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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Nov 27. 2023

침묵, 태초의 언어는 하나였나니





믿고 보는 배우 전도연 주연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보고 써 놓은 글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잔가지 모두 처버리고 오로지 한 가지에만 몰입한다. 나는 이런 뚝심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불통'에 관한 이야기다.


ㅡ 삶 위로 날며, 꽃들과 말 없는 것들의 말을
애쓰지 않고 알아듣는 자 복되도다!
-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 '상승' 중에서




S#1. 불통의 시


'말 없는 것들'도 말을 한다.

침묵, 고결한 태초의 언어는 이것 하나였나니


침묵이 고갈된 이들이 지껄이는 소음 속에서 나는,

'말 없는' 자들의 말을 들으려고 애쓴다.  

'애쓰지 않고'는 알아 들을 수 없어

이것은 신이 내린 형벌.


바벨탑의 저주는 '불통'이었다.

언어가 어긋난 자리에 불신의 불꽃이 피어오르니

인간은 말의 쓰레기들을 토해 놓는다.


태초부터 말들은 내 심장에서 태어난 것들이라

당신의 박동 소리를 듣지 못한다.

살을 맞대어 끌어 안을 때 나는,

당신의 침묵의 언어를 듣는다.


침묵의 언어는 파동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높고 단단한 바벨의 벽을 건설했고

언어의 파동은 막히고 튕겨져 나와 산산이 부서져 흩어진다.

신의 저주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처럼 클라이맥스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저주에서 벗어날 길이 단 하나 남아 있으니

당신의 언어를 읽어낼 '가련한 눈'을 놓치지 않는 것.   




S#2. 불통의 언어는 공포다


캠핑장의 밤에 대화의 꽃이 피어난다. 대화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우리 텐트 안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딸이 우리 텐트 안으로 모르는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 왔다고 알려왔다. 나는 숯집게를 들고 위협했지만 고양이는 캬하는 날카로운 위협의 소리로 더 세게 응수했다. 그리고 텐트 밖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텐트 반대쪽 문을 열고 들어가 입구쪽으로 쫒아 냈지만 입구로 나간 고양이는 떡 버티고 공격의 태세를 취했다. 왜 쫓겨나야 하느냐고.


오히려 텐트 밖으로 쫒겨난 것이 억울한 듯 텐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필사적으로 메쉬망에 매달렸다. 쫒아내려고 더 강하게 윽박지를수록 고양이의 저항은 더 완강하게 벼텼다. 캠핑장의 도둑이 된 들고양이들은 이런 습성을 보이지 않는데 녀석은 이상했다. 오징어로 유인해보고, 잠시 자리를 피해보기도 했지만 고양이는 요지부동이다.


급기야 관리소에 연락해서 사람을 불렀다. 관리인은 들고양이들 중 아는 녀석인 줄 알고 친절한 목소리로 고양이를 불렀다. 안도했던 것도 잠시, 자기가 아는 녀석이 아니라며 관리인의 태도도 돌변했다. 고객의 불편함을 모른 채 할 수 없는 관리인의 입장이 부딪혀 고양이와의 갈등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짧은 찰나의 순간, 나는 저항하는 고양이의 눈빛 속에서 깊은 공포를 보았다.


옆 텐트에서 젊은 여자가 급히 달려왔다. 그녀는 자기가 아는 고양이 같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외쳤다. "어, 녀석이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하며 덮썩 안고 가버렸다. 한 마디 사과도 없었다. 고양이 주인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과 고양이가 싸움을 벌인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무례소치한 고양이 주인에게 항의할 겨를도 없이 소동은 허무하게 끝났다.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고양이 습격(아닌, 자기 텐트를 잘못 찾은) 사건에서 불통의 본모습을 보았다. 불청객을 텐트 밖으로 쫒아내려는 인간의 마음과 쫒겨나지 않으려는 고양이 마음 사이에는 불통의 언어가 존재했다. 놀란 고양이의 마음만 중요한 주인의 마음과, 집고양이인 줄 생각도 못한 채 공포에 떤 나의 마음과, 다른 언어를 가졌다는 이유로 두려움에 몸서리 쳤던 고양이의 언어는 달랐다. 불통의 언어에 갇힌 각자의 마음 속에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현상은 불통이고 각자의 내면은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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