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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an 20. 2024

무목의 여행은 속도의 해방이다

꿈해석 에세이





꿈 제목 -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꿈 이미지 - 삼륜오토바이 두 대, 포터 트럭 한 대, 길 위에서, 긴 여행, 낭만, 나를 찾아 떠나는 길, 꿈
꿈 감정 - 배설, 해방, 시원함, 자유, 고행, 무목적, 노마드

아주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삼륜오토바이 두 대와 포터트럭 한 대에 두 명씩 나누어 타고 목적지도 없고 이유도 뚜렷하지 않는 여행을 떠난다.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출발이지만 힘든 고행 길이 될 것임을 잘 안다. 가다가 공공 화장실에 들른다. 어느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 너른 바위 위에서 투영한 비닐로 밤서리만 막기 위한 텐트가 쳐졌다. 우리들은 이불도 없이 누웠다. 나는 오늘 일정을 너무 일찍 마무리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맞다, 우리에게 일정이란 애시당초 없었다. 나는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이것이 나의 일상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목적지가 없다는 것은 속도에서의 해방을 의미했다. 오늘 한 걸음만 앞으로 나아갔어도 그만이었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돌아오지 않을 여행

이 꿈은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국적의 체. 쿠바 혁명의 별. 청년 에르네스토의 영혼을 흔든건 여행이었다. 안량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민족주의자가 아닌, 인간의 순수한 자유를 위해 돈키호테처럼 살다간 그는 진정한 휴머니스트다. 청년기의 여행은 삶의 방향성을 옮겨 놓을 만큼 위대하고 강렬한 그 무엇이다.


"누군들 방황하지 않고 길을 떠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움 없이 떠나라!"

나는 언제나 돌아오지 않을 여행을 꿈꿔왔지. 여행은 꿈 속의 꿈, 자각몽이다. 인생은 목적지가 없는 곳으로 떠나는 무한한 여행이다. 유년시절 삐삐롱스타킹의 여행에서 체 게바라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까지. 그런 여행이 가능한 젊은 시절을 그냥 흘려 보냈다. 인생에서 내가 제일 후회되는 부분이다.


가벼워야 떠날 수 있다. 떠난 뒤에는 낯선 사람과 만나야 한다. 낯선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진정한 여행이다. 우리들의 여행은 낯선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차단 되어 있기에 관광일 따름이다.


돌아 올 곳이 있다는 건 방랑이 아니다. 너무 비대해진 영혼과 대면하게 된다. 미지의 길을 따라 걷고, 미지의 사람을 만나고, 바람처럼 훌훌 털고 떠날 수 있고, 그렇게 가볍게,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무거운 이성과 끈적이는 철학을 안고, 진흙탕을 온몸으로 뒹구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나는 지금 이런 영혼의 방랑을 떠나기엔 너무...


늦었을까?





질병은 여정일 뿐

"생명력이 가장 떨어졌던 그해는 바로 내가 염세주의자인 것을 그만두었던 때였다." - 니체의 말.


니체를 만났던 비슷한 시기에 이순신과 체 게바라를 읽었다. 나는 <난중일기>(노승석 완역본)를 읽다가 바다 위에서 배멀미를 했고, <체 게바라 평전>을 읽으며 그를 따라 남미 정글속 진흙탕을 헤맸다. 니체도 이순신도 게바라도 모두 죽기 전까지 지독하게 질병과 사투를 벌였다. 그들은 모두 질병을 삶의 고귀한 무언가로 바꾸기 위해 투쟁하고 있었다. 그때 나도 수술 후 항암치료 중이었다.


그들은 내게 삶의 의지를 불태우라든가, 용기를 내라든가 하는 흔한 위로를 하지 않았다. 나를 끝없이 추락시키고 부정의 나락으로 안내했다. 도대체 바닥이 어딘가 가늠할 수 없는 심연 속으로, 막장으로, 끝장으로... 나라를 구했거나, 혁명을 완수했거나, 세상을 전복할 철학을 완성한 자들 옆에 감히, 나를 나란히 세웠다. 그래도 부끄럽지 않았다. 몸이 아프다는 것으로 그들이나 나나 모두 실존적 자격은 같았다.


니체는 정신이 분열되는 착란 속에서도 정신을 똑바로 세우고 있었다. 어쩌면 착란된 정신이 강력한 전복의 철학을 완성시킨 힘이었는 지도 모른다. 이순신은 난중일기 구석구석에 위통으로 고통받았던 날들을 무수히 기록했다. 이순신의 위통은 어쩌면 나처럼 위암 환자였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했다. 의학 공부를 하던 게바라는 선천성 천식을 앓고 있었음에도 헐떡이는 숨을 죽여가며 혁명의 뻘밭을 기어다녔다.

질병은 인간을 원초적 고독 속으로 밀어넣는다. 나는 현재의 시간 바로 앞에 죽음을 앞세우며 한 걸음씩 뚜벅뚜벅 그들과 함께 걸었다. 내 치병의 시간에는 체 게바라, 이순신, 니체가 있어서 견딜만 했다. 질병은 하나의 여정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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