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위 Sep 25. 2021

엄마, 이혼해!

…당신들의 완벽했던 날




엄마의 배신


얼마전 그릇정리 하다가 밥그릇이 두 쪽이 났다. 나는 아무짓도 안했는데…
온갖 폭언과 폭력적 사건들을 구구절절이 늘어놓지 않더라도, 수많은 여자들이 감내해야 했던 희생과 고통만으로도, 이혼의 사유는 차고 넘쳤다. 필요한 건 시나리오가 아니라 어머니의 결단이었다.
저녁값은 내가 지불했다. 이혼에 성공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모임이 마무리될 즈음 슬그머니 나가 계산을 마쳤다. 그렇게 아버지가 가지려 했던 주도권마저 박탈했다. 아버지는 조금 더 빼앗겨도 됐다. 지나치게 누리고 살았다…

뒤늦게 화장실에 다녀온 어머니가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이럴 땐 꼭 느이 아버지구나. 딱 아빠야.
… 나는 좀 억울했다. 단지 어머니 편에 섰을 뿐인데. 꿈에서라도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어머니에게서 듣다니.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몸을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물었다.
넌 네 엄마 인생이 그렇게 정리되면 좋겠니?
뭐, 뭐가?
네 말대로라면 내 인생 참…
어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슬플 거 같어.

…나는 좀 황망해졌다. 호되게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등짝이 얼얼했다… 아버지가 차창을 내리고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운전 조심해라… 나는 혼자 남았다. 내가 배웅을 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를 두고 떠난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의 두려움이 이해 됐다.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 천운영 <아버지가 되어주오> 중에서


"엄마, 왜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했어? 우리들도 다 컸으니까 그렇게 힘들면 아빠랑 이혼해. 아빠는 모르겠고 내가 엄마는 도와 줄께."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빠 엄마가 이혼해도 두려울 게 없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런 때가 오기를 엄마보다 내가 더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어릴 때 나는 부부 싸움 중에 이혼이란 단어가 나오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보호 받아야할 울타리가 산산조각 나는 충격적인 사건이라 여겼다. 아빠 엄마가 싸우는 중에도 이혼이란 말이 안 나오기만 간절히 바랐다. 엄마는 너희들 때문이라도 절대 이혼은 하지 않을 거라 했다. 엄마의 말에 믿음이 갔다.

우리가 다 컸으니 이제 나는 이런 말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것으로 생각했다. 술 먹고 엄마와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아버지가 미워서 성인이 된 어느 날 엄마에게 그 권리를 내가 부여받은 양 당당하게 말했다. 쓸 데 없는 말을 했다는 걸 깨닫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부부 둘만의 문제였다.




얼마전 폐차 직전의 차를 새로 바꾸려고 계약했다. 아버지께 언젠가 던져봐야지 하던 농담을 실행에 옮겼다. 즉흥성 없는 농담이 어디 농담이던가. 웃기지만 작정하고 던졌다. 애초부터 반응이나 대답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아버지를 꾸짖는 뼈때리는 말을 하기 해서였. 최근 아버지는 엄마에게 생활비를 주지 않은지 오래 됐다고 했다.  돈을 어디에 탕진하는지 엄마는 눈치 채고 있었지만 내겐 구체적인 말을 아꼈다. 아버지는  의도를 알기나 했을까.

"아부지, 우리 차 폐차해야 하는데 차 살 돈이 없어요. 차 사게 몰래 모아 놓은 돈 있으면 천만원만 줘요."

나는 학생 시절부터 엄마가 용돈 필요하지 않느냐고 묻기 전에 먼저 돈 달라고 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아버지에게 천만원이라는 돈을 내놓으라고 당당하게 얘기한 건 처음이었다. 농담이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아버지는 먼 데를 보며 씩 웃으며  "내가 그런 돈이 어딨노" 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대답과 표정과 억양까지 예상했던 대로였다. 생각보다 싱겁게 상황이 끝나는가 했다.


그런데 충격은 예상 밖에서 터졌다. 엄마는 내 말을 진심으로 믿고 놀란 눈치였다. 옆에 있던 엄마가 급하게 끼어든다. "아부지도 노년 준비해야지. 그런 돈이 어디 있겠노."하며 아버지를 감쌌다. 군무원 퇴직한 이후, 아파트 경비 일 해서 번 돈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갖다 준 적 없다고 한탄하던 엄마였다. 그것을 공격하는  말을 하려던 게 내 의도였다. 번 돈 다 어디다 썼느냐는 나름의 항의였다. 그걸 빌미삼아 아버지의 생일날 말고는 따로 용돈을 챙겨준 적도 없었다. 나에게는 불효를 정당화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엄마의 아버지 감싸기에 순간 배신감이 들어 짜증 섞인 말이 튀어나갔다.

"엄마, 지금 아버지 편드는 거야?"

내가 생각해도 내 말은 아버지의 행동보다도 유치했다.




가끔씩, 고집 센 나를 보고 누나는

"이럴 땐 영락없는 아버지다."

이 말은 나를 피가 거꾸로 솟게 했다. 꿈에서도 듣고 싶지 않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매형과 누나는 엄마, 아버지와 한 지붕 밑에서 살뜰히 챙기며 산다. 그것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다. 입닫고 산 그 동안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내 몸속에 암덩이를 만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할 말 안 할 말 닥치는 대로 마구 지껄이며 산다. 누나가 장난처럼 던진 이 말에는 죽자고 덤빈다. 그 옛날 아이 때처럼.

