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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Feb 04. 2024

지독한 악몽을 꾼 밤




"어, 헤어스타일이 바뀌셨네요?"

"......"

"어, 아닌가? 환자분 아드님?"

"아, 난 사위에요."

"주말마다 오는 분이랑 제가 착각했네요. 비슷하게 생기셔서."

물리치료사는 30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장모 다리 주무르는 일에만 집중했다.


치료사가 말했다.

"쓰러지시기 직전까지 건강하셨다고 들었어요. 쓰러지시던 날, 부산 기장에서 아드님이랑 외식도 하고 잘 놀다 들어오셨다고..."

"자세하게 알고 계시네요. 벌써 6개월이 흘렀네요."

그날 얘기를 누구에게 들었을까? 나는 안 했는데...

그날 우리 반대 편에서 장모와 함께 있었을 장인이나 처남 시점의 이야기였다.

내 쪽의 기억이 쓸데없이 소환된다. 그날을 일기에 써놓지 말았어야 했다.




2023.8.8.화
'꽃술래', 저녁밥 먹을 곳을 찾다가 술을 선택했다. 장모가 뇌출혈로 쓰러졌다고 처남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내가 짐을 챙기는 동안, 아내는 처남과 수술 동의에 관해 통화를 했다. 의사가 최악의 상황을 말했지만, 그럴수록 선택지는 없었다. 수술을 포기한다는 건 장모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처남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장모와 기장에서 사진 찍고 카페에서 수다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갑자기 장모를 포기하라고. 앞으로 닥칠 미래를 예리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것이 연명치료가 되든, 재활치료가 되든 말이다. 아내는 수술 동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혔다. 아내는 대리운전을 불렀다.

춘천 '첫서재' 첫날 밤에서 우리의 일정은 멈췄다. 언젠가 이곳을 다시 찾는 날이 온다면 오늘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날 것이다. 차가 없는 고속도로는 비현실적이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잠이 몰려온다. 운전대를 잡은 건 내가 아니지만 잠들면 사고가 날 것 같다. 깜빡 졸음에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흔들고, 아내를 한번 쳐다본다. 몇 번을 반복했을까. 꿈이었을까. 현실일까. 꿈이었으면 좋겠다.
눈을 떴을 때 앞에 커다란 컨테이너의 뒷문이 눈 앞에 나타난다. 대리기사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무서운 속도로 컨테이너 문을 향해 돌진한다. 비명을 질렀던가. 다시 눈을 뜬다. 꿈. 아니, 현실. 차는 터널 입구를 향해 빨려 들어가고 질주가 굉음을 내며 터널안 빛의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꿈이었나. 환각이었나. 휴게소에서 차량 기름을 넣고 달리다가, 졸음 쉼터에 들렀다가, 휴게소를 한번 들른다. 쉬는 중간 그 어디에도 사람은 없다. 아내와 나를 대리기사가 이상한 세계로 데리고 간다. 차는 짙은 어둠 속으로 끝없이 빨려들어 간다.

덜컹, 차가 돌부리 같은 것에 걸려 튀었고, 소리와 동시에 쨍, 하는 날카로운 쇳소리가났다. 아이씨, 갑자기 튀어나오니 피할 수가 있어야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오소리 같은 야생동물임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이번에는 꿈이 아니다. 로드킬. 대리기사가 차를 세우려고 속도를 줄였다. 나는 그냥 계속 가자고 짧게 말했다. 고속도로에서 차를 세워서 어쩌겠다고.
대리기사는 죽은 동물을 어찌하겠다기보다 차량이 파손되어 수리 비용 청구해서 일당 날릴까 걱정 됐을 것이다. 살면서 경험해보지 않을 로드킬의 당사자가 나이거나 아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생명체의 죽음. 수술방에 들어간 장모를 보러 가는 길. 나는 아내가 걱정됐을 뿐이다. 양산부산대병원 주차장에 도착해서 아내는 대리 요금 23만원을 이체했다. 대리기사는 내려서 차량 파손 여부를 살폈다. 나는 차를 보지도 않고, 괜찮으니 수고했다고 인사하고 보냈다.

복도 끝에서 처남이 손을 들어 우리를 불렀다. 막 수술 끝내고 나온참이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집중치료실에 들어가서 못볼 뻔했다. 아내는 장모가 누운 침대를 따라 갔다. 나는 아내를 따라 달렸다. 처남은 이 비현실적 시간을 믿을 수 없다고 혼잣말을 했다. 새벽 3시, 지독한 악몽을 꾼 밤이다.




장모가 짧게 기침을 했다. 기도에 삽입된 관에서 가래가 튀어나왔다. 티슈로 닦았다. 뚜껑에 묻은 가래를 수돗물로 씻었다. 다시 연거푸 기침을 했다. 가슴이 침대에서 튀어 오른다. 응급벨을 눌러 간호사를 불렀다. 가래 썩션을 부탁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간호사보다 아내가 가래 썩션은 더 잘한다. 나는 아무런 힘이 없는 그림자 보호자 쯤으로 여기는지 간호사의 썩션 호스가 기도 안을 거치없이 헤집는다. 아, 아내가 필요하다.


아내는 나를 왜 여기 혼자 보냈을까? 혼자가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오늘의 이 낯선 느낌은 뭐지? 물리치료사 때문이다. 그녀가 장모가 쓰러지던 그날을 기억에서 기어이 끄집어내고 말았다. 그날 일기는 경황없는 가운데 언제 어디서 쓴 걸까. 다음 날, 병원 복도 어느 모퉁이에서 썼을지도 모른다. 이걸 써서 뭐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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