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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Dec 03. 2023

금주 100일 차를 맞이한 소회

#치앙마이 일년살기

날짜를 세어주는 어플에 101이라는 숫자가 떴다. 


어플의 숫자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단단해짐을 느낀다


오늘부로 금주를 시작한 지 101일 차가 되었다는 의미. 


고작 3개월 전 즈음인 23년 8월 25일 새벽, 나는 공황발작일 것으로 예상되는 아주 강력한 증상을 겪고 그날 오전부터 금주를 시작했다. 


금주는 생각보다는 쉬웠다. 공황발작 증상은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강력했고 다시는 그런 자극을 겪고 싶지 않았다. 일종의 충격요법 치료를 받은 것이다.


요즘은 한국에서 친구가 찾아와 나와 2주간 함께 머물며 여행을 즐기는 중이고 어제저녁 식사를 하며 그녀에게 내가 금주 100일 차를 맞이했음을 알렸다. 그녀는 맥주잔을, 나는 탄산수잔을 들고 금주 100일을 축하했다. 


친구는 종종 태국의 맥주를 즐기지만 그런 그녀를 보며 같이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친구에게 나에게 미안해하지 말고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라고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친구도 나에게 함께 술을 마실 것을 권하지 않는다. 서로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서로의 행동을 존중한다. 


밤마다 친구와 넷플릭스로 '스위트홈' 시즌 2를 보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설정이 신선한 느낌은 아니다. 괴물 설정은 좀비 설정에서 가져온 것으로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를 연상케 하고 '죽지 않는 생명체'이기에 정부에 잡혀 생체 실험을 당한다는 설정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시영 캐릭터는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 캐릭터 같기도...주인공 혹은 몇몇 캐릭터가 고집스러울 정도로 선함만 추구하는데 이러한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는 다소 아쉽다. 워킹데드를 참고할 것이었다면 워킹데드의 주인공격인 '릭'이 얼마나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뇌하는지까지 참고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것이 더 현실적이다. 


그래서 왜 스위트홈 이야기를 꺼냈는가 하면, 인간이 아니라 괴물(감염자)이라고 기생충 취급하고 박멸하는 설정을 통해 사회생활의 폭력성에 대해 떠올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이상으로 잔인해질 수 있다. 스위트홈은 극적 설정을 위해 이러한 폭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TV 드라마'이지만 살면서 이와 비슷한 상황은 다들 크건 작건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내가 술에 의존증이 생긴 상황도 사회적인 폭력 상황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정이라는 집단에서는 부모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지니고 있다고 끔찍한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회사라는 집단에서도 다수의 의견, 특히 직속 상사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지니고 있을 때 꽤나 신나게 짓밟혔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술로 달랬다. 나는 내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강제로 따라야 하는 것에서 오는 자기 혐오감을 술로 잊으려 했다. 


서로 맥주와 탄산수를 들고 나의 금주 100일을 축하한 상황처럼, 서로가 나와 같지 않다고 비난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문제도 없을 텐데. 


공황발작이라는 강력한 자극 덕분이기도 하지만 가정/회사라는 집단에서 벗어난 것도 금주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치앙마이에 있는 지금은 집단의 의견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는 환경이라 한국에서보다는 스트레스가 덜하다. 


금주 100일을 넘기는 것은 한국에서도 너무도 이뤄내고 싶은 성과였는데 오랜 시행착오와 고통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목표를 달성하게 되었다. 


금주 100일을 맞이했다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지는 않았다. 드라마틱하게 살이 빠지지도, 건강이 좋아진 것도 아니다. (건강 문제는 식단과 운동 병행을 조금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절대로 내가 이뤄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목표를 이뤄내고 나니 앞으로 어떤 고난을 겪게 될지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한줄기 희망을 보았다. 


금주 100일을 달성한 내가 그 어느 때보다도 자랑스럽다. 살면서 이런 벅찬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다. 부모님이 하래서, 회사가 하래서 이뤄낸 성과에서는 이런 벅참이 없었다.


이전 직장 팀장은 회식을 강요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자리를 거절하지 못했었다. 


다음에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회식을 거절하고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 소속감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거절을 할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이 생겼고, 그 단단함을 더욱더 길러나갈 것이다.


다음 목표는 금주 200일. 


맨 정신으로 보는 치앙마이는 오늘도 푸르다.


카페에서 재즈 공연을 하길래 가서 봤다, 이 얼마나 호사인가
날이 좋으면 치앙마이 대학교 안의 '앙깨우 저수지'라는 곳에가서 드러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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