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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an 12. 2024

나만을 위한 글 VS 당신을 향한 글





"자기만의 것이 타인을 향해 보편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나만을 위한 글과 당신을 향한 글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나온 출연자에게 유희열이 비슷한 맥락의 말을 했다. 자기 스타일의 강한 음악이 타인에게 대중성 있게 다가갈 수 있는가의 문제는 중요하다고 했다. 이상순도, 윤종신도 격하게 동감했다. 글쓰는 작가들의 고민도 결국 이것이다.


이 둘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아 영원히 못 만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둘은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으르렁대다가 개성과 대중성 모두를 놓친다. 독특한 예술성과 보편적 대중성의 접점을 찾는 것이 곧 예술가들의 목표점이다.




자신의 스토리 중 어떤 것을 어떤 방법으로 표현해서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 엄중히 말해서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써 보면 알게 된다. 학교에서 배운 문학 이론은 순 엉터리라는 사실을. 소설가들이 쓰는 이야기도 자기 안에서 나오고, 에세이스트들도 온전한 진실만을 이야기할 수 없다. 에세이를 소설처럼 쓸 수 있고, 소설도 에세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 에세이와 자기계발서의 경계도 없다. 경험과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을 담은 자기계발서는 에세이 영역에 걸쳐 있다. 이것은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 방식의 문제이다. 표현 방식은 다양한 스팩트럼을 가지고 촘촘하게 걸쳐 있다.


그런 점에서 사실 내가 쓰는 글의 정체를 모른다. 일기와 에세이 중간, 에세이와 소설 사이, 에세이와 자기계발서가 교묘히 섞여 있다. 가끔씩 시나리오의 형식을 빌어 에세이를 쓰기도 한다. 사실이 가공되기도 하고 가공된 것들이 사실인 양 착각이 들기도 한다. 내 안에서 나온 말이지만, 순수하게 내안에서 나온 말인지, 누군가가 한 말을 무의식이 내뱉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때도 있다. 꿈에서 경험한 것인지, 현실에서 경험한 것인지 데자뷰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모든 실체의 경계는 모호하다. 편의상 규정하고 나눈 것일 뿐이다. 예술은 무수한 경계들 사이에서 창조된 그 무엇이다.    




글쓰기는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견디다'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만만치 않다. 타인을 의식하는 글쓰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생각에 힘이 들어가고 있다. 생각에 힘이 들어갈수록 쓰는 언어는 가벼워진다. 가벼워서 팔랑거리는 언어는 방향성을 상실해서 허공 중에 흩어진다. 생각의 힘을 빼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어림잡아 30년 이상을 읽고 써왔다. 어쩌면 내게 '작가'라는 호칭이 붙는 순간 글쓰기를 멈추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 있다. 나만을 위한 자유로운 글쓰기는 그런대로의 매력이 있다. 하나의 매력적인 창작물로 작품이 되어야한다는 건 분명히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쓴다는 건 표현하는 행위고 표현은 타인을 향할 때 새로운 가치와 만난다. 쓰면 쓸수록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매 순간 좌절한다. 그 허기의 이유는 내 안에서 고여서 당신에게 흐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만을 위한 글이 당신을 향한 글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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