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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an 02. 2024

세대 반성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김소연 시인의 뼈 때리는 문장들   #백일백장





지금 이 사회의 기성세대는 그들의 부모 세대처럼 스스로를 '무지렁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배웠다는 자긍심으로 이중 잣대를 들고 세상을 보고 있다. 원칙은 타인에게 엄정하게 강요하고, 원칙에 대한 유연성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발휘한다. 부모 세대의 희생 신화에 무릎을 꿇을 줄은 알지만, 부모라는 개인의 서사에는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자긍自矜과 원칙原則

우리는 배울만큼 배웠다는 자긍심이 있다. 부모의 '무지렁이'  한풀이에 빠르게 선을 그었다. 부모 세대가 물려준 경제적 풍요로 대다수 고등교육의 수혜를 입었다. 우리는 극한의 궁핍이나 생존의 위험에서 빠져나온 뒤에 교육을 받았다. 우리가 배운 교육은 교과서 속 지식이라서 삶의 지혜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학력이 삶의 지혜와 비례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우리가 배운 지식을 지혜라 믿고 있다. 우리가 배운 지식은 얕고 일시적이라서 타인에게 흘러갈 여유가 없다. 앎의 범위가 좁아서 타인과 사회로까지 확장되지 못한다. 자신과 가족 범위에 한정된 이기성을 사랑이라 착각하고 있다. 흐르지 못하는 사랑의 물은 썩는다.


배워서 아는 게 많다는 자긍심은 위험하다. '이중 잣대'로 작동하고 있는 정의는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면 무효하다는 사실이 금방 탄로가 난다. 자기 잣대는 엄중하고 외부로 향하는 잣대는 유연할 때 원칙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자식이 유능하길 바라지만, 자식이 유능해질 수 있도록 독립적이며 자발적인 판단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그 어떤 재난과 불행 앞에서도,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일만 아니라면 다행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일정 부분 도덕적인 불감증도 갖추고 있다. 조금이라도 남들과 다른 면이 있는 자식에게는, 병원에 대려가든 학원에 데려가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진단하고 판정하여 고정하려든다.*


유능有能과 강박強迫

우리가 유능하므로, 자식은 우리보다 더 유능하기를 바란다. 학교와 사회는 우리 세대 욕망의 대리 각축장이 되었다. 자기 욕망의 대리물이 자식이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정보가 자식의 성공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기에 자식이 실패할 권리를 애초에 차단해 버린다.


합리와 실용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맞추려 한다. 우리는 어느 정도 유능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기에 자식이 자신을 뛰어넘는 상황을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자식을 진단하고 판정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중독되어 있다.


자기 유능성에 대한 믿음은 강박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자신과 자식의 부족한 점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숨기거나, 어쩔 수 없이 드러났을 때 피해 의식으로 발전해 쉽게 갈등으로 번진다. 자신이 전문가임을 자처하기도 하지만, 더 똑똑한 전문가를 찾아 보다 완벽하게 수정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노력은 강박적으로 반복된다.  




그들은 완벽한 부모가 될 준비를 해왔으며 완벽한 부모로서의 소신도 출중하여, 자기반성은 하지 않은 채로, 자식들을 향해 선의에 찬 폭력을 행사한다. 형식적으로는 이해와 존중을 표상하기 때문에 자상해 보이지만 그 내용은 강박적인 강요에 가깝다.*


완벽完璧과 위선僞善

우리는 '흠이 없는 구슬'이다. 또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 자기 완벽성이 자식을 향할 때 선의의 옷을 입고 폭력이 되기도 한다. 보다 완벽해지려는 노력은 자식에게 도덕적 가치로 아름답게 포장해 전수된다. '다 너희들 잘 되라'는 말은 위선이다. 결국 자기 욕망 충족에 다름 아님을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위장한 선의의 진짜 속내는 자기 밥그릇 빼앗기지 않으려는 서글픈 싸움임을 고백한다. '기성세대旣成世代'는 '기득세대旣得世代'가 되었다. 우리들이 다음 세대에 물려준 건 피비린내 나는 '경쟁'이라는 정글 뿐이었다. 너희들의 무기력과 무능은 경쟁력 없는 너 개인의 노력부족이라고 몰아 붙인다. 우리의 비도덕과 파렴치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 세대의 가장 큰 악덕은 '위선僞善'이다.


우리들은 결코 완벽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다. 우리들은 유리처럼 깨지기 쉽고 나약하다. 우리 세대 자체가 온실 속의 화초다. 온실 속의 화초는 더 나약한 존재를 알아채고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 세대의 마지막 남은 장점이자 희망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좀 더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김소연의 문장들은 우리 세대를 아프게 찌르면서 따뜻하게 품는다.



*김소연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중에서  발췌한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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