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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Dec 12. 2021

작가 '금이'와 엄마 '금옥'

... 모험의 길을 택한 여자 이야기




엄마 '금옥' 이야기



"지는요? 규식이도 가는데 지는 와 안 보내 줍니꺼? 지도 핵교 다시 보내주이소."

포와로 시집가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니. 들뜨는 버들의 마음을 홍주가 눌렀다... 버들은 홍주가 대처로 놀러 가는 것보다 학교 다니는 게 더 부러웠다. 마치 홍주는 진짜 양반 댁 아기씨, 자신은 미천한 집 딸이 된 것 같았다.

버들은 홍주를 생각하면 바늘에 손이 찔려 피가 번진 자수보가 떠올랐다. 아무리 수가 잘 놓였어도 피가 묻으면 쓸모없어진다. 홍주는 잘못도 없이 한순간에 피 묻은 자수보 같은 팔자가 된 것이다. 버들은 여자 운명이 고작 자수보 같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이해되지 않았다.
- 이금이 <알로하,나의 엄마들> 중에서


군대 이등병 때 엄마에게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기억한다. 편지를 읽으면서 내무반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주변 선임병들이 무슨 일이냐며 달려왔다. 애인이 변심했느냐고, 누가 돌아가셨냐고 걱정했다. 나는 대답을 못하고 엉엉 울기만 했다. 도저히 멈출 수 없는 눈물이란 걸 알았기에 눈물꼭지를 무방비로 열어버렸다. 그리고 끝까지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한 문장을 읽고 그 문장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다. 한 장 짜리 편지를 읽는데 한참 걸렸다. 단어와 문장은 너무 쉬웠지만 쉽게 읽어 내리지 못했다. 맞춤법이 맞지 않았지만 단어와 글자 획 하나하나에 간절한 마음을 품고 있어 빠르게 읽어나갈 수 없었다. 엄마는 용기를 냈다.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의 기호들을 한 땀 한 땀 그려놨다. 그 편지지 위에 나는 눈물 방울로 회한의 수를 놓았다.


엄마는 배움에 목말라 했다. 중학교 진학을 설득하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찾아온 담임 얘기를 했다. 딸들을 공부시키지 않았다. 가난해서 공부를 시킬 수 없었다고 했다. 가난의 원인은 외할아버지의 노름빚이었다. 엄마는 형제자매들 중 누구보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했다. 엄마는 지금이라도 검정고시 공부하고 싶다고 수시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해보세요라고만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때 나는 그 말의 간절함을 읽어내지 못했다. 최소한의 교육 받을 기회마저 박탈 당한 이의 배우려는 욕망을 지금 우리 세대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생존을 위해 한 끼 먹을 기회가 간절한 노숙자의 마음을 알 수 없듯이… <불편한 편의점>의 '독고'가 생각난다.


엄마는 시를 사랑했다. 엄마의 가계부 위에는 소월 시집이 올려져 있었다. 팍팍한 살림살이를 기록하고 나면 소월 시를 읽고 늦은 잠을 청했다. 문학을 전공했지만 소월 시를 좋아하지도 높이 평가하지도 않았다. 한, 슬픔, 우울, 생활고, 아편, 자살… 그의 클래식한 시를 촌스럽다고 여겼다. 나는 차라리 천재 시인 이상의 이상한 시와 그의 뮤즈 금홍과의 로맨스에 매료되던 청년 딜레탕트였다. 엄마는 소월의 시를 사랑했고 지금은 소월 시가 가장 엄마를 닮은 시라 여긴다.


소설 속 '버들'의 나이 때 지역의 국회의원 집안에서 엄마를 시집 보내라는 혼처가 들어왔는데 엄마는 망설이다가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공부도 시켜주고 신랑될 사람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자기에게 왜 결혼을 하려는지 의심을 하며 두려웠다고 했다. 자기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을 것이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그 누구도 딸의 자존감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바깥을 떠돌다가 늙고 지쳐 집에 들어온 외할아버지는 초가집 아랫목에 누워 밤새도록 천식기침을 토해냈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까 무서웠다. 엄마는 형제들 중 외할머니를 가장 많이 닮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내 기억이다.


