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냈어? 형부 왔어.
그 즈음 아내는 악몽을 자주 꾸었다. 악몽을 꾸었다는 그날도 나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장유사에 갔다. 서울 사는 수현 처제의 암 진단 소식을 한 달 전 들었다. 매일매일 들려오던 소식은 어둡고 무거웠다. 호전되어 간다는 소식은 아니더라도 잘 버티고 있다는 소식이라도 기다렸다. 위에서 발견된 암은 하루가 다르게 젊은 처녀의 몸을 무섭게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수현을 처음 소개 받았을 때 아내와 나는 한참 썸타는 중인 씨씨커플 초입이었다. 나는 지방대 복학생이었고 수현은 피아노를 전공하는 서울 사는 여대생이었다. 아내는 이종 사촌 동생을 나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피아노 치는 여자랑 연애하고 싶다고 말을 하곤했다. 아내는 음악을 좋아하는 나와 피아노 전공하는 수현이 얘기가 잘 통할 거라고 했다. 수현과 사귀어 보라는 얘긴가? 왜 서울 사는 아가씨를 내게 소개시켜주는 거지? 나는 아내의 의도를 몰라 의아해했다.
수현의 첫인상은 구김살 없이 잘 자란 서울 아가씨였다. 수현은 나를 마치 알던 사람처럼 걱실걱실 말을 걸었다. 숫기 없는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안 그런 척했다. 아내는 수현에게 나를 선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가 사귀어도 괜찮은 사람이겠는지 검증받고 싶은 여자의 의도. 아내와의 평생 인연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 수현과 수현의 오빠 둘, 아내의 오빠와 같이 강원도 팬션 가족모임에 끼어 놀기도 했다. 결혼하기도 전이었지만 그때부터 이미 나는 가족의 일원이었다.
결혼 전에 아내는 서울서 영화잡지사 기자생활을 했다. 그때 아내는 이모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아내는 퇴근하고 거의 매일 저녁 수현과 술 한 잔하며 수다떠는 재미로 팍팍한 서울살이의 외로움을 달랬다. 아내와 수현은 서로 각별했다.
수현의 투병소식에 아내는 안절부절 못했다. 아내와 수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내가 장유사에서 절박한 기도를 올린 다음 날 아침 눈 뜨자마자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서울 올라가서 수현이 만나야 겠어.”
아내는 수현의 죽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직감은 예리하고 날카롭다. 나는 같이 보러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내 외사촌형 말기 암환자의 마지막을 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수현을 만나고 돌아온 아내는 자기를 보자마자 수현의 첫마디가
“언니 나 어떡해!”
였다고 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수현의 얼굴과 죽음의 그림자를 직접 보지 않고도 아내의 이 한마디에 선명했다. 도저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아직은 젊은 여대생의 공포에 휩싸인 언어.
죽음이 서서히 꺼져내리는 연착륙이 되지 못할 때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일까? 암을 발견한 지 한 달, 자신의 삶을 돌아 볼 시간도 허락되지 않은 잔인한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수현에게 그 시간은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을까?
아내가 수현을 만나고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새벽 전화벨이 울렸다. 벨소리를 듣는 순간 직감했다. 수현의 죽음을 알리는 장모의 전화였다. 아내는 대답없이 울기만 했다. 나는 자는 척했다.
나는 장례식장 영정사진으로 수현을 만났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위암 진단을 받았다.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얼굴이 수현이었다. 수현의 집은 내가 위암수술 받은 아산병원 옆이다. 수현도 이 병원에서 삶의 희망을 꿈꿨을 것이다. 수현의 죽음과 나의 위암은 따로 떨어지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위암 수술과 항암 치료를 위해 상경할 때마다 수현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나는 도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이모의 밥을 얻어 먹으며 악착 같이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 주려고 노력했다. 같은 병으로 딸은 죽었는데, 조카의 사위는 살아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이모의 눈엔 언제나 수현이 들어 있었다. 나는 이모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나는 수현의 못다한 삶을 내가 대신 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수현이 치던 피아노가 있는 방. 피아노 위에는 수현의 학사모 사진이 놓여져 있었다. 이모는 딸을 아직도 떠나보내지 못했다. 이모는 꼭 수현의 방에 우리 부부의 잠자리를 내어 주었다. 자네는 꼭 살아내라고. 너만은 꼭 살아야 한다고. 나는 이모집에 갈 때면 수현 방에 제일 먼저 들어갔다. 그리고 인사를 건냈다.
“잘 지냈어? 언니랑 형부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