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무위, 필명까지 지어주면서 위가 없는 당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처음 제안한 사람은 아내였다. 싫다고 잘라 말했다. 그건 좀 식상하다고. 세상에 위암을 겪은 사람과 위가 없는 사람은 많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미 암 투병기와 암 실용서도 많이 출간되어 있다는 것도 잘 알았다. 내가 이 걸 왜 써야 할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이미 완치 판정을 받았고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 아내는 더 이상 나를 설득하지 않았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당신의 경험은 특별해.
모든 사람에게 공감 받으려고 하지마.
특별한 당신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 써 봐.
당신이 걸어온 처음을 떠올려 봐.
지금은 별 것 아닌 그 모든 것이 낯설었고 두려웠지.
불확실한 미래에 조급해했고 모든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지.
세상에 암환자는 많지만 모든 암환자는 처음 가는 길이야.
병원과 의사를 찾고 수많은 설명들을 이해해야 했고 온갖 검사실의 위치를 찾아 헤맸던 길 잃은 아이 같던 그때를 생각해 봐.
어른이 된 눈이 아닌 아이의 눈으로 그때를 써 봐.
길 잃은 아이처럼 울고 있는 누군가가 세상에 단 한 명은 있을 거야.
그리고 이미 당신 특유의 성실함으로 일구어 놓은 많은 기록들이 있잖아.
위암, 삶, 죽음, 몸, 장애, 약자, 속도, 불안, 우울, 자존, 운명, 관계, 시간…
이제야 생의 한 페이지를 겨우 넘길 시간이 된 것 같다. 8년간 나의 생각과 기록 속에 반복적으로 재생된 단어들과 결별해야할 때가 되었다. 내 몸에 찾아온 질병에 대한 변명을 <위암의 위안>으로 갈음하기로 한다. 이 책을 꼭 써야만 했던 이유다. 책을 쓴다는 건 타인을 향한 행위지만 이 책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 질병과 연결된 이들의 죽음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 죽음들이 내게 묻는 삶의 의미에 나름대로 대답을 내어 놓아야 한다. 내 질병이 던진 물음 앞엔 항상 망자들이 던진 질문이 있다.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나는 한 걸음도 땔 수 없다. 이렇게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도 그 대답의 일부이다. 정확한 대답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쯤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내 기록들을 천천히 읽어 본다. 오늘은 어제의 나를 거부하고, 오늘은 다시 내일의 나에게 부정 당할 것이다. 삶 자체가 어제를 위한 변명과 모순으로 뒤죽박죽이다. 책 한 권으로 지금까지 내 삶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완성도나 출판 여부와는 상관없이 내 첫 책이 되어야 한다. 기록은 나를 치유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전체가 잘려나간 위장은 재생되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지속될 불편을 친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서히 ‘받아들임’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아내는 잘려나간 내 위장이다. 아내를 내게 보내 준 인연에 감사한다.
- 2022년 1월 14일 위암 발견 9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