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라

by WH Ann


벌써 두 달이 지났고

벌써 이 년이 되어간다.

나의 나이에도 숫자 2가 붙었고

아쉽게도 22년은 아니다.

와인의 빈티지를 보며

고작 2018년밖에 안되었네

생각해 보니 4년이나 지났었다.

고치지 못한 나의 괘종시계는

그때부터였나 보다.

나는 오늘 살생을 두 번 하였다.

지구는 인간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존중하려 했건만

내 안에 존재하는 못된 심보가

대리만족을 위해

너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고

실패하면 뭐.. 어쩔 수 없고.

다시 월요일이 시작되고

2주라는 시간을 내게 주고.

뇌가 메말라함이 느껴진다.

엄청난 기아가 되어

내게 계속 요구하지만

지금 내 상태는 책을 읽을 수 있지 않다.

이러다 또 어느 날은

한 권을 집어 드는 날이 있겠지.

한두 시간 만에 읽어낸 ‘그 환자’처럼.

책장에 누워있는 베르나르의 것들을 보며

무슨 값진 금은보화라도 얻은 마냥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데

단 한 글자도 소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작품에 대한 강박이나 고집은

쉬이 꺾이지 않는다.

나도 약간은 단순해지고

용감해진 듯하다.

내가 제일 민감하던 부분에서

손을 떼니.

뭐, 자의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때의 선택은 지금으로선 만족이고

약간 내 자신이 버겁지만

책임질만하다.

가뜩이나 물을 잘 들지 못하는 내가

물동이를 들고 찰랑찰랑

물이 조금씩 밖에 튀어나와도

어쩔 수 없듯.

재미지다.

3병째이지만 역시나 엔젤쉬라즈가 제일 낫고

단골 바에서 마시던 쉬라가 그립다.

어떤 쉬라는 묵직한 바디감보다 산미가 강하다.

백 개는 넘어 보이던 와인들 중

쉬라만 골라왔거늘

집에 와서 보니 전부 산미가 강했다.

별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코로나 경계가 풀리면 단골 바나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