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 건조 눈물

... 항암약 후유증들

by 무위


“맛이 없는 걸 경험해 본 적 있나요?”

“안 그래도 저는 요즘 입맛이 없어요.”

“입맛 없는 것 말고요. 그럼 다시 물어볼게요. 모든 음식의 맛이 똑같을 수 있다는 걸 아시나요? 달지도 쓰지도 짜지도 않는 음식의 맛이요.”

“아, 싱거운 거요?”

“아니요, 무미無味. 미각이 죽은 상태요.”

“그럴 수 있나요?”


미각이 죽은 상태를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다 매번 실패한다. 언어는 경험을 뛰어넘지 못하는구나 하고 좌절한다. 배가 고파서 먹는 게 먼저일까, 맛있어서 먹는 게 우선일까? 맛이 없어도 배 고프면 억지로 먹고, 배가 불러도 맛있으면 더 먹는다. 미각은 생명 현상과 직결된 감각이다. 쉽게 무시하지만 인간의 오감 중에 가장 원초적이고 강렬한 감각이다.


항암약은 미각세포들을 죽였다.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떤 것을 먹더라도 맛은 모두 똑같았다. 무미無味. 미각이 죽으니 촉각이 더 예민해졌다. 모래를 씹는 느낌. 촉각 세포는 왜 죽지 않는지 원망하며 음식을 꾸역꾸역 삼켰다. 음식을 기억의 맛으로 먹었다. 쾌감이 죽은 미각은 지옥이었다.

맛은 인간만이 쾌락으로 정교하게 진화시킨 감각이다. 시각은 매에게, 후각은 멧돼지에게, 촉각은 지렁이에게, 청각은 토끼에게 모두 우위를 양보했다. 인간은 불을 써서 요리를 할 줄 알게 되었다. 미각은 오랜 세월 동안 다른 동물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진화한 인간만의 감각이다.


시험 문제 출제를 위해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을 다시 읽는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이 책의 결론,
첫째,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다.
둘째, 행복에 대한 이해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왜 쾌감을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
"행복은 음식과 사람이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중에서

행복도 쾌락의 감정이라고 본다면 생존을 위해 지속적으로 강화된 쾌락의 마음화가 행복이다. '음식, 섹스, 사랑'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쾌락 욕구다. 그러고 보니 나는 수술 후 먹는 것도 시원찮아졌고, 섹스 욕구도 사그러 들었으며, 타인보다 자신의 내면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최근 나의 불행감의 이유는 분명해진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필요하다.
결국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대화하는 것이라는 서은국의 주장은 과학적이고 철학적이다. 현재의 소소한 행복감은 작은 즐거움과 쾌락에 집중하는 것. 타인에게 나누어 주고 내 존재를 인정받으며 관계 맺는 것 자체가 행복의 과학적 실체라니… 이 책은 다시 읽어도 역시나 멋지다. 내가 다윈주의자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 2018.6.20.수 ‘무위록’ 중에서


침대에 누워서 과거 먹었던 음식의 맛을 기억하려 했다. 항암치료가 끝나면 먹고 싶은 음식 버킷리스트를 노트에 적었다. 노트 가득 적힌 음식 목록들은 항암 치료가 끝나더라도 위없는 사람이 먹기 좋은 음식들이 아니었다. 물회, 소주, 삼겹살, 메론바, 투게더 아이스크림, 바게트, 비빔면, 시장통닭, 잔치국수, 냉면…

항암 치료 중에도 아내가 외출 나간 사이 비빔면을 사 와서 끓여서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가 그대로 버렸다. 세상에 이게 이런 맛이었어? 내가 알던 맛이 아니잖아. 딸을 마중나간다는 핑계로 아내 몰래 메론바를 사 먹고 배가 아파 혼자 몰래 뒹굴었다. 음식 맛이 변했는지 내가 변했는지 모르겠어서 짜증만 났다. 아내 몰래 음식들을 먹고 버리고를 반복했다. 의미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닫자 점차 아무 음식을 몰래 먹는 짓은 하지 않았다. 치료가 끝나면 괜찮아질 거야. 기다림만이 답이었다.

