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싱그러움을 가득 안고

곡성 태안사

by 복수초


방문일자 2021.07.24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다녀온 태안사를 다뤄보려고 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남도 곡성군에 위치해 있지만 실제로는 전라남도 순천시에 더 가까운 곳이다. 태안사 바로 옆에 순천시 월등면이 위치해 있는데, 이 지역은 복숭아로 유명하다. 이는 사실 이때 태안사를 답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태안사 가는 길이 모조리 복숭아나무밭이어서 굉장히 신기했었다. 마침 길가에 직접 재배한 월등 복숭아를 파는 곳들이 많이 있어서 복숭아 한 박스를 사서 먹어봤는데, 정말 달고 과즙이 풍부해서 맛있었다. 물렁 복숭아와 딱딱 복숭아 그 중간의 상태였는데, 무엇보다도 당도와 향이 정말 뛰어났다. 맛있는 식재료는 무조건 현지에서 구해야 한다는 교훈을 새삼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태안사를 방문한다면 여름에 가는 것을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월등 복숭아의 존재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복숭아뿐만 아니라 태안사 자체가 여름의 싱그러운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리는 사찰이기도 했다. 사찰 앞 계곡물도 맑고 풍부한 데다가, 정열적인 배롱나무꽃과 능소화가 시선을 확 사로잡아서 여름이 정말 아름다운 사찰이라고 생각한다.




동리산 태안사는 9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동리산문으로 이름이 높은데, 9산선문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형성된 선종의 아홉 파(派)를 말한다.

고려시대 전기의 탑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과 연못. 태안사 초입의 평화로운 풍경이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능파각(凌波閣)의 모습. ‘능파(凌波)’는 미인의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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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일주문의 모습. ‘동리산 태안사 (桐裏山 泰安寺)’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광자대사탑, 광자대사탑비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우측에 아기자기한 승탑군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승탑군 중에 광자대사탑과 광자대사탑비가 있다. 두 석조물 모두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광자대사는 태안사를 두 번째로 크게 번성케 한 스님으로, 경문왕 4년(864)에 출생하여 혜종 2년(945) 82세로 입적하였다. '광자'는 왕이 내린 시호이며, 법명은 윤다(允多)이다.

승탑군 전경. 좌측에 광자대사탑과 광자대사탑비가 보인다.
광자대사탑은 전체적인 모습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어 완벽한 형태미를 보여주며, 조각수법이 정교하다.
탑신석의 사천왕상
광자대사탑비는 비문이 새겨진 몸돌이 파괴되어 일부 조각만이 남아 있으며, 거북받침 위에 머릿돌만 얹혀 있는 상태이다.
이수(머릿돌)의 앞면. 모서리의 운룡 조각, 중앙의 가릉빈가(극락조) 조각, 그리고 화염보주 장식이 인상적이다.




대웅전의 모습. 태안사는 한국전쟁 때 많은 피해를 입었기에, 지금 있는 건물은 대부분이 복원된 것이다.
대웅전 우측에 만개한 배롱나무꽃. 정열적인 분홍색과 여름 하늘의 조화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적인선사탑 입구에 원추천인국과 참나리가 만개해 있다. 싱그러운 여름날의 풍경이다.




적인선사탑

태안사 가장 안쪽에 자리한 적인선사탑은 동리산문의 개산조인 적인선사 혜철의 사리를 모신 승탑으로, 적인선사가 입적한 861년(신라 경문왕 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혜철(惠哲, 785~861)은 814년에 당에 가서 서당 지장의 선법을 전해 받고, 839년에 귀국하여 곡성 동리산에 태안사(泰安寺)를 창건하고 동리산문(桐裏山門)을 형성했다.

적인선사탑이 자리한 공간은 문과 나지막한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성스러운 영역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적인선사탑 전경. 울창한 숲을 배경 삼아 늠름한 자태를 뽐낸다.
각 부분의 조각이 매우 자세하게 새겨져 있어 사실적인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다.
목조건축의 지붕양식을 사실적으로 나타낸 옥개석.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앙화, 복발, 보륜, 보주 등이 잘 남아있다.
탑신석의 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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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받침돌은 면마다 사자상을, 가운데받침돌은 면마다 안상(眼象)을, 윗받침돌은 옆면에 솟은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았다.




대부분의 사찰은 봄이나 가을이 가장 매력적인 경우가 많은데, 유독 태안사만큼은 싱그러운 여름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여름에 태안사를 방문한다면 옹기종기 모여있는 원추천인국도 감상할 수 있고, 화려한 배롱나무꽃 앞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맑은 계곡에서 물놀이도 즐길 수 있고, 더군다나 근처 월등면에서 제철 복숭아도 구입해 먹어볼 수 있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동안 계속해서 월등 복숭아의 맛과 향이 떠올랐는데, 이번 여름에는 다시 이 지역에 놀러 가서 복숭아도 사고 태안사에서 즐거운 여름날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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