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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Nov 20. 2023

소울메이트 만들기





S#1. 은희경 작가 북토크


"같이 오셨나봐요."

작가가 책에 싸인을 하며 아내만 보면서 말했다. 싸인하는 은희경 작가는 끝끝내 나와 눈 한 번 맞추지 않았다. 서른 명이 넘는 독립서점 공간 안에 참가자로는 유일하게 청일점인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냥 마누라 등살에 따라나온 호기심 많은 남자 정도. 토크하는 중에도 두번째 열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한번만 보라고 멈추지 않고 강렬한 시선을 날렸건만... 봤다면 한번쯤 나를 향해 특별한 멘트를 날려 달라고... 여기 이렇게 많은 여성들 틈에 끼어 있는 이 남자의 존재를 그 잘 하는 유머로 눙쳐달라고...


그녀는 여성들이 공감 능력이 남자들보다 탁월한 것은 약자 체험이 많아서 그렇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저기서 맞아맞아 하며 수긍의 묵은 탄식들이 터져 나왔다. 약자 경험이 많아 공감 능력이 탁월한 독특한 남자 일인 추가요!!! 라고 묵음으로 소리치고 또 외쳤다. 나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한다는 시선을 보내지만, 그녀는 끝내 내 존재를 그녀의 영역 안으로 들여주지 않았다. 최근 그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이방인이 된 소외감. 아내 따라온 그냥 그림자 남자1.


주변을 휘이 둘러봤다. 글쓰기 자아로 들어찬 인프제(INFJ)들이 작가의 영혼 속으로 빨려들 것같이 온몸을 그녀를 향해 기울이고 있었다. 바로 옆에 앉은 자신을 닮은 무수한 타인의 존재는 지워져 있었다. 우리들의 무서운 자아 집중력이 품어내는 싸늘한 열기. '숲으로 된 성벽' 독립서점 안은 냉정과 열정의 온도가 공존했다.  각자는 작가와 일대일로 교감하고 있었다. 각자의 이야기와 각자의 방식으로 작가와 이미 대화를 마친 상태로 앉아 있었다.


나는 당신의 내면을 알고 있다고, 그러니 우리는 이미 서로를 잘 아는 사이라는 친밀한 착각 속에서 행복해 하고 있었다. 작가가 글 속에서 <또 못버린 물건> 중 하나인 목걸이와 옷을 오늘 걸치고 온 사실을 귀신같이 알아 차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여자들 속에 앉아 있는 정말 희귀한 남자가 하나 있다.

"여자들 못지 않게 약자 경험 많은 남자 일 인 추가요. 한번만 봐 줘요. 당신들 노는 데 나도 한번 끼워 주지 않을래요? 내가 속한 남자들의 세계에는 나를 끼워주지 않아서 그래요. 그러니 제발..."




S#2. 아내와 자아토크


"나는 지지받고 칭찬 받고 싶은데 그런 경험이 없었어. 그걸 최근에야 알았어."

북토크를 빠져나와 '은율당' 브런치카페에서 아내에게 내가 던진 첫마디였다.

"얼마 전 당신이 보낸 톡문자 보고 빈 교실에서 울었어. 우리 딸이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 딸과 이런 대화를 하는 아빠가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당신이 대단하기도 했고."


얼마전 캐나다에 있는 딸과 영상통화를 했다. 평소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 네 엄마한테 솔직하게 잘 하는 편인데, 외할머니 쓰러지고 나서 내가 해 줄 말을 자꾸 고르게 되고 끝내 아무말도 못하게 된다고 고민을 털어 놨다. 그랬더니 딸은 그럴 땐 아빠가 평소에 안 하던 말, 안하던 짓 해보라고 조언을 했다. 이를테면 "사랑해"라는 말을 한다던가, 애교같은 거나 떨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카톡으로 "여보, 잘 하고 있어. 사랑해." 이모티 캐릭터도 보냈다.