"그때 나는 어렸고 내 인생이 어떻게 변하게 될 지 두려웠어. 많이 배우지도 못한 내가 그런 혼처에 들어가는 것이 불안했어. 그리고 그런 사람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를 택한 것이 의심스럽기도 했고..."


자신이 평생을 의지하고 살아야 할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결혼하는 게 무서웠을 것이다. 소설 속 버들처럼 엄마는 끝내 모험의 길을 택하지 못했다. 엄마는 자신의 의지로 아버지와의 사랑을 믿었을 것이고 선택했다. 아버지와 결혼하겠다는 엄마의 선언에 외할머니의 첫 마디는 "금옥아, 그집에 시집가서 견딜 수 있겠나."하는 낮은 한숨이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집은 어촌 마을에서 소문난 드센 집이었다. 산촌에 살던 엄마 가족이 바닷가 마을로 들어오게 된 배경과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 나는 모른다. 아마도 외할아버지의 노름빚 때문에 도망나온 것일 거라는 게 내 추측이다. 매일 술을 먹는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 할 때 내게 했던 이야기다. 엄마는 그 순간을 인생의 변곡점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인생은 변곡점이 되는 순간에 모험을 요구한다. 그 결정의 순간이 대박이 될 수도 쪽박이 될 수도 있다.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불안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배짱이 필요한데 그걸 부릴 수 있는 게 쉽지 않다. 그 순간이 변곡점이 되는 지는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된다. 인생은 재미있는 게임이다. 모험과 도전이 인생을 향해 던지는 진지한 질문이다. 그 순간에 대답해야 할 사람은 순전히 자기자신밖에 없다.


배움의 기회가 넘쳐나는 시대다. 기회가 넘쳐나니 스스로 필요를 찾고 싶지 않은 무기력에 넘어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아이들을 매일 본다. 가만히 기다려만 주어도 인간은 스스로의 길을 간다. 변곡점의 모험을 즐길 권리는 오직 자신에게만 있다. 실패하여 성장의 통증을 겪는 선물을 받을 행운도 자기의 것이다.




작가 '금이' 이야기



나는 엄마와 모국어가 다르다는 사실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도 어차피 부모와 자식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울 때는 너무 답답했다. 내가 더듬거리던 조선말을 팽개치고 영어로 말하면 엄마는 상처받은 얼굴이 됐다. 마치 내가 날카로운 무기라도 휘둘러 댄 것 같은 표정을 했다.

엄마는 과거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어쩌다 물으면 오늘 살기 바빠 어제 일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며칠 동안 이모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기억력이 부족한 건 엄마의 큰 장점이었다. 내가 보아 온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대지>를 읽다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여주인공 올란의 모습에 엄마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날마다 되풀이 한다면 생각만 해도 우울한 일이다.

"돌이켜 보면 하와이 와서 그때가 젤로 신바람 나고 행복했다 아이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Jesus Christ" 남편 떠난 여자, 남편 죽은 여자, 남편한테 버림 받은 여자 셋이 모여서 뭐가 좋았다는 거야?"

엄마는 가난해서 팔려 오거나 일본 없는 세상에서 편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처럼 꿈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비록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엄마는 매순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문득 그런 사람이 내 엄마인 게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연적으로 남은 두 사람이 따라 떠올랐다. 로즈 이모가 내 곁에 있어 줘서 행복했다. 그리고 송화가 날 낳아 줘서 고마웠다. 레이의 끝과 끝처럼 세 명의 엄마와 나는 이어져 있다. 나는 또 어느 곳에 있든 하와이, 그리고 조선과도 이어져 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언제나처럼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물 안 주길 잘했구로."

엄마가 웃었다. 우리는 비를 피하지 않았다. 하와이에 산다면 이런 비쯤 아무렇지 않게 맞아야 한다.

