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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Dec 04. 2021

공정한 불법 선생

... 합법성과 융통성 사이에 선 초짜 교사 항변서




087 공정하기 위한 고독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과도 누구와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것을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친한 지인과도, 꺼리는 사람과도, 사랑했던 사람과도, 나아가서는 자기자신과도. 그렇기에 공정한 이의 모습은 고독해 보이는지도 모른다.
- 프리드리히 니체 <편역, 니체의 말2> 중에서



정확히 좋아하고 미워해야 한다... 오직 仁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다고... 仁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의 전문가인 만큼이나 미워하는 일이 전문가이다... 공정성에 대한 명철한 인식과 더불어 높은 수준의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 김영민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내 주먹을 맞아 보기 전까지는."


주먹으로 세계를 평정한 복싱선수 마이크 타이슨은 이런 멋진 명언을 남겼다. 운동을 게을리했는지 자기 주먹이 먹히지 않자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 뜯었다. 이후 강간, 아내 폭행 등으로 끝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실력이 한계를 드러내자 규칙을 파괴했고 스스로를 몰락시켰다.


훌륭한 명언은 응용가능성이 열려 있다.




"모든 초짜 교사들에겐 그럴듯한 철학이 있다. 법 앞에 어떤 것도 무기력하다는 걸 맛보기 전까지는."


열정이 넘치던 중학교 교사 시절이었다. A학생의 이름은 내 해마가 삭제했다. 그래서 기억나지 않는다. 다행이다.


그날도 지각하지 않으려고 레이서처럼 운전해야 했다. 출근길은 목숨을 적당히 내놓아야 했다. 신항과 공단으로 난 도로는 밤낮없이 거대한 컨테이너를 싣고 달리는 트레일러들이 점령했다. 그 덩치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운전하다 보니 레이서에 버금가는 운전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날 아침도 그렇게 40분간 달려 학교에 간신히 도착했다. 나보다 더 일찍 교무실에 출근한 부부가 있었다. 교감선생님이 나를 부부 앞으로 불러 세웠다. 이미 졸업식이 끝난 A학생의 아버지는 반말과 삿대질로 경쾌하게 아침을 열었다.


"당신이 우리 A의 담임이었던 사람이야?"

"…"

"우리 A는 학교 다니는 동안 무단으로 결석한 적이 없는데… 이거… 무단결석 1은 뭐야!"

거친 언성보다 A앞에 따라붙는 '우리'라는 말이 거슬렸다. 언제부터 자기가 애살스러운 보호자였다고. 질병으로 인한 지각, 조퇴, 결석 칸에 수십 일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숫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A는 축구도 좋아하는 신체가 건강한 학생이었다. 무단결석 '1'에 아버지는 이성을 잃었다. 무단결석 중요하지.


"저기… 화내시지 마시고… 담임선생님 말씀도 들어보시고…"

제지하는 교감이 더 미웠다. 어디까지 하나 놔두지 않고.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내가 쭈뼛쭈뼛 첫마디를 하자, 엄마는 더 가열차게 몰아붙였다.

"그날 병원 갔는지 안 갔는지 병원 가보면 기록이 남아 있을 거 아녜요. 병원가서 확인서 떼 올까요? 우리 아이 진로에 문제 생기면 책임질 거예요?"

"…"


기억이 안 날 리가 있나. 그날의 정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 기억에 의존한 정황은 그녀가 주장하는 문서의 합법성을 이길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입을 닫고 부부의 공격을 바보처럼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결석 처리한 날 A의 눈빛과 내가 했던 말들까지 생생히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입을 닫아야만 했다.


A의 엄마는 더 가관이었다. 자기 아이는 착실한 아이라서 학교를 그냥 빼먹었을 리가 없다고. 수시로 학교 가기 싫으면 아프다고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아이를 엄마가 이기지 못했다는 과거의 기억은 지운 것 같았다. 앙칼진 엄마의 공격을 받으며 나는 딴생각을 해야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었다. 그때 나랑 수시때때로 통화한 A의 엄마가 이렇게 생겼구나. 실물을 영접하고 다시 한번 놀랐다. 생각보다 세련된 옷차림에 미모가 뛰어났다.