맛에 대한 기억은 식탐을 불러왔고 위가 잘려나간 육체는 번번히 좌절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미각을 느끼지 못하는 경험을 누가 겪어 볼 수 있겠는가. 감각은 경험이다. 비로소 감각을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기도하듯 경건하게 숟가락질을 했다. 나는 음식 앞에서 착한 양이 되어 갔다.




검게 변해가는 피부는 푸석푸석 건조해졌다. 건조해진 피부는 손발에 각질을 만들었고 두껍게 쌓인 각질 밑에 수포가 생겼다 터졌다를 반복했다. 표피 속에 갇힌 림프액은 피부를 가렵게 했다. 긁고 터트리고 딱지가 앉고 짓무르고 헐었다. 피부과 의사는 함포진이라고 했다. 특별한 치료방법을 제시하지 못했고 약은 효과가 없었다. 교착상태의 전투처럼 ‘함포진’은 이름 그대로 지루한 돌격과 후퇴를 반복할 뿐이었다. 죽음에서 겨우 피난 나온 사람에게 피부병은 그저 하찮은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시했다. 피부병은 촉각을 더 예민하게 벼리었다.




하찮은 골칫거리의 진짜 복병은 눈이었다. 항암약 투약 중간을 지나자 시도때도 없이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러다가 그칠 줄 알았다. 죽음을 헤쳐나온 내게 피부병이나 눈물 따위는 별 것 아니다라고 위로했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달 이상을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안과로 갔다. 처음 동네 병원에서는 안구 건조증이라고 했다. 다음 찾아간 곳이 노인성 눈 질환을 잘 본다는 조금 유명한 안과를 찾아갔다. 눈물 흘러가는 길이 막혀서 넘친다는 것이다. 항암약이 약하디 약한 눈물길 세포들을 먹잇감으로 삼은 결과였다.

매일 아침 병원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눈물길을 식염수 담은 주삿바늘로 물리적으로 뚫어보려는, 아니 더 이상 막히지 않게 하려는 시술을 했다. 병원 가까이에 사는 아버지가 한겨울 새벽, 문도 열지 않은 병원으로 가서 대신 예약을 해 주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운도 없는 나는 하루 반나절을 병원 대기실에 앉아 시간을 보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 병원은 노인 환자로 늘 북적거렸다. 노인 백내장 전문으로 유명세를 타는 개인 병원이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를 매일 보던 어떤 할머니가 말했다. “나이도 젊은데 얼른 나아야지요.” 할머니가 해 준 격려의 말과 온화한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매일 합법을 가장한 새치기를 하는 나에게 아무도 딴지 걸지 않았던 어르신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이 이제야 든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시체처럼 누워 안과에 실려 갔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오는 길에 먹는 따뜻한 붕어빵 먹는 재미가 솔솔했다. 물론 맛은 느낄 수가 없었고 기억과 추억의 맛으로 먹었다. 붕어빵에 얽힌 우리 부부 둘만의 추억이 있었다. 그해 겨울은 항암 치료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내 몸은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아내의 부축을 받지 않고는 움직일 수 조차 없는 상태였다. 2013년과 2014년을 넘어오던 나의 겨울은 가장 춥고 힘들었다.


눈물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불편함도 익숙해지니 친구가 된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는데 원래 눈물이 많던 나는 이제 아무데서나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다. 유일한 치료 방법인 눈물관 삽입술을 아직도 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슬퍼서 흘리는 눈물도 항암후유증 때문이라고 변명을 댈 수 있기 때문이다. 올 겨울에는 아내에게 수술을 받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시도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기 때문에 슬픈 감정이 자꾸 올라오는 것 같다. 이제 그만 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