파도처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갈 것이다. 할 수 있다. 내겐 언제나 반겨 줄 레이의 집과 나의 엄마들이 있으니까.
- 이금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 중에서


아내가 내 의견도 묻지 않고 이금이 작가 강연 참가신청을 했다. 작가들 북콘서트나 강연에는 잘 안가지만 호기심이 약간 생긴다. 이제 나도 저런 자리에 서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 같은 것이 생겨났기 때문일까.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다. 아내는 지금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나 이금이 작가 알지. 그런데 이금이 작가 책을 읽었었나?"

에버노트 '책' 카테고리를 뒤진다. 없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아차린다. 청소년 문학, 장르도 생소했던 이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작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고 성실한 그녀의 스타일이 어쩌면 내가 가고 싶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다. 청소년들과 매일 생활하고 있는 내가 청소년 소설을 그 누구보다 잘 쓸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오늘 강연의 주제가 그녀의 최근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니 이 소설을 읽어 봐야지. 늘 하던 방식대로 학교도서관에서 그녀의 소설을 모조리 대출해서 교무실 책상에 나열해 꽂아 놓는다. 이름은 아는데 끝내 한 권도 읽지 않은 작가. 그녀가 청소년 소설을 쓴다는 것. 만화캐릭터를 넣은 책표지. 청소년들의 이야기. 나는 매일을 청소년들과 생활하고 있어서 청소년 소설을 무시해 왔다. 의사가 의학드라마 보지 않고, 판검사가 법정드라마를 싫어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은 북콘서트나 강연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순수한 호기심으로 아내와 함께 참여했다. 책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 지금껏 살아왔으면서도 아직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서글퍼진다. 나도 그녀 못지 않게 꾸준함과 성실함을 가지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갈린 걸까,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초등학교 남학생 빼고는 강연장에 성인 남자는 나 혼자다.


오늘의 강연은 '하와이 조선 이민사' 역사 이야기였다. 그녀가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쓰기 위해 현지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소설 이야기 재탕인 역사 강의였다. 이 소설을 중심으로 강연을 한다면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강의 재료가 이것이 될 거라는 걸 나는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지루하지는 않았다. 내용이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던 것들이었으니까. 그녀는 초고를 완성하고 하와이에 취재를 갔다고 한다. 미리 초고를 쓴 다음 보완할 점을 점검하며 자료를 수집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팁을 알려 주었다. 아하,하고 무릎을 탁 친다.


하와이 사탕수수로 돈을 벌러 간 노동자를 떠올리면서 아버지의 사우디아라비아 중동 건설 노동자, 베트남 용병 파견, 아내의 막내외삼촌 가족의 캐나다 이민 등 내 가족사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모티프가 된 '사진신부' 세 명이 찍힌 흑백 사진 한 장을 본다. 꽃과 우산과 부채를 든 앳된 세 명의 여자. 나도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노동자로 출국 전, 이제 막 태어난 동생을 엎은 엄마와 찍은 우리집 앨범 속 폴라로이드 사진. 김포공항 가기 전에 박정희 장례식장 앞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이 사진이 사회상과 가족사를 함께 아우르는 나의 상징적 사진임을 깨닫는다. 그래도 나의 가정은 위태로웠지만 해체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이겨왔다. 가족을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질문시간에 누군가가 자신은 '태완'이라는 인물에 마음이 갔다며 태완을 그릴 때 작가의 마음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그래, 이 질문도 나왔어야 했다. '달희'의 묘지 앞에서 개미가 앉은 주먹밥을 물로 씻어내고 먹는 태완을 묘사할 때 작가는 울었다고 했다. 그 장면을 다시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나도 이해한다. 내 아버지들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직 실마리를 찾지는 못했지만,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를 제일 먼저 쓰게 될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직감한다. 그 이야기는 바보같은 아버지가 될 것이다. 나는 아버지 같이 살지 않겠다고 허우적거릴수록 아버지의 늪에 깊이 빠져드는 또 다른 바보 남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도 가야만 하는 길.


