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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an 17. 2024

헬스의 철학(1)




그녀 눈을 사로잡는 기구가 있었다.
등 운동을 하는 풀업 기구였다. 처음 헬스장에 갔을 때, 그러니까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 여자가 하고 있던 운동이 바로 풀업이었다.

정말로 그런 날이 올까?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그래 그럴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곳은 지수의 궁전이 될지도 몰랐다. 그래. 정말 그랬다. 그러자 문득 지수는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런 기대와 마음, 생각들이 정말로 내 것이었나? 마치 꼭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그래, 전혀 다른 라이프스타일.

그래, 이제 올라가면 된다. 올라갈 것이다. 지수는 등의 움직임과 느낌에 집중했다. 천천히,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별로 무섭지 않았다.
- 강화길 소설 <풀업>* 중에서




중력에 저항

우리는 이 운동을 '헬스health'라고 부른다. 운동의 명칭이 '건강'이라니... 참 웃긴 이름이지만, 정직한 명칭이기도 하다. 정확하게는 '웨이트 트레이닝weight training', 직역하면 '무게 운동'이다. 잘 관리되어 아름답게 만들어진 몸을 보면 제일 먼저 '건강'을 떠올리니까. 인간은 시각에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무게'는 지구의 중력이 관여한다. 근육이 중력에 저항하면서 커지고 단단해지는 운동이다. 무중력의 공간에서 인간의 근육은 성장 동력을 잃는다. 영화 <마션>은 우주정거장에서 장시간 생활하는 인간의 일상을 보여준다. 거대한 우주선의 일부 공간을 회전하여 인위적으로 원심력을 만들어 인간의 발 아래를 끌어당기는 힘을 만든다. 주인공은 회전하는 우주선 안에서 런닝 머신 위를 달린다.


중력은 '관성慣性:익숙한 성질'을 만든다. 우리는 중력 안에 있으므로 관성적으로 살아간다. 관성의 안정과 편안함에 젖어 있다가도 어느 순간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관성에 저항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에너지를 써야 하며, 피로를 견뎌야 한다. 지구에서 중력의 영향을 덜 받는 운동이 수영이다. 수영을 끝내고 나오면 몸은 천근만근 바닥이 끌어당긴다는 느낌이 들고, 헬스를 끝내고 나오면 몸은 하늘을 날 듯이 가뿐하다. 중력의 관성이 감각을 착각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지구의 중력은 인류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상처와 성장

헬스(이제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이라 하지 않고, 통상적인 명칭으로 부른다)는 근육에 상처를 내는 운동이다. 근육이 무게에 저항하면서 얇은 근섬유 조직들이 끊어진다. 트레이너들은  '근육을 찢는다'는 표현을 쓴다. 정확하게 말하면 찢는 게 아니라 끊어진다. 굵은 섬유조직이 일시에 끊어지면 부상負傷이지만, 작은 섬유조직의 끊어짐은 통증만 동반하는 정도에 그친다.


헬스를 하고 나면 근육통이 찾아온다. 초보 때는 밥숟가락 들기도 힘들고 걸음을 땔 때마다 통증으로 신음한다. 헬스의 경력이 쌓였다고 근육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무게를 드는 한 근육에 상처는 없어지지 않으니 통증은 영원히 함께 한다. 다만 초보 때의 격렬한 통증은 점차 사라진다. 근육이 무게에 저항할 힘이 생기고, 무게를 자신에게 맞게 조절할 수 있다.


통증은 쾌락이다. 견딜 수 있는 정도의 통증은 즐길 수 있다. 견딜 수 있다(정확한 기준은 없지만 심리적인 것이다)는 건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측은 환경과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름하여 '기분 좋은 통증'을 알게 되었다면 중급자의 세계로 입문한 것이다. 무게를 들어올리는 때의 통증에 자신감과 충만감을 느낀다. 세트수와 횟수가 거듭되면 통증이 사라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근육의 힘이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바벨을 추가한다. 통증이 성장이다. 이것이 헬스의 매력이다.  




휴식과 치유

휴식할 때 근육이 성장한다. 끊어지고 상처난 근섬유 조직이 붙으면서 단단해지고 굵어진다(뼈가 골절되었다가 다시 붙은 자리가 더 단단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의학적 과학적 정보라기보다 경험적 통찰이다). 상처를 치유할 회복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빨리 몸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매일 헬스장에 달려가는 시기가 있다. 위험한 시기다. 회복할 시간이 없이 상처가 쌓이면 '부상負傷'으로 이어진다.


고급자들은 분할 훈련을 한다. 분할 훈련의 목적은 특정 근육의 휴식에 있다. 쓰는 근육과 쓰지 않는 근육을 나누어서 운동 프로그램을 짠다. 매일 운동을 하면서도 특정 근육(운동에 관여하지 않는 근육)은 쉬게 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근육의 부위와 기능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운동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공부와 경험이 필요한 단계이다. 5,4,3,2분할. 분할 수가 적을수록 특정 근육의 휴식기가 짧아서 운동 강도가 높다.


헬스는 휴식의 운동이다. 휴식할 수 없는 사람에게 헬스는 위험하다. 몸에 상처만 계속 내고 치유할 시간을 주지 않으면 자기를 파괴한다. 위암수술과 항암치료에는 2년이 걸렸지만, 치유의 시간은 10년이 걸렸다(지금도 치유의 시간은 진행 중이다). 젊은 시절 몸만들기에 심취했었다. 바람빠진 풍선처럼 허무하게 근육이 사라졌다. 몸의 근육이 빠져나가는 시간에 마음의 근육을 채워 넣었다. 치유의 10년이 나의 성장기였다. 인간의 몸과 정신은 휴식과 치유의 시간에 성장한다.




*강화길 소설 <풀업>은 영애(엄마), 지수(주인공), 미수(동생) 세 여자가 구성원인 가족의 애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 사이에서 지수(주인공)는 '삶의 자극점'을 찾아나선다. 여기에서 '헬스'는 주인공의 성장을 상징하는 소재이다. 이 소설은 '운동'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 '가족'에 관한 소설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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