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으로 어그로를 좀 끌어봤다. 내가 회사 생활을 계속했고, 컨텐츠 제작을 담당하는 역할이었다면 이런 식의 제목을 짓도록 강요받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성질 급한 한국인은 모든 것을 빠르게 해결하기를 바라는데 그것이야말로 환상이고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지병인 거북목 일자목 증상은 자세 관리를 하지 않으니 금방 재발되었고 우울증 증상도 '이제는 극복했어!'라고 생각했더니 다시 마음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어제저녁인가에는 '역시 죽는 것 말고는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없겠지?'라는 생각마저 떠올랐다. 너무 위험한 생각이기에 글을 썼고 글의 결말을 '나는 아직 삶의 의지를 갖고 있다'로 적었다. 죽는 게 무서워서 조심해서 운전했다는 것은 죽기 싫다는 의미일 테니 거짓으로 쓴 글은 아니다. 반대로 이런 내용의 글을 써서 내 마음을 달랜 것이기도 하다. '봐라, 너 어젯밤에 운전하면서 사고날까봐 무서워했지 않냐, 이건 니가 죽기 싫다는 의미니까 괜히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살아갈 생각이나 해라'
최근에 멘탈이 무너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부모님과 연락을 끊은 상태인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김장 김치를 보내주겠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은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며 담당했던 사업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눈 것이다.
엄마에게 연락이 왔지만 나는 '그러지 말아 달라'라고 답했고 이런 일은 내가 집에서 독립을 하고 난 이후 수백 번을 경험한 상황이다. 내가 아무리 그러지 말아 달라고 말해도 엄마는 나에게 집요할 정도로 본인의 의사를 관철시키고자 한다. 별다른 전략이 있는 것은 아니고 엄마가 원하는 상황에 대한 요청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엄마의 요청을 거절할수록 나의 마음의 짐은 쌓인다. 하지만 엄마의 요청을 수락하는 것이 거절하는 것보다 몇 배의 고통이다. 엄마의 요청을 수락한다고 해도 절대로 엄마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요청을 들어줄수록 요청이 많아진다. 엄마의 요청을 감당하느라 피폐해진 나의 정신 건강을 돌볼 수 없었고 정신 건강이 피폐해지는 것이 심해져만 갔다.
나는 영원히 자유 의지를 갖고 살 수 없는 걸까.엄마들은 딸을 자신과 동일시해서 딸의 아픔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고 하는데 나의 엄마가 나에게 정확히 그렇다. 딸인 내가 싫다고 하는 것을 '싫어? 그럼 말고'라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끝없이 강요한다. 엄마와의 관계는 경찰이 범인을 제압하듯 엄마가 나의 목을 거칠게 붙잡아 바닥에 고정시켜 두고는 그것도 모자라서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내 몸 위에 올라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싫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엄마의 의견에 반대하면 '너는 딸이 되어서 너무하다, 딸이 엄마 말을 잘 들어줘야지, 다른 집 딸들은 어떻다는데, 내가 살아야 얼마나 살겠느냐'와 같은 비난과 하소연으로 이어지고 그걸 듣는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와 죄책감은 상상도 못 할 정도다. 이제야 드디어 부모님에게서 벗어나 나의 건강과 안녕을 챙기고자 하는데 엄마는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김장 김치를 가져가라는 연락을 한 것이다.
엄마의 요청을 거절하고 나는 며칠을 앓아누웠다.
두 번째 사건은 오늘 낮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전직장에서 경험했던 정부 사업을 운영하는 포지션으로 어떤 회사에서 면접 제의가 왔고, 해외에 나와 있는 상황이라 제의에 응할 수 없음을 알렸다. 대신 해당 사업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면 화상으로 스몰톡(가벼운 대화)을 해드릴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스몰톡 요청이 들어왔다. 그들은 이미 나의 전직장 대표 및 임원들과도 해당 정부 사업 운영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상황이고 나에게도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었다는 분들과 회사 생활을 하면서 크게 사이가 안 좋았었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크게 치솟았다. 한 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해서 최대한 설명을 드렸는데 가벼운 대화 자리였지만 다시 회사 생활로 돌아간 것 같아서 당시의 고통이 온몸으로 밀려 들어왔다.
오늘의 스몰톡 자리는 내가 참여했었던 정부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즉, 선의에 의해 참여한 것이었지만 대화에 참여한 분들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평가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을 느끼며 속이 울렁거렸다. 이런 환경으로 다시 돌아가서 일을 하라고 하면 나는 완전히 무너져버리겠구나 싶어서 치앙마이 생활이 끝나고 난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지금의 정신 상태는 건강하지 않습니다'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양껏, 최선을 다해 지쳐버렸지만 이것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것은 나만의 몫이다. 금방 상태가 좋아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완벽하게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비법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 잘 대응해서 상태가 호전된다고 해도 나의 멘탈을 무너뜨릴 사건이 언제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고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을 때 내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그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해 보는 것이 내가 치앙마이에서 얻어가야 할 결과겠구나.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그렇게 찾아낸 우울증 대응 방법 중 오토바이를 타고 치앙마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은 매우 효과가 크다.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스스로 운전해서 간다는 행위 자체가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다음 달에는 치앙마이에서 천천히 운전하면 4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치앙라이까지 오토바이 여행을 떠나보려고 한다.
*아래의 사진은 얼마전에 다녀온 치앙마이 근교 '훼이 뚱 타오 저수지'라는 곳이다. 치앙마이 외곽 곳곳에는 이런 힐링 스팟이 자리잡고 있고 한적한 도로를 달려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돌아오는 것은 기분을 환기시키기에 훌륭한 처방이다.
나는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고, 나의 노력을 자각한다는 사실이 마음의 안정에 약간의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