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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Nov 22. 2023

가짜 작가




'지속가능한 발전, 지속가능한 미래'

나는 '지속가능한'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속가능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함유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발전'이란 단어가 내포한 상승과 추락, '미래'라는 단어가 주는 불확실성이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환기시킨다. 각설하고.




나는 '지속가능한 작가'는 되고 싶다. 계속 글을 써왔고, 생의 마지막까지 쓰다가 죽을 것 같기는 하다. 내게 글쓰기는 매일 입고 다니는 옷이다.  내가 글쓰기를 선택했다기보다 글쓰기가 나를 선택한 느낌이다. 매년 연말이면 세상에서 단 한 권 뿐인 나만의 저작(물론, 대중을 향한 정식 출판물은 아니다)을 한 권씩 내놓는다. 이미 열 권이 넘는 나의 책들은 이순신의 <난중일기>,  루소의 <고백록>, 몽테뉴의 <수상록>과 나란히 꽂혀있다. 대중을 상대로 꾸준히 출판하는 사람이 작가라면 나는 아직 '작가'가 아니다. 매일 쓰는 사람이 작가라면 나는 이미 '작가'가 맞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작가로 칭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가짜 작가'다.


내 글들은 아직 엄마의 자궁 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태아다.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태아는 사람일까, 아닐까라는 질문 앞에 던져진다.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내 글들은 내가 작가일까 아닐까를 매일 질문하게 한다. 하나의 생명체가 인간이 되려면 '관계'라는 연결망의 공간과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내 글들은 아직 그 광활하고 지난한 시공간을 지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제 겨우 태동을 시작하려 한다.   


나의 글쓰기는 일기, 에세이, 소설의 형식으로 각각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경계 없이 혼재하기도 한다. 나의 글들은 픽션과 논픽션의 사이에 걸쳐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텍스트의 안과 밖을 마구 넘나든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사람이 내 글속에 등장하고, 글이 생활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직접 흘러들어 가서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내가 직장 동료와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이 말이 내가 어디엔가 썼던 글이었나, 어느 책에서 읽은 말이었던가,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했던 말이었던가, 당신이 내게 했던 말이었던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단순히 쓰고 싶다는 충동을 넘어, 이제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향해서 정제된 언어로 전하고 싶은 욕망으로 옮겨 가고 있다. '진짜 작가'로 향하는 나의 속도는 느리고 더디다. 그래도 상관없다. 결론은 정해졌으니까.




"나는 당신의 '스타일'을 사랑해요."

나는 임경선의  '스타일*'을 사랑한다. 나는 그녀의 '과감함'에 매료 되었고, '초연함'에 고개를 숙인다. 작가의 근간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에서 밝힌 글쓰기 팁을 요약 발췌해서 책상에 앞에 붙여 놓았다.

[지속가능한 작가가 되기 위한 임경선의 조언]

