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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Dec 22. 2023

친구보다는 금주

#치앙마이 일년살기

한국에서 친구가 2주간 다녀갔고 그동안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무에타이를 하러 가니 역시나, 체력이 완전 바닥으로 떨어져서 평소에는 쉽게 하던 것도 숨이 넘어갈 듯 힘들어하며 겨우 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그냥 죽어라 운동을 하는 수 밖에는 없다. 평소에는 이틀 운동하고 하루를 쉬는 패턴인데 요즘은 4일 운동 후 하루를 쉬고 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흘렀는데 오늘은 그래도 체력이 좀 돌아온 느낌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수업을 듣는 중이었다.


대체 체육관 앞에 저 마네킹은 왜 세워놓았...


체육관에 갈 때마다 보이던 어린 태국 여성이(이상한 표현인데 그녀는 어려 보였고 여성이니까) 나에게 갑자기 말을 거는 거라. 


"내 친구가 중국어를 좀 할 줄 알아."

"어 그래? 그런데 나는 까올리(한국인)인데?"


내 대답을 듣자마자 그 여성은 미안하다며 크게 웃어 보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쉬는 틈마다 나를 붙잡고 말을 걸더니 수업이 끝나고는 한 시간을 붙잡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에게 말을 건 여성과 그 여성의 친구 두 명과 함께 대화를 나눴는데 알고 보니 정확히 내 나이의 절반쯤 되는 18세, 19세의 어린 친구들이었다. 둘 다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 영어와 태국어, 심지어는 번역기까지 동원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둘은 모두 약간은 성숙해 보이는 외모였는데 말을 시작하니 영락없는 한국의 고등학생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만 나이여서 그런지 이미 고등학교는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전공 이야기, 장래 희망 이야기, 남자친구랑 헤어진 이야기, 다이어트 이야기 등 대화의 주제는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그러다 술 이야기도 나왔는데 10대 후반, 우리나라 나이로는 20대 초반답게 둘 다 술자리를 꽤나 좋아하는 듯 보였다. 금주 중인 나는 '건강을 위해 술을 마시지 않는다' 정도로만 말을 했고. 


술 이야기를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체육관 코치가 '비어? 오늘 마시러 갈래?'라고 대화에 끼어들기도 했다. 


이런 상황뿐만 아니라 태국에서 무에타이 체육관을 다니면 술 마시러 가자는 소리는 참 자주 듣게 된다. 10년 전에 태국에서 무에타이 체육관에 다녔을 때는 나도 종종 체육관 코치, 수강생들과 함께 수업 후에 맥주를 기울이고는 했었다. 


이런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식사하고 잠시 유튜브를 보는데 하필 술과 관련된 영상이 뜨는 거라. 연예인들이 술자리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영상이었다. 이 영상 속에서 술을 마시고 어떤 연예인이 잦은 실수를 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썰을 듣고는 모두 재밌다며 빵빵 터졌다.


나도 그랬다. 술을 마시면 평소에 하지 않는 고삐 풀린 행동을 했고 나중에 함께 술자리에 있었던 사람들과 이때의 일을 너무도 즐겁게 회상하며 이들과의 결속을 다졌다. 


이 영상을 보고 오늘 태국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니 내가 술을 마셨더라면 더 많은 친구를 사귀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십중팔구 그랬을 것이다. 만취하게 술을 마시고 운동하러 나와서 그날 있었던 썰을 풀면서 서로의 거리감을 없앴을 것이다.


몇 년 전에는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어서 같이 흡연을 했던 적도 있다. 친해지고 싶어서, 외롭지 않고 싶어서 그들이 즐거워하는 행동을 함께 했다.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지는 만 37세가 된 지금의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부질없다의 느낌에서 더 나아가서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라며 자존감의 하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시간과 건강을 모두 버렸다. 술이나 담배 없이 마주한 그들과 더이상 할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았던 적도 있다.


내가 억지로 무엇을 하지 않아도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면 되는 것이고. 


오늘은 금주 119일 차고 술 생각은 나지 않는다. 


숙취가 없는 나는 낮에 멀쩡히 일어나 이런 걸 보러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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