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치앙마이에 다녀갔을 때 과호흡이 한 번 왔었다. 정확히는 함께 치앙마이 옆동네 치앙라이를 여행할 때 있었던 일이다.
치앙마이에 도착 후 5일 만에 공황발작이 오고 그 후 2주 정도를 매일밤 울었던 이후 처음이었다. 친구는 이때 카톡으로 매일 연락하며 내가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었던 친구였다.
감정이 무너진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아래와 같은 요인들이 복잡하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함께 2주간 붙어있던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분리/이별)
2주간 친구와 여행하며 체력이 다소 떨어진 상황이었는데 감정이 무너진 날은 너무 무리했어서 체력이 완전히 나가있었다. (체력저하)
같이 지낸 친구가 지속적으로 특정 가족 구성원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이런 가족 구성원이 없다는 생각에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다. (분리/이별)
예전에 공황발작이 왔을 때 공황발작이 오는 원인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다. 무엇인가와 분리(이별)된 상황에서 수면박탈/알코올/카페인 같은 원인이 있을 때 발생한다고 했다.
알코올은 더이상 섭취하지 않고, 카페인은 이전에 비해 현저히 줄였으니 원인에서 제외. 체력이 매우 떨어진 상황에서 분리(이별)에 대해 너무 과하게 인식을 해서 감정이 무너진 것이 아닐까.
나는 아빠의 분노와 엄마의 불안을 더 이상은 받아낼 수 없어서 집과 연락을 하지 않는 상태다.
내가 선택을 했고, 맘 편히 그냥 잘 살아가면 될 텐데 가족과 연락을 끊은 것이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친구처럼 가족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 정상 같아 보이고 나처럼 가족과 연락을 끊은 것이 잘못된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화장실에 혼자 들어가서 꺽꺽 거리며 우는 나를 끌어낸 친구와 이에 대해 두 시간 정도는 대화를 나누고야 겨우 마음이 진정될 수 있었다.
그게 고작 일주일 정도 된 일인가. 지금은 치앙마이 시내 외곽 항동 근처의 조용한 카페? 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평화롭고 조용하다고 쓰려고 했는데 하필 내 자리 옆에 염소... 들이 있어서 시끄러워서 집중까지는 안 된다. 오늘만 이 염소들을 카페에 데려다 놨다고 한다. 직원들이 임시로 우리를 만들어서 염소들을 넣어두었는데 갇혀있는 게 싫은지 염소들은 계속 매애애애 울어댄다.
버려진 공장 건물 같은 컨셉의 이 카페는 로스팅을 직접 하는 카페로 애초에도 원두를 좀 사러 온 길이다. 커피는 한 잔에 80바트으로 현지 물가에 비해 저렴한 편은 아닌데 맛을 보니 금방 가격을 수긍해 버렸다. 산미가 잘 잡혀있는 (아마도) 미디엄 로스트의 원두로 내린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첫 모금에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커피 맛이 상당하다 치앙마이에서 이정도 초록은 디폴트값 예상하지 못한 염소들과의 만남... 야외 좌석으로 나오니 치앙마이 답게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옆으로는 작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물소리와 염소 울음소리, 바람소리 같은 것들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아, 우리에서 탈출하려는 아기 염소와 이 염소를 다시 우리로 집어넣으려는 어린아이들의 실랑이도 함께 구경 중이다.
일주일 만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화로운 감정상태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감정이 무너진 상황에 대해 속절없이 당하지만은 않았고 나름 그 상태를 미리 인지했으며 원인을 분석해서 대응했다.
분리/이별의 상황에 대해서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생각을 평화로운 상황에 대한 감사와 즐거움으로 돌려봤다. 오늘 온 카페 같은 곳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평화로운 치앙마이를 즐기는 중이다. 24년 9월이면 치앙마이 생활이 마무리되고 그 이후로는 이런 평화로움은 다시는 즐기지 못할 수도 있다. 최선을 다해 현재를 즐기고 감사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
그 외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체력'이다. 운동은 우울증을 동반한 증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처방인데 친구와 2주간 여행을 하면서 운동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돌아간 후 2일 운동 후 하루 쉬는 패턴을 4일 운동 후 하루 쉬는 패턴으로 바꾸어 운동의 강도를 높였다. 덕분에 집 나간 체력도 보다 더 빠르게 돌아왔고 온몸이 아파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줄어들었다. 요즘 운동을 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면 치앙마이에 무에타이 전지훈련을 하러 온 수준이다. 다행히 지금 다니고 있는 체육관 코치들도 성심성의껏 빡세게 운동을 시켜주고 있어서...운동에 집중하기에 최상의 상황이다.
나이 37세에 나 혼자 치앙마이에서 무에타이 전지훈련 중...
이 모든 상황은 친구가 다녀갔기에 발생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친구가 오기 전에도 꽤나 심플한 일상을 보내면서 감정이 흔들리지 않게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가 오고 2주간 운동도 거의 못하고 친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싫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친구 덕분에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경험하고 이겨낼 기회를 얻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을 때 감정의 무너짐을 경험해서 안전하게 이 감정에 대응하는 법을 연습해 볼 수 있었다.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평화로운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일상일 수 있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니 제발 즐기라고 말이다.
그래, 나는 치앙마이에서 나름의 힐링캠프를 보내고 있고 치앙마이를 떠날 때 즈음에는 나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하고 스트레스 상황에도 더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는 내가 되어 떠날 것이다.
일생에 일 년은 이렇게 보낼 자격이 나에게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