- 책 출간을 꾸준히 할 것
- 첫 책이 선택되는 것은 운이고, 두 번째 집어 들면 내 실력이고, 두 권 다 마음에 들면 그는 '내 독자'가 되어줄 것이다
- '나는 정확하게 이해받고 싶어'라는 내적 충동이 있을 것
-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을 가질 것
- 남들이 꺼러할 만한 솔직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말 할 것
-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재료들로 쓸 것
- 자기 세계관 안으로 독자를 끌어들일 것
- 트렌드를 쫓는 글쓰기를 하지 말 것
- 자기 충만함이 없는 글쓰기는 오래 할 수 없을 것
- 트렌드와 관련된 주제가 너무 구체적일수록 그 이미지가 나한테 강하게 묻어서 거기서 빠져나오기 힘듦
- 시류와 무관한 보편적 주제를 선택할 것
-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인 것 - 봉준호 감독
- 자기 안에 뭔가 쓰고 싶은 것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일 것
- 타인과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 쓸 수 있는 용기를 가질 것
- 어떤 순간이든 내가 원하는 소재나 방향으로 글을 쓸 것
- 글쓰기는 조급함과 싸우는 작업
- 매혹을 느끼는 것,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들을 글의 소재로 채택할 것
- 일기 글과 남이 읽어줄 책 글의 차이점은 '자료 조사'에서 결정적인 차이
- 글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자료 조사와 공부가 필수
- 글쓰기는 공부를 지속하는 일
- 공부를 통해 글의 깊이와 풍부함과 디테일을 더할 것
- 글쓰기는 전 과정에서 내가 쓰고자 하는 내용을 스스로가 잘 '소화'를 하고 있을 것
- 자료 조사는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서 내 글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듦
- 도서관에 가서 관심 주제에 맞는 책을 고른 후 그 위아래 좌우로 주변에 있는 책들을 무작위로 훑어볼 것. 뜻밖의 연관 주제들이 발견될 것이고 그것들을 좋은 글 재료가 되거나 새로운 자극을 줄 것임
- 글은 그냥 쓰는 것
- 루틴은 다른 말로 집중력
- 글 쓸 때 '인내'를 '고통'으로 느끼지 않을 것
- '자연스러운' 인내심을 가지려면, 작가업의 가장 중요한 과정을 진심으로 좋아할 것
- 혼자, 과묵하게 글을 쓸 것
- 작가로서의 95퍼센트는 혼자 그냥 쓰는 것으로 채워짐
- 작가님 호칭을 듣는 것, 서점에 내 책이 비치된 것을 보는 것, 책 출간 기념 행사에서 많은 독자들을 앞에 두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극히 일부분의 비일상일 뿐이니 그런 부분에 현혹되지 말 것
- 슬럼프가 있는 게 아니라 잘 써지는 날과 덜 써지는 날이 있을 뿐
- 초고의 경우 웬만하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어떻게든 시작했으면 끝을 내는 게 중요
- 지속적으로 작가업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가질 것
- 글만 읽어봐도 '아 이건 OO작가의 글이다'라고 알 수 있을 정도의 문체를 가질 것
- 자기 줏대대로 살아온 삶이 있는 작가들에겐 자신만의 확실한 문체가 있음
- 그 작가만의 문체가 있을수록 독자는 그 작가의 글에 중독될 공산이 큼
- 작가는 독자를 자신의 글로 매혹시키는 것을 넘어 중독되게 만들어야 함
- '못 기다리겠어. 빨리 다음 책 내줘요' 애원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매혹적으로 쓸 것
- '차별적 우위' 다른 작가들과 달라야 되고, 다른 동시에 더 잘 쓸 것
- 지속 가능한 작가 생활을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평가를 받는다는 것
- 욕을 먹지 않는 게 중요한 사람은 대중작가가 될 수 없음
-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는 SNS에서 자기 이름을 검색하지 않는 것
-'평가'를 받음으로써 이 직업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
- 작가는 독자와 적당한 거리를 둘 것
- 심리적으로 독자에게 의존하면 자기 객관화 할 수 있는 힘이 떨어지면서 정신적으로 느슨해짐
- 작가는 일부러라도 스스로를 조금 외롭게 만들어 줄 것
- 작가는 독자에게 개별적으로 친절해야 할 의무나 필요가 없음
- 작가가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선의는 좋은 글로 보답하는 것 뿐
- SNS로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서점, 출판사 계정을 보지 않을 것
- 들뜬 분위기는 산만하게 만들 뿐
- 작가는 내가 나를 응원하며 스스로 서고, 앞으로 밀고 나아가야 하는 직업임을 받아들일 것
- 내게 재능이 있나 없나 같은 생각은 하지 말 것
- 일단 오늘의 원고를 쓸 수 있을까만 생각할 것
-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스스로에게 지지 않으면서 남 잘되는 것엔 신경을 끊고 끊임없이 나를 책상 앞에 갖다 놓는 것.
- 그런 면에서 작가업은 예술보다는 차라리 기술직에 가까움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어도 글을 쓰고 싶다, 쓰지 않고는 결딜 수가 없다, 이런 절실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말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나와 함게 가늘고 길게 망해보기로 한다.
- 임경선,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중에서 요약




* 에세이스트의 '스타일'에 대해 브라이언 딜런은 <에세이즘Essayism>에서,

"'스타일'이 있는 글은 대체 어떤 글일까 생각해 보면, 가만있지 못하게 하는 글, 뭔가를 간절히 바라게 하는 글, 왠지 모르게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글, 가슴을 치는 글이다. 그런 글의 어떤 점이 가슴을 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그 글의 스타일이라고밖에는 말하지 못하겠다. 혼돈 속에서 건진 형체와 감촉, 그것을 꼼꼼히 다듬고 부풀리는 것. 과감하게 드러내고, 결국에는 초연하게 거리를 두는 것. 내가 절대 따라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과감함초연함. 글 중에도 그런 글이 있지만,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몸 중에도 그런 몸이 있다. 그렇게 제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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