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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an 01. 2024

나는 엠패스empath인가




'몸은 멀어지되 마음은 가까워지기'
그렇게 하니 처음으로 부모님을 생각하는 내 마음에 '빈 공간'이 생겼다. 엄마의 자잘한 걱정거리를 다 들어주느라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나를 돌볼 시간이 생겼다. 모든 것을 걱정하고,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엄마의 성격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나, '너무도 엄마와 닮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내 무의식의 진심은 '엄마와 다른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와 결별해야 했다. 걱정과 조심과 회한의 삶 대신, 도전과 열정과 이성의 삶을 택하고 싶었다.

'엠패스empath:초민감자' 타인에게 무한한 공감 능력을 발휘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진정한 '편'이 되어주지 못하는 사람. 엠패스들의 특징은 맞장구 잘 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는 쉽게 공감하면서, 정작 자신의 아픈 감정을 충분히 보살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 정여울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짦은 심리 수업365> 중에서


나는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아니다. 나야말로 어머니를 하나도 닮지 않았다. 내 의식의 세계에서 미운 사람은 아버지였지만, 무의식은 어머니에게서 달아나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성인이 되면서 어머니와 물리적, 심리적 거리두기를 일생일대의 과제로 삼은 사람처럼 살았다.


어머니는 평생 걱정과 우울을 옷처럼 걸치고 다녔다. 어머니의 감정 찌꺼기들에게 전염되듯이 나도 그것이 내 것인 양 껴입고 자랐다. 어머니의 걱정과 두려움, 한풀이를 들어주는 게 내가 태어난 이유이며, 사랑받는 방법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고 살기엔 나는 어머니와 너무 다른 사람이란 자각이 선명해졌다.

"내가 일찍이 너를 독립시켜 집에서 내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결혼 전에 마치 딸을 시집 보내는 친정 엄마처럼 어머니는 아들인 내게 말했다. 어머니도 내가 당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다른 삶을 갈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챘었다.

"어머니가 잘못한 게 아니라, 내가 그러지 못한 거니 책망하진 마세요."

맞다. 그때 나는 떠나는 게 두려워서 그러지 못했다.


나는 '엠패스'인가?




어머니가 더 미워지기 전에 나는 결별해야 했다. 혼자 살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은 결혼이라는 운명 앞에서 지켜지지 못했다. 기댐의 대상이 어머니에서 아내에게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결혼은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롯이 혼자서 우뚝서기는 실패했는 지도 모른다. 기댐은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라서 그렇다는 걸 아내를 통해서 배웠다.


달아나기는 완전한 정신적 독립과 맞닿아 있다. 더 멀리 부모로부터 달아나야 한다고 무의식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래야 너는 진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너는 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어머니로부터 분리된 시간이 더 이상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게 만들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듯이 어머니를 이해할 공간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자식을 바라볼 때 부모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닮은 모습을 찾는다. 자식과 자신의 공통점을 발견하려는 습성은 가족공동체 속에서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사용된다. 이런 건 나랑, 저런 건 당신이랑 똑같애,하며... 그렇게 따지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보편적 심리를 가졌다. 비슷한 점을 찾으면 모두 찾을 수 있다.


자식을 볼 때 자신과 비슷한 점을 보면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간 개인이 갖는 특성은 장점이면서 단점이 되기도 하는 양면성을 가진다. 자석의 같은 극성은 밀어내듯이 자식과 비슷한 점에서 자신의 단점을 발견하고 이런 건 닮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자식에게 더 많은 제지를 가하게 된다. 부모의 걱정과 두려움은 부정적 자기인식이 자식에게 투사된 조바심의 표현이다.


자식이 내 몸의 일부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므로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을 거라 전제한다. 부모들은 자식의 마음과 행동까지 일체화하여 통제하려고 한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완전히 분리되어 성장한 다른 개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자식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진다.

"내 아들(딸)은 나와 무엇이 다르지?"

"이런 상황에서 딸(아들)은 나와 다르게 생각(행동)하구나."

하고, 부모는 스스로에게 자주 묻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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