘 풍등을 띄워 올리는데 그 모습을 보자마자 러이 크라통에 대한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하늘 위로 예쁜 쓰레기를 날리는데 그 쓰레기는 화재를 일으킬 위험성까지 있는 거라. 평화와 안녕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강과 하늘에 쓰레기를 투척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축제장소 곳곳은 최근 계속 이어지는 축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서 쓰레기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호수, 내가 부처님이면 빡칠 것 같은데...
한 중국인 가족은 호수가를 향해 계속 폭죽을 발사하던데 아름다운 호수에 폭죽이라는 쓰레기를 던지는 것에 왜 저렇게 당당한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하늘에 날리는 풍등의 숫자도 늘어만 갔는데 가까이서 보니 풍등의 형태를 잡기 위해 철사까지 사용했더라. 수천 개의 풍등이 하늘로 향하는데 한숨만 나왔다.
그래서 화재의 위험 때문에 치앙마이 시내에서는 풍등 날리기가 불법이라고 했고 이렇게 도시 외곽의 한적한 곳에 모여서 따로 풍등을 날리는 것이다. 하지만 시내에서도 풍등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는데 경찰은 이것을 전혀 단속하지 못하고 있고 어제는 치앙마이 시내의 '와로롯 시장'이라는 곳에서 불이 났다고도 한다.
사진 찍기에는 제격일 것 같은 풍경, 이 풍등이 어디로 날아갈지는 아무도 모르겠지
자연에 쓰레기를 내다 버리면서도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보며 기분이 우울해져서 빠르게 자리를 떴다. 해는 이미 졌고 치앙마이 외곽에서 어두운 밤에 국도를 따라 시내로 다시 들어가는 길은 매우 불안했다.
최대한 도로 왼쪽에 붙어서 시속 40km를 유지하며 천천히 운전을 하는 시간, 묻어두었던 우울한 감정도 같이 올라오려고 하기에 필사적으로 나 자신과 싸우며 운전을 계속했다.
이런 길을 족히 한 시간은 달려왔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집에 도착했고 2박 3일 여행을 하고 온 것처럼 온몸이 천근 만근이다.
여전히 집 바깥에서는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터뜨리는 폭죽 소리가 시끄럽다.
그냥 나도 남들처럼 러이 크라통 축제를 즐기기만 할 수는 없는 걸까.
그냥 나도 남들처럼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냥 나도 남들처럼 회사가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할 수는 없는 걸까.
우울한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이렇게 화려한 축제 기간 동안 상태가 나빠진 것을 보니 인생이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구나, 다시금 깨달았다.
그래도 어두운 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리면서 나는 무서웠고 사고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 운전을 했다.
이건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의 움직임이지 삶을 포기한 사람의 움직임은 아니다.
유튜브에서 나이가 90세가 되신 심리학 박사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앉아 있으면 일어서고, 서 있으면 뛰어라' 무언가를 다르게 해 보라는 의미였다.
지금의 치앙마이 생활도 한국에서의 우울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나름의 해결책이었고 이 생활로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치앙마이 일년살기를 포기하고 다른 방법으로 옳겨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