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도餓鬼道

... 위가 하는 일

by 무위




"목구멍이 바늘구멍인 귀신 '아귀'가 된 거 같아."
음식이 자꾸 목에 걸려 속이 상했다. 이생이 내겐 아귀도餓鬼道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위 전체가 잘려나가고, 음식이 통과해야 할 식도가 더 길어졌기 때문일까? 음식을 조금만 급하게 밀어 넣거나, 한 입에 많이 삼키면 목에 걸린다. 그럴 때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화장실 변기로 달려가야 한다. 잘못 넘어간 음식을 위가 힘껏 역류시켜 시원하게 뿜어내는 토악질도 못한다. 그저 꺽꺽 신음소리를 내며 급하게 밀어 넣은 음식의 십 분의 일만 힘겹게 게워냈다가 쉬었다가, 또 게워냈다가 쉬었다가를 반복해야 겨우 숟가락을 다시 잡을 수 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꼭꼭 씹어, 조금씩, 거르지 않고, 자주 먹어야 한다. 나의 식생활 조건은 까다롭게 바뀌었다. 정상인들은 도저히 이해 못할 독특한 생리현상이다. '아귀'를 네이버에 검색해 봤다. '아귀'의 종류만도 36가지나 된다. 그 중,

침구아귀(針口餓鬼) : 전생에 탐욕스럽고 인색하여 보시를 하지도 않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옷이나 음식을 베풀지 않으면서 불법까지 믿지도 않았던 자. 흔히 알려진 모습 그대로의 아귀로, 배는 태산처럼 부풀어 있지만 목구멍이 바늘구멍처럼 작아서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다. 운 좋게 약간의 음식을 먹을 기회가 있어도 음식을 넘기면 불길로 변해 다 토해버리기 때문에 언제나 배고픔과 갈증에 시달린다. 거기다가 몸은 불에 구워지며 동시에 모기, 나방, 해충, 열병 등의 공격까지 받으며 괴로워해야 한다.

딱 지금 내 모습이다. 전생 아니, 이생의 전반기에 나는 인색하게 살았구나. 부정하진 않겠다. 이기적이진 않았어도 많이 베풀지 않고 산 것도 사실이니까. 남은 이생의 후반기는 베풀며 살라는 계시일까?
- 2020.11.18.수 ‘무위록’ 중에서


위가 없는 뱃속에 음식을 채워넣는 일은 곤욕이었다.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음식을 저장하는 위가 없으니 조금씩 자주 먹어야 했다. 두세 시간 간격으로 음식을 먹었다. 분해되지 않은 생짜 음식물이 소장으로 한꺼번에 내려가기 때문에 먹은 음식이 모두 장에서 흡수되지도 못했다. 배고파서 허겁지겁 먹을 것을 찾았고 먹고난 직후에는 식은 땀이 나고 무기력했다. 의사는 이것을 덤핑증후군이라고 했다. 음식을 먹어도 먹어도 기운이 없었고 먹기만 하면 무기력해졌다. 위 없는 사람에게 먹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었다.


먹지 않으면 최소한 몸의 대사를 위해 에너지를 쓸 수 없었다. 항암약으로 점점 무너져가는 몸이 버텨내려면 먹어야만 했다. 먹는 일 자체가 목적이 되니 짐승이 된 것 같았다. 한두 끼 건너 뛰어도 끄떡없던 시절이 그리웠다. 위가 하는 역할이 전무한 상태였다.




음식을 분해해서 소화 흡수가 잘 되도록 만든 다음 저장해 두었다가 조금씩 장으로 내려주는 일이 위가 하는 소중한 역할임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기도로 잘못 넘어간 음식을 허파가 긴급하게 반응하여 밀어내는 것이 사래질 기침이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음식을 위가 긴급하게 밀어내는 것이 토악질이다. 위가 없으니 시원하게 토악질을 하지 못한다. 음식이 급하게 잘못 넘어갈 때가 많다. 그럴 땐 걸린 음식물이 중력이 끌어당겨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구토 또한 위장의 수축 에너지를 활용하는 몸의 메커니즘이었다.

씹으면서 함께 넘어간 공기들은 복부를 팽만하게 만들었다. 꺼억 트림을 시원하게 해보는 게 소원이었다. 위장이 없으니 공기를 내 보는 트림도 나오지 않았다. 헉헉거리며 공기가 장을 따라 내려가기를 기다렸다. 그 공기들은 다 어디로 가느냐고? 당연히 방귀로 나온다. 직장 생활은 불편하지 않느냐고? 나만의 노하우가 다 있다. 이건 영업 비밀. 덕분에 우리집 내 별명은 방귀대장 뿡뿡이다. 음식을 먹고 소화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에서 나는 ‘기다림’을 배워야 했다.

튼튼한 위는 대충 씹어 삼킨 음식도 잘 분해한다. 음식을 분해할 수 없으니 입안이 위장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 꼭꼭 음식을 잘 씹는 것이 음식을 먹는 첫 번째 목표였다. 40년 동안 씹어 넘기던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그제야 체감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밥그릇 옆에 타이머를 놓고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며 밥을 느리게 씹어 넘기는 연습을 했다. 시간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아내에게 매일 잔소리를 들었다.




정상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새로운 비타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비타민 B12 코발라민, 자연계에서 오직 세균에 의하여만 합성된다고 한다. 정상적인 식사만으로도 충분히 섭취 가능한 위에서 합성되는 비타민이다. DNA 합성, 세포 대사, 신경시스템에 관여한다. 결핍 시에는 피곤, 무기력, 기억력 감소, 정신분열증 등의 원인이 되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비타민이다. 위가 없는 사람들은 이 코발라민을 주사로 맞든가, 장에서 흡수할 수 있도록 만든 ‘메코발라민’ 약으로 먹어야 한다. 평생. 매일 아침저녁으로. 식사로 먹는 육류를 나는 알약으로 먹는 것 뿐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소중함은 언제나 부재를 통해 깨닫게 된다. 위가 없는 삶은 생활을 느리게 만들었고 의도적으로도 더 느리게 살아야만 했다. 내 삶은 ‘속도’가 화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