A가 무단으로 결석한 그날은 방학을 앞둔 크리스마스 전날이었다. A는 내게 아무 연락도 없이 학교 오지 않았고 부모도 전화를 받지 않아 애가 탔다. 그날 A 말고도, B도 아무 연락없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또 등교한 C는 아프다고 했고 아이 엄마와 통화하고 조퇴를 시켰다. 셋은 함께 어울려 다니는 친한 사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담임의 촉이 발동했다.


크리스마스를 쉬고 온 다다음 날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서 그저께 동선과 한 일들을 물었다. B가 모두 함께 피시방엘 갔다고 순순히 불었다. 조퇴한 C는 병원 갔다가 나중에 피시방으로 합류했다며 진료확인서를 내밀었다. A는 그저께 병원 갔었다면서 그제서야 진료확인서를 내밀었다. 아팠다면서 왜 그저께 엄마를 통해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A는 대답하지 못했다.


A는 매번 이런식이었다. 학교에 이미 흥미를 잃었고 학교 오기 싫으면 아프다고 대충 둘러댔다. 이제 그것도 귀찮아졌는지 선결석, 후확인서의 방법을 썼다. 같이 놀았던 영리하지 않아 완전무결하게 무단으로 결석한 B를 봐서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불공정. 무엇보다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지배하자 A의 무단결석을 서류 한 장으로 퉁칠 수 없었다. 교사로서 나쁜 생활 요령을 묵인하는 것 같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너 어제 B랑, C랑 피씨방에 있었지?"

"네"

"진료확인서를 떼 왔으니 병원은 갔다는 건 믿을 께. 하지만 그저께 아무연락 없이 학교 안 온 것이니까 무단결석이다. 인정하니?"

"예"

"알았어. 가 봐."


반복된 A의 거짓말과 변명에 나는 지쳐있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인 학교에 오기 싫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A에게 담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연락없었던 두 녀석을 걱정하며 지낸 나의 마음을 보상받고도 싶었다. 무단결석 처리하고 진료확인서를 파쇄기에 넣고 갈아버렸다. 파쇄기로 빨려 들어가는 A의 무책임과 거짓변명의 흔적을 통쾌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뒷맛이 좋지 않았다. 그냥 눈감고 병결 처리했으면 그만이었을 일을... 나는 A가 지고 가야 할, 합법을 이용한 요령있게 사는 인생에 제동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한바탕 교무실을 난리통으로 만든 부부가 의기양양하게 나가고 소침해 있는 내게 교감이 말했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안 날 테고 무슨 착오가 생겼을 거니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그냥 생기부 수정 절차를 합법적으로 밟읍시다."

합법이라… 그래, 우리에겐 법이 있었지. 법이 우리를 널리 이롭게 만들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정정 사유서를 장황하게 써야 했다. 사유서는 업무상 내 실수를 인정하는 경위서 같은 성격이어서 자존심이 상했다. 끝까지 진짜 법대로 해보라고 버텼어야 하나, 하고 잠깐 고민했다.


나는 교육적 가치와 소신, 그리고 절차에 문제가 없는 합당한 행위를 했다고 항변하지 않았다. 그날의 정황은 시간이 잠식했고 이미 졸업한 아이를 불러와 서로의 기억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시간은 증명서 한 장에 더 큰 힘을 실어 줄 것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싸움을 피하고 싶었다. 파쇄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확인서 갈리는 소리와 잔영이 너무나도 또렷했다. 융통성 없는 스스로를 책망해야 했다.


기억이 안 나서, 에이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하면 편했을 텐데…  그후 나는 규칙과 법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교사가 되고 말았다. 그때 나는 '공정성에 대한 명철한 인식'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수준 높은 공감 능력'이 부족한 초짜였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의 고독은 공정하기 위한 거리 유지일지도 모른다는 니체의 말을 위안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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