"엄마 아프기 전에 엄마한테 말한 적 있어. 엄마, 박서방은 자신의 상처를 되물림하지 않으려고 정말 독하게 자신을 채찍질 하며 견디며 살아온 사람이야. 그래서 암에 걸린 거야."라고. 단순한 연민이 아닌,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준 최초의 사람.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겉보기에는 독립적인 사람 같지만, 누군가 한 사람에게 기대며 살아온 사람이란 걸. 한때는 엄마였다가, 잠시 아버지였다가, 누나이기도 했다가, 지금은 당신이라고. 당신은 내게 삶의 영감을 주는 사람이고, 내게 인생의 스승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최고의 찬사라며 아내는 멋쩍어 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가 누군지 몰라서 궁금해서 그 답을 찾으려고 허덕이며 살아온 삶이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지금까지의 선택은 후회가 없었고, 단단해졌으며, 미래에는 꽤 괜찮은 늙은이가 될 것이라고. 내 마지막 인생 목표는 여유있고 유머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S#3. 지은 쌤과 생활토크


"쌤도 이번 시험기간 우리 모임에 올래요?"

지은 쌤이 시험기간에 나를 자기들의 모임에 오라고 했다. 여자들이 자기들 무리 속으로 낯선 사람을 초대하는 의미를 나는 알고 있다. 그것도 남자를. 내가 믿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우호의 표시. 자신이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객관적으로 검증받고 싶은 심리. 혼자 알고 있기는 아까운 사람이니 너도 이 사람 소개시켜 주고 싶다는 공감의 공유. 사람에 대한 신뢰와 긍정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기분이 좋았다.

"나도 끼워주는 거에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꼭 가겠노라고 대답했다.


오롯이 당신의 말소리에 집중하고 당신의 언어와 몸짓과 눈빛을 읽으며 나누는 완벽한 대화. 나는 일대일의 대화 자리를 선호한다. 지은 쌤은 주말에 가족과 오랜만에 목욕탕 간 이야기를 했다. 아들은 아빠와 남탕에, 딸은 엄마와 여탕에 가는 목욕을 했단다. 목욕탕에 갔으면 반드시 때를 깨끗이 밀어야 한다는 것. 아이와 목욕하는 고단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목욕을 하면 엄마가 반드시 검사하는 부위가 있다고 했다. 몸에서 때밀기를 등한시 할 수 있는 취약부분. 이를테면, 귓바퀴와 귀 뒷부분, 팔 뒷꿈치 같은 곳(아내는 엄마에게 전수 받아 고수하는 부위). 내가 어릴 때 엄마와 여탕 드나들며 배운 때밀이 신공. 우리는 맞아맞아 하면서 깔깔거리고 주거니받거니 했다. 대화 내용도 차암. 다른 남자들이 들으면 저런 것도 얘깃거리가 되나 하며 하찮게 여길 그런 이야기들. 나는 그런 대화거리를 문학을 통해서 배웠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관찰을 통해서 체득했다. 보통의 남자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여자들의 세계를 너무나도 잘 아는 나. 보통 남자들은 잘 모르는, 사람 사는 재미가 이런 데 있다는 걸 아는 남자라는 게 나의 자부심이다.




나는 소울메이트만 만든다. 나는 완전한 관계만을 원한다.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완벽주의자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나의 관계맺기는 빵점이라고 한다. 무릇 관계란 광범위한 것이 최고의 미덕이며 좋은 성격의 척도라는 범상한 사람들의 지론에 현혹되어 괜한 자격지심으로 살아온 시절이 이었다. 스스로를 잘 몰라서 저지른 최고의 잘못이라는 걸 나이들어서 깨닫게 되었다.


나의 관계 맺기는 실패작인가? 아니다. 단연코 아니다. 관계 맺는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저렇게 잊고 살았다. 기억해 보건데 나에게는 영혼의 친구가 여럿 있었다. 동년배의 남자친구도, 여자 친구도, 연상의 누나도, 형도, 동생도, 스승도 있었다. 한 순간도 친구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잠시 그들을 잊고 있었다.


누군가가 관계의 지속성을 문제삼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자체가 허구임을 항변할 수 있다. 세상에 영원한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는 본질적으로 일회성이다. 한 번에 맺는 관계의 질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누구보다 관계에서 진지했고 열정을 다했다. 비록 수적으로는 빈약하다 할지라도 나는 마치 열병을 앓듯이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 왔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읽어 낼 수 있는 그런 친구를 항상 옆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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