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612로 떠난 아이
“니는 내보다 먼저 가면 안 된다. 정신 똑바로 챙기라.”
항암약이 시커멓게 말려 버린 중년의 자식을 목욕시켜 주며 어머니가 뜬금 없이 던진 말이었다. 어머니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혼자 서 있기도 힘든 나는 없는 기운을 짜내서 아버지 손을 잡고 열심히 동네놀이터를 걷고 또 걸었다. 아내의 손을 잡고 정병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오늘, 친구 딸이 세상을 떠났다. 10년 이 세상에 존재했던 아이. 급성 백혈병이란 사실을 안 지
10일 후, 손 쓸 겨를도 없이 황망하게 그렇게 떠났다.
오전에, 그래도 아들 이사한 집에는 한번 가봐야지 하며 부모님과 누나가 우리집에 들렀다. 아내는 아들이 중요한 경기 일정이 있어 축구센터에 데리고 나갔다. 나 혼자 우리 식구를 손님으로 맞았다. 누나가 사 온 귤을 씻어 내고 사과를 깍는 중에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 딸이 죽었다는 소식에 어머니가 항암치료 중에 내 정신이 번쩍 들게 했던 그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른 이유는 뭐지? 좀처럼 우리집에 오지 않던 어머니가 지금 내 앞에 마주 앉아 있는 것은 우연만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내 가족을 걱정하는 새해 부적과 돈봉투를 내밀고 텃밭에 간다며 황급히 나갔다.
대학동기 성환이 영업하는 택시를 타고 급히 장례식장으로 갔다. 친구를 처음으로 안았다. 고등학교 대학까지 동창이지만 나는 녀석을 안아본 적이 없었다. 자식을 잃은 친구를 위해 보자마자 할 수 일은 이것 밖에 없었다. 녀석의 몸은 따뜻하다. 살아 있는 인간의 온기, 36.5도. 녀석은 싸늘하게 식은 딸의 비현실적인 몸을 마지막으로 안았을 것이다. 이승과 저승의 거리는 36.5도 정도일 뿐인데…
오후 내내 친구 옆에 앉아 울었다. 우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녀석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나만의 마음의 빚이 있어서일까. 하염없이 울어도 녀석의 아픔을 먼지만큼도 씻어낼 수 없는 내 눈물이 무기력하다.
“친구야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
한참 울기만 하는 내게 녀석이 먼저 말을 건냈다. 자식 잃은 친구에게 나는 위로해 줄 말을 먼저 찾지 못했다.
“그래, 나 내일 암 검사 받으러 가. 5년 완치 판정 검사.”
딸을 잃은 친구에게 내가 건낸 첫 말은 고작 이 따위였다.
“건강하게 살아줘야 한다. 네 가족들을 위해서.”
친구의 말은 딸에게 못다한 말 같았다.
“응.”
나는 친구의 딸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앞에 놓인 음식들에 식욕이 돋는다. 배가 고프다. 내일 받을 내시경 검사를 위해 금식 중이다. 깊은 공복이 허무한 생의 욕구를 기어이 깨워내고 만다.
- 2018. 1.7.일 ‘무위록’ 중에서
새벽 부산역 가는 길. 아내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탓일까, 피로에 잠이 덜 깬 때문일까. 나는 지금 조금더 살려고 검진하러 간다. 조금 있으면 친구는 손도 못 써보고 죽은 딸을 영영 보내 줄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진짜 슬픔에 몸부림칠 것이다.
어제 아이의 엄마는 자책했다. 자기는 나쁜 엄마였다고. 잘 해주지 못한 아쉬운 마음이 너무 사랑해서 그리운 마음보다는 견딜만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려다가 하지 않았다.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하나마나 한 미친 소리였다. 말 안하길 잘 했다. 아이 엄마의 자책은 극한의 고통을 어떻게든 이겨보려는 안간힘이었다. "딸아 엄마가 널 너무 사랑했어"보다 "딸아 엄마가 못해줘서 너무 미안해"라는 말이 그녀가 그나마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위로할 그 어떤 말도 찾아내지 못했다. 침묵과 눈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위로였다.
혼자 아산병원 가는 열차 안에서 잠만 잤다. 약한 두통이 찾아 왔다. 어제 너무 많이 운 탓일 거다. 나는 떠난 친구의 아이를 어렸을 때 딱 한번 보았다. 내게는 기억과 추억이 없으니 그리움의 직접적 고통은 없을 것이고, 나의 슬픔은 아이의 아비와 어미의 고통에 대한 이차적 연민이다. 나는 친구의 고통을 금방 잊을 것이고 친구의 아픔은 눈감는 날까지 깊고 길게 이어질 것이다. 오늘은 혼자 가고 싶지 않지만 아내에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 2018. 1.8.월 ‘무위록’ 중에서
위암 5년, 완치 판정을 위한 검사를 받았다. 암은 생존율로 말한다. 5년 생존했다는 뜻이고 언제까지 생존할지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이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지는 신만이 안다. 생명의 유한성을 순리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생존의 가치는 순간순간이 보석이다.
생은 의무다. 살아내야만 하는 그 무엇이다. 나의 죽음으로 아파할 누군가가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나는 반드시 성실하게 살아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것보다 분명한 삶의 이유가 더 있을까.
위암 수술 이전에 나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았다. 내 생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나와 관계한 누군가와 연결된 생이기도 하다. 그 누군가를 위해서 살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내 삶을 내 맘대로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나는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