작가는 사진신부들의 모험심과 여성 연대의 힘을 이야기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가진 연대의 지혜를 가지지 못한 생명체로 진화해 왔을까. 아니다. 이것은 진화가 아니라 퇴화다. 모성은 이기적이지만 소설은 필요에 따라서 연대의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음을 개연성 있게 풀어낸다. 소설 제목의 '엄마들' '이모들'이고  엄마들이 송화의  '진주()' 키워낸다. 나는 '' 1인칭 시점으로 바꾸어 이민자 2 시각으로 엄마들을 바라보는 '판도라의 상자' 편이 맘에 든다. 작가는 자신이 청소년 소설 작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이런 장치를 만들었다고 했다.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지금 청소년들의 일상, 심리 같은 것을 알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나 방법 같은 것들이 있는지, 또는 요즘 청소년들과의 일상적 접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질문할 생각이 없었는데 나도 질문을 하나 했다.


"접점은 없습니다. 자식들도 다 커서 서른이 넘었고 주변에 아이들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모두 그 시절을 지나오지 않았나요? 청소년들의 심리를 이해해서 묘사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다만 요즘 청소년들의 언어나 트렌드 같은 것들을 잘 몰라서 알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늘 그 부분이 조심스럽지만 부족한 부분들은 독자들이 주제 의식들에 공감을 해 주셔서 그런지 여유있게 넘어가 주시는 것 같아요."


예상했다.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운 대답이었지만, 당연하고 진실한 대답이다. 이름하여 우문현답. 쓰려는 대상과의 거리감이 오히려 훌륭한 이야기꾼의 자질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금이 작가의 이야기꾼으로서의 강점은 따뜻하고 편안한 공감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야기의 재료는 무한대가 된다. 학교, 가정, 학원 이야기에 갇혀 있어 답답했고, 아이들은 좀 더 넓은 세계로 데리고 나가고 싶어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썼다고 한다. 동화에서 대하소설로 확장되는 그녀의 소설 여정에 찬사를 보내고 태도에 관한 힌트를 얻는다. 나는 교사이니 누구보다 청소년들을 잘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소설을 쓴다면 성장소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오만이었다는 걸 그녀가 가르쳐 준다. 좋은 거 하나 배웠다. 내 질문의 의도를 아내는 알 것이다.


그녀는 작가 후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사석이었다면 그것에 관해 그녀의 생각을 좀더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여기서는 그런 걸 질문할 분위기는 아니라서 그만둔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농촌총각들과 결혼하러 들어온 국제 결혼 동남아 신부들과 그들의 삶과 다문화에 대한 이야기들 같은 거 말이다.


며칠전 그녀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동남아 신부들과 하와이 사진신부들의 이야기가 중첩되었다. 2001년 개봉했다가 20주년 기념으로 얼마전에 재개봉했다는 영화 <파이란>의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 바닷가 방파제에서 파이란의 편지를 읽고 오열하는 강재(최민식)를 생각했다. 이방인을 대하는 지금 우리의 자세와 마음에 대해 더 실랄하게 파헤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생각은 아프리카인들의 유럽 이주와 영국의 브렉시트, 우리 세기에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인종차별 문제와 국가와 민족의 개념의 관한 재정의까지 확대된다. 날뛰는 생각은 여기서 접기로 한다.  


작가가 지금 동해에 오징어가 풍년이라는데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오징어잡이 배를 탈 노동자가 없다는 사실을 얘기했다. 할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오징어잡이 어부와 가족, 그리고 사회사가 버무려진 이야기를 쓰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 다문화, 가족, 사회사 이야기를 버무릴 접접을 찾았다.


"가슴 속에 들어온 이야기는 꺼내놓아야 하는 게 작가의 숙명 같은 것인가 봐요."


내 가슴 속에 들어온 이야기는 뭘까 생각한다. 이야기가 너무 많아 못하게 될까 겁난다. 이야기가 터질 것 같다. 싸질러지지 않는 숙변 같아 속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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