내가 어디를 봐서 아버지를 닮았느냐고. 어디다 대고 아버지와 나를 동급으로 취급하느냐고.

누나도 동생도 부모의 이혼을 발설한 적은 없었다. 나는 딸도 아닌 아들인데 아버지를 왜 이렇게도 싫어할까. 나는 아버지처럼 술도 마시지 않는다고 그리고 술주정을 부려 가족을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고 아버지와 선긋기를 확실하게 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좋은 아버지는 아닐지언정 나쁜 아버지는 아닐 거라고 굳게 믿었다. 결국 나도 아이들의 아버지고 그 미움은 부메랑이 되어 내게 돌아올텐데. 아버지에 대한 미움의 감정은 이 나이를 먹고도 누그러지지 않을까?




엄마는 아버지를 키운다


어머니는 그렇게 아버지의 아버지가 됐다.
어머니 방식으로. 아버지를 키웠다. 내 어머니가 키운 것은 한 남자가 아니라 한 세상이었을 것이다. 모자라고 불안정하고 허점투성이인 어떤 한 세상. 어머니는 그 세상을 품어 아버지가 됐다. 어머니의 사랑스러움으로 보드라움으로 나긋함으로.
아버지는 그렇게 어머니 몸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었지만, 자신이 어떤 아버지를 갖게 됐는지 아직도 모른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버지 당신으로만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이혼을 한 사람 같았다. 정말로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서였는지, 아니면 정말로 어머니의 아이가 되기로 했는지, 어머니 옆에 딱 붙어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분리불안이 있는 어린애처럼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빙빙 돌며 어머니의 수발을 받는다. 더 많은 희생과 보살핌을 요구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탓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배웠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로 사는 법을… 비난과 비아냥거림으로 누군가의 술잔을 엎을 것이 아니라, 가만가만 술잔을 채워주며 귀를 기울이는 법을.

내가 이런 얘기를 자식한테까지 해야 하나 싶어 말을 안 했는데. 느이 아빠 집에 먼저 찾아간 게 나였어.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그날은 정말 완벽한 하루였거든. 그래서 찾아갔지 그 집을. 완벽한 날에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런 날에 네가 생긴 거야. 완벽한 날에.
- 천운영 <아버지가 되어주오> 중에서


세상 모든 남편들은 아내의 손에 키워진다.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전화기에 대고 내게 넋두리하는 엄마에게 얼마 전에도 나는 이혼하라고 말했다. 엄마는 "이제 와서 누구 좋아라고 이혼을 하겠니?" 했다. 나는 "누구 좋긴, 엄마 좋아라고 이혼하는 거야." 했다.  

"나 없으면 밥 한 끼도 해결 못하는 너희 아버지가 나보다는 먼저 가야할 건데." 지금 엄마의 이혼 불가 사유는 연민이었다. 자기 끼니 해결할 줄 모르는 자식을 놔두고 세상을 떠날 수 없는 엄마처럼. 엄마는 평생 자식과 남편, 누군가를 키우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엄마, 아빠랑 이혼해.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이젠 더 이상 엄마에게 이혼하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엄마를 또 한번 아프게 하늘 말이었다. 엄마에게도 마음을 움직인 아빠와의 어느 한 순간의 멈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럴 자격이 없는 아들에게서 엄마의 그 멈춘 시간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것이다. 자식들은 자기들이 태어나기 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완벽하게 멈춘 시간을 모른다. 아빠, 엄마가 되기 전 서로의 존재를 증명해 주던 따스한 봄날의 시간을 말이다. 나는 가끔 그들의 그 시간을 상상하지만 한번도 물어 본 적은 없다.


그들 사이에 아직 사랑이란 감정이 남아있을까? 부부 사이에는 자식들이 영원히 알지 못하는 모종의 암묵적 계약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꼭 지금의 내 나이 때의 당신들을 떠올려 본다. 그 당시 내 눈에 비쳤던 아빠 엄마 사이에 존재하는 이해할 수 없는 애증의 감정들을 추측한다. 우리 부부도 지금 아빠엄마의 나이가 되면 비슷하게 늙어 갈까? 내 자식들은 지금 우리 부부를 어떻게 기억할까? 그때 늙은 우리 부부의 모습을 또 어떻게 바라볼까?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 날 혼자 생각했었다. 내 딸과 아들에게 아빠 엄마의 완벽하게 멈춘 시간을 어떻게 말해 줄 수 있을까? 자식들이 지금의 우리를 아빠, 엄마가 아닌 한 남자와 여자의 시선으로 보는 건 불가능하겠지. 아내와 나는 결혼기념일을 부부 둘만의 시간으로 보내지 않기로 했다. 평소에도 우리는 둘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니까. 이날이야 말로 너희들이 생겨난 우리들의 완벽한 날이었다고. 아빠엄마의 결혼기념일, 장난을 위장한 중요한 날로 아이들에게 반강제적으로 파티를 준비시킨다. 작년 결혼기념일엔 아이들에게 물어봤었다. 아빠 엄마 사이가 너희들은 어떻게 보이냐고. 딸과 아들의 대답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상적인 대답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긴 질문이 좀 어설펐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지 오웰의 총에 코끼리는 왜 죽어야 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