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좀 싸고 올게.
언제나 설레는 화장실 가는 길
나는 화장실 가는 걸 좋아한다.
우리 남편도 화장실 가는 걸 좋아한다.
집안에서 화장실은 우리의 최애 장소이다.
우리 집 미니 인간들이 화장실 간다는 사람에게는 아주 관대한 편이라서다. 같이 늑대 놀이를 하는 와중에 놀이의 핵심인 늑대 역할을 맡은 내가 화장실을 간다고 해도 모든 걸 중단하고 순순히 보내줄 정도로 후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상대하는 게 힘에 부칠 때면 똥을 핑계로 화장실로 피신해 사나워진 정신을 재정비하고 눈치 보며 간간히 숨어서 하던 폰질도 맘껏 한다.
"얘들아 아빠 똥 좀 싸고 올게!"
미니 인간들의 이러한 습성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이 선수를 친다. 똥 신호를 받은 남편은 상기된 얼굴로 자기가 곧 화장실에 갈 거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선포한 뒤 화장실 나들이의 필수품인 폰을 두리번거리며 찾는다. 못 찾길 간절히 바랬는데 기어이 폰을 찾아 서둘러가는 뒷모습이 왠지 얄밉다.
남편의 화장실 입장과 동시에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야구중계 소리가 내게 의구심을 일으킨다.
'진짜 똥 신호가 온 게 맞을까?'
'야구중계 시간에 맞춰 똥을 짜내는 건 아닐까?'
같은 처지에 똥 신호 진정성 진위 여부를 따지는 나 자신이 옹졸하게 느껴진다. 그의 대창자 속 상황이 어찌 됐건 화장실행이 설레는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15분이 지나도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나올 똥은 충분히 다 나오고도 남을 시간이다.
어쩌면 우리는 똥에 자비로운 미니 인간들로 인해 유례없이 많은 똥을 배출 아니 짜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오늘은 비가 그친 대신 습도가 어마하게 높은 날이었다. 처음으로 안방 에어컨을 풀로 가동했고 미니 인간들은 시원한 바람에 마구 들뜨기 시작했다. 남편도 그 분위기에 가세하여 액션 게임, 쇠똥구리 똥 굴리기 놀이(지긋지긋한 똥) 급기야 이불을 뒤집어쓰고 각설이 타령까지 해댔다. 미니 인간들은 그런 남편을 절대 놓아주지 않았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들려온 익숙한 한마디.
"얘들아 아빠 똥.. 똥 좀 싸고 올게!"
그제야 미니 인간들은 그를 놔주었고 모든 상황은 종결되었다. 남편은 폰을 품에 안고 화장실 문으로 뛰어 들어갔다.
난 속으로 남편에게 외쳤다.
'여보! 애들이랑 놀아준다고 고생 많았지? 똥 오래오래 원 없이 싸고 와! (아니 앉아 있다와) 15분이건 15시간이건 상관없이! 수고했어"
그렇게 그는 한참을 그곳에 머물러있었다.
(더러운 내용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쾌변 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