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2주간 친구가 다녀갔고 공항에 친구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조용히 울었다. 원래는 텅 빈 집으로 혼자 들어서자마자 과호흡이 오고 오열을 할 줄 알았는데, 나름 위기를 무사히 넘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회사생활을 하며 알게 된 친구는 몇몇 계기를 통해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고 공황발작이 왔을 때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혼자 공포에 벌벌 떨며 울고 있을 때 이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빠르게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애초에 감정상태가 극도로 불안한 사람과 대화를 나눠주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런 친구가 치앙마이에 왔고 2주를 한 집에서 함께 지냈다. 함께 치앙마이, 치앙라이, 빠이를 여행했고 2주 내내 내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좌석에는 친구가 앉아있었다.
다 큰 성인이 갑자기 한 집에 살면서 불편한 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함께하는 즐거움이 불편함을 압도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질 수 있었다. 친구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자세하게 들여다보기를 권했는데 혼자라면 생각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이를테면 내가 부모님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이 불안함이라고 말해주었더니 친구는 그 감정이 불편인지, 불안인지에 대해 상세히 생각해 보기를 권했고 내가 불안이 맞다고 하니 연락도 하지 않고 아예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지금 불안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답을 하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는데, 그 연락에 답을 하지 않는 것에서조차 불안을 느끼는 나를 보며 친구가 핸드폰을 뺏어 연락을 차단시키려는 것을 말리기도 했다.
친구는 계속 이렇게 말했다. '뭐가 이렇게 심각해?'
부모님으로 인해 불안하면 연락을 차단하면 되는 것이고 그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계속 아빠에게 혼나며 살았고, 그래서 극도로 남의 눈치를 보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아빠의 심기를 건드리면 크게 혼이 났기에 그 공포가 트라우마로 마음속 깊게 각인되었다. 내가 함께 있는 사람이 그 누가 되었건 아빠를 대하듯 대하게 되었고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상대가 원하는 것에 맞추는 것에 익숙해졌다.
어렸을 때는 그 정도가 100이었다면 37세가 된 지금의 시점에는 40정도로 덜해지긴 했지만 아예 그런 성격을 없애지는 못했고 이번 여행에서도 그랬다. 친구로 인해 힘든 점은 전혀 없었지만 나의 신경은 온통 '친구가 나와 치앙마이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 이유로 친구의 감정이 어떤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에 대해서 꽤 자주 물었는데 결국 여행 후반부 즈음에 친구가 한 마디를 했다. '내 눈치를 볼 필요 없다. 내가 괜찮다고 했으면 괜찮은 거다.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너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 해라.'
친구는 본인이 느끼는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뭐 하나를 그냥 넘어가는 것이 없는 수준인데 이런 모습을 보며 조금 심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기도 하다.
극도로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과 극도로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사람. 전자인 나는 후자인 친구를 보며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고 친구를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그래 시발,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언제까지 남의 눈치만 보면서 벌벌 떨면서 살 거야.
이런 친구가 떠나가는 상황은 나에게는 너무 큰 자극이었고 이 자극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느꼈다. 친구가 공항으로 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고 함께 집을 나서는 순간에는 울컥, 감정이 올라오려는 것을 끌어내리느라 고생했을 정도다.
함께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친구는 일부러 계속 장난을 쳤고 덕분에 나도 심각해지려는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그렇게 친구를 보내고 텅 빈 집으로 혼자 들어와 결국 감정이 올라와 눈물을 흘렸지만 과하지 않게 슬픈 감정을 조용히 흘려보냈다.
그래, 심각해질 필요는 없는 거다. 불안한 정신상태로 친구를 맞이하는 것을 걱정했지만 2주간 잘 지냈고 친구가 떠나가 정신상태가 불안해질 것을 걱정했지만 감정을 잘 다스렸다.
아주 천천히, 나의 마음이 단단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치앙마이에서는 꽃 축제가 한창이고 친구와의 마지막 일정은 이곳에서 보냈다
감정이 올라가려는 것을 다스리려 치앙마이 대학교 앙깨우 호수 공원에 나와 명상을 해봤다, 그래 이런데서 명상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인데 쓸데없이 너무 고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