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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Dec 19. 2023

2인칭 시점 소설





이론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에서 이론을 생산하는 주도적인 힘을 가져야 합니다.
- 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 중에서

소설을 알고 싶으면 소설을 쓰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시점, 초점화, 서술자, 입체적 인물, 문체, 형상화... 소설을 써 보면 용어들이 무엇인지 모두 알게 된다. 쓰는 사람은 자신의 작품이 독창적이기 위해서 새로운 방법을 뚫기 위해 분투한다. 새로운 이론의 밀알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 '독학자 예찬' 나의 브런치스토리 중에서


다소 힘이 들기는 하지만, 나는 무엇이든 직접 창작해 보게 하는 수업을 자주 한다. 창작 수업이 어려운 이유는 학생들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이고,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이고, 귀찮아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학원을 가야하고 시험공부를 해야해서 시간이 없고, 스스로 창작하는 활동을 거의 해 본 경험이 없고, 전문가들이나 하는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한다. 단 한 명의 질문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리고 언제나 질문하는 학생은 반드시 나타난다.




S#1. 첫 번째 차시.

"이번 학기에는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프로젝트 수업을 할 거예요. 과제는 각자 소설가가 되어서 학기 말에 짧은 소설 한 편 써서 제출하면 돼요."

학생들이 술렁거린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새어나오고 낯빛이 어두워진다.


"소설 이론이나 쓰는 방법 같은 건 수업하지 않을 겁니다. 음... 그냥 팁을 하나만 줄께요. 예를 들어 최근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재밌었던 사건 하나 아침에 등교해서 친구에게 얘기해 주는 겁니다. 그 얘기를 손으로 받아적으면 돼요. 그런 이야기 들려 줄 때 어떻게 하죠? 예, 맞아요. 약간 뻥이 들어가죠. 그래야 재미있으니까... 자, 그런 느낌으로 쓰면 돼요. 목표는 친구를 내 이야기에 집중하며 재미있게 듣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대책없이 과제부터 던져 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생각한다.

나한테 일어난 재미난 사건엔 뭐가 있을까?

아, 뻥을 썩어도 된다고 했지, 어디까지나 이건 소설이지?

그 사건에 개입된 사람은 누구지?

그 사람은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을까?

그 사건은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 벌어진 거지?

나는 왜 굳이 이 사건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S#2. 중간 차시1.

"선생님 질문있어요. 시점은 1인칭과 3인칭만 있는데, 2인칭으로 쓰면 안 돼요?"

문학 소녀, 신희가 교무실로 찾아와 질문을 했다.

"2인칭은 '너'가 주어가 된다는 건데 그럼 '너'를 주어로 된 문장으로 계속 써봐. 그거 흥미로운데..."

질문을 받자마자 떠오른 소설이 있어서 신희에게 추천했다. '너'가 주어가 되어 서술되는 소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학교도서관에 있으니 대출해서 읽어 보라고 했다. 신희는 평소에 학교도서관에서 자주 얼굴을 마주치는 학생이다. 나는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




S#3. 중간 차시2.

"선생님 그런데 '너'를 주어로 계속 쓰고는 있는데 이건 무슨 시점인 거죠?"

신희가 찾아와 질문했다.

"글쎄... 선생님이 아직 너의 소설을 읽어 보지 않았으니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럼, 그 이야기에 '나'를 절대 넣지 말고, '너'만 넣어서 소설을 끝까지 완성해봐."

순간 나는 당황했지만, 신희가 궁금해 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서 한 가지 팁을 더 보탰다. 신희한테는 욕심이 계속 생겨 과제가 하나씩 더 늘어났다. 신희는 내가 추가하는 과제를 즐겁게 받아냈다.




S#4. 중간 차시3.

"선생님, 소설 완성했어요. 그런데 쓰면서 뭔가 이상했어요. 선생님 말씀 대로 '나'를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 '나'가 문장에 들어가는 거 있죠. 그래도 끝까지 '나'를 빼고 쓰기는 썼어요."

끝까지 완성한 신희가 대견했다.


"'나'를 빼고 쓰니까 어떤 점이 힘들었고, 어떤 점이 좋았어?"

나는 계획없이 생각나는 대로 물었다. 가르치려는 의도라기보다 그냥 궁금해서 물었다.

"아, 좋은 거 하나는 말 할 수 있어요. 내 친구의 이야기를 썼는데 '너'라고 부르면서 썼더니, 친구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마치 그 친구한테 편지를 쓰는 것처럼요."


이쯤에서 가르침 직업병이 도져서 마지막으로 신희에게 질문했다.

"신희야, 네가 쓴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였니?"

"그거야, 저죠."

"그걸 서술자라고 하는 거야.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사람. 그럼 서술자는 소설 속에서 주인공 '너'의 사건과 연루되어 있었니?"

"네, 저와 싸운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자꾸 '나'가 튀어나오려고 했을까요?"


"시점은 서술자를 기준으로 나뉘는 거야. 그럼 너의 소설은 1인칭이니, 2인칭이니, 3인칭이니?"

"1인칭?, 2인칭? '나'를 주어로 쓰지 않았다고 '나'가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결국 서술자는 '나'인 1인칭 소설이네요."

"맞아. 1인칭 소설. 그리고 이야기는 친구 '너'에 초점이 맞추어졌으니 이것을 '초점화'라고 해. 그렇다면 2인칭 시점의 소설(너가 서술자가 되는 것)은 이론상으로 존재할까? 그 문제는 보고서로 써 봐."




S#5. 마지막 차시.

"모두 멋진 소설들을 썼더군요. 스토리가 재밌는 것도 있었고, 인물이 독특한 소설도 있었고, 묘사를 잘 한 작가도 있었어요. 자기 소설에 대한 평가멘트는 내가 달아놨으니까 참고로 하구요. 자, 마지막 과제 나갑니다. '주제, 구성, 문체, 인물, 사건, 배경, 시점, 묘사, 서술, 서술자, 캐릭터, 갈등...' 지금 나눠준 학습지에 나열된 단어들은 소설 용어 키워드들이예요. 이 것들 중에  세 개를 선택해서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고, 이번에 소설쓰기 경험을 생각하면서 그 용어를 설명하는 보고서를 써서 제출하세요. 소설 쓰면서 어려웠던 키워드를 선택하면 되겠죠."


신희는 '시점, 서술자, 인물' 키워드를 선택해서 정의를 내리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써서 보고서를 제출했다. 신희는 인물의 내면을 말하든, 모습을 관찰해서 말하든 서술자는 결국 '너'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결론내렸다. 이야기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마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이쯤 되니까 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생각은 철학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문학 소녀 하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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