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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an 15. 2024

장강명 작가 북토크(2)





소설가로 살아가기

장강명 작가가 천착하는 넓은 문학적 주제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STS(Science Technology Studies:과학기술학 SF'이다. 기자출신답게 꼼꼼한 자료 수집, 가까운 미래에 맞닥뜨리게 될 가장 현재적 문제이기도 하다. 과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도덕적 딜레마와 인문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기술의 현실적 한계 사이에 작가의 역할이 존재한다. 상상과 실제, 윤리와 실용,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작가는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장강명은 한때 언론업에 종사한 적이 있었다. 나도 한 때는 언론업 종사를 꿈꾸던 적이 있었다. 만약 내가 언론사로 흘러들어 갔다면 분명히 장강명 작가와 비슷한 길을 걸었을 것 같다. 언론사는 적당히 경험하고 때려치웠을 것이고 정말 자신이 하고 싶고 잘하는 출판업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그는 어쩌다 작가가 된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 숙명같은 길이 작가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매 순간 멈추고 않고 읽고 쓰면서 살아을 것이다. "싸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쓰게 된다"고. 장강명 작가는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말했다.  


장강명 작가는 이것저것 쓰고 싶은 아이템이 많지만 모두 욕심내기엔 시간이 없어 불가능하다고 했다. 작가에게 시간 부족이라... 작가는 시간이 남아도는 한량 쯤으로 생각하지만, 작가는 조급함에 쫓긴다. 한 명의 작가가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작가는 양보다는 질에 집착한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많이 쏟아내는 작가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이 천착하는 하나의 큰 주제를 변주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를 원한다. 그런 작가를 우리는 위대하다고 말한다. 장강명 작가에게서 지속가능한 작가로 살기 위해서는 '끌어모으기'보다 '버려나가기'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대답하고 싶은) 문제에 하나씩 대답해 나가는, 느리지만 단단한 성실함이 작가의 필수 자질이라고 했다.




소설가가 진짜 작가지

"자만심으로 들릴 수 있는데요. 에세이는 평생 쓸 수 있겠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에세이보다 소설에 더 애정이 있어요. 그래서 소설이 안 써질 때 고민이 깊어요."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알아챘다. 소설이 에세이보다 훨씬 시간과 노동이 더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책이란 순서대로 읽는 것에서 진정한 독서의 힘이 나와요."

맞는 말이다. 소설가다운 발언이다. 소설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놓은 자기계발서나 에세이 출판물이 넘쳐난다. 긴 글을 읽는 사람이 없다. 긴 글을 쓰는 사람은 더 없다. 스마트폰이 바꾸어 놓은 세상 풍경이다. 이미지와 영상마저 길게 집중하지 못한다. 지식과 정보는 조각조각 쪼개지고 파편화되어 디지털 공간을 둥둥 떠다닌다. 그것들을 복사하고 편집해서 재창작 한다. 원본의 아우라가 완전히 사라진 시대에, 손에 넣고 만지작거릴 수 있는 책의 자리는 형편없이 좁다. 장강명 작가의 안타까움, 발언의 의미, 속 깊은 마음까지 나는 모두 이해하고 동감한다.


"작가가 말한 에세이 조각 글은 평생 쓸 수 있겠다는 말이 쉽게 나온 말이 아니야. 에세이스트들을 비하하는 말도 아니라는 걸 나는 이해해. 에세이보다 소설쓰기가 백 배는 시간과 노력이 더 들어가는 순수한 노동이 필요하지." 북토크에 함께 간 아내에게 천기누설인 양 혼자말로 속삭였다.




질문 훈련이 필요하다

언제부턴가 작가 북토크에 가면 방청객의 질문에 내가 작가 입장에서 마음속으로 대답하는 습관이 생겼다. 진짜 작가가 되어 저 자리에 서게 될 때를 대비하려는 걸까. 어디서나 받게 되는 반복되는 질문에 매번 앵무새처럼 대답할 수도 없다. 저 질문의 핵심은 뭐지,하고 도무지 질문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질문도 있다. 무례하게 공격해오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처해야하지,하는 난감함까지.


나의 대답 실험은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다. 실제 상황이라면 반드시 맞닥뜨려 넘겨야 하겠지만, 진땀이 날 것 같다. 때로는 진심으로, 때로는 탄탄한 자료와 논리로, 때로는 풍부한 경험적 예시로, 때로는 유머있게, 때로는 무례한 질문에 대해 상대가 약오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넘기려면 경험과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글만 써서 책내면 그만이었던 옛날 작가들이 부럽기도 하다.


나는 작가의 대답보다 참여자의 질문에 더 집중한다(아내는 나보다 더하다. 질문에 관한 연구와 하부루타 수업을 하고 있는 사람). 힘있고 핵심을 찌르는 좋은 질문 하나가 북토크 전체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다. 좋은 질문은 타인의 생각을 잘 듣고(읽고) 정리(필사와 같은 노력)하고, 자신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구체적으로 다듬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도 혹시 직업병일까. 12년 학교교육을 받는 동안 우리는 질문하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나는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작가 내면을 훔쳐보는 책읽기의 짜릿함

작가의 일상과 주변이야기가 궁금하고,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도 궁금하다. 나는 작가라는 한 인간이 궁금해서 책을 읽는다. 아는 게 많고, 깊이 생각하고,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는 유형의 인간들을 사귀는 방법은 책이 유일하다. 물론 작가는 나의 존재를 모른다. '훔쳐보기' 욕구 같은 묘한 매력을 즐긴다. 작가란 독자의 관음증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줌으로써 자기 만족을 얻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는 용감한 작가를 좋아한다. 이런 점은 여성 작가들이 남자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여성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장강명 작가는 자신을 비판과 회의주의적 인간이라고 했다. 그럴 것 같다. 기자 출신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여성들만이 갖는 대책없는 따뜻함(?) 같은 건 없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대화하면 시원하고 통하는 데가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대화하다가 심하게 싸울지도 모른다. 여성 독자는 작가에 대한 공감이 맹신으로 옮겨가는 지점에 있고, 남성 독자는 작가의 생각에 대한 의심이 부정으로 옮겨가는 사이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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