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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Nov 30. 2023

말재주 대신 글재주





"너 말 할 줄 아는구나."

"어? 어…"


나는 말재주가 없었다. 입밖으로 말을 꺼내기 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언어는 딱 목젖에서 멈췄다. 말더듬이도 벙어리도 아니었다. 뱉어내지 못한 언어들은 목구멍에서만 맴돌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다행히 먼저 말 걸어오는 친구는 항상 있었다.


공사장 목수 일을 했던 아버지는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옮겨다녔다. 포항제철소 건설근로자, 부산지하철 공사장 인부,사우디아라비아 건설노동자로… 아버지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가족들은 짚시처럼 떠돌았다. 전학을 자주 다녀야 했다. 4학년 때는 1년에 두 도시를 옮겨 다니기도 했다. 새로운 친구 사귀기는 내겐 항상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중학교도 남자 중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도 남자사립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무더위와 무료함을 잊어보려고 문구점에서 우리반 학생 수만큼 엽서를 샀다. 하루에 다섯 명씩, 출석번호 1번부터 엽서를 썼다. 한 학기 동안 내가 본 너의 모습과 작은 에피소드들, 너의 장점, 너와 친해지고 싶다는 등의 내용이었을 것이다.


말도 한 번 썪어보지 않은 반 친구에게서 받은 엽서에 아이들은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망망 대해에 띄우는 '유리병 편지'에 답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존재했다. 그 중에서 긴 장문의 편지로 답장이 온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와는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그 즈음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싹트고 있었다.




문학이 좋아서 국문과에 입학했다. 여학생들로 가득찬 강의실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1학년 여름방학이 되자 매년 해오던 나만의 친구만들기 방식을 똑같이 실천에 옮겼다. 여학생들의 반응은 남학생들과는 다르다는 걸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평소 하던대로 엽서를 썼을 뿐인데…


학과 사무실 우편함에 내 이름 앞으로 온 장문의 답장 편지들이 꽂혀 있었다. 아뿔싸,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개학 후 여학생 동기들의 특별한 눈빛과 마주해야 했다. 그중에는 오랫동안 이어진 여자 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친구야, 오늘은 내 방에 묵은 먼지를 털어내다가 네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 본다."


나는 친구 방의 묵은 먼지와 일상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 우리는 연인이 되지는 못했다. 그 흔한 데이트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내면을 잘 아는 사이였다. 친구는 군대생활 내내 내게 주기적으로 편지를 보냈다. 우리들의 편지 내용들은 가벼운 일상에서부터 무거운 철학적 질문과 대답까지 다양했다. 소대원들은 친구를 내 애인으로 알고 있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나는 소대에서 고참들 연애편지 대필 병사로 사랑을 듬뿍 받았다. 나는 편지를 제일 많이 받고 많이 쓴 병사였다. 내가 제대하고, 친구는 졸업과 동시에 호주로 떠났다.




신은 내게 말재주 대신 글재주를 주었다. 글을 잘 썼다기보다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게 편했다. 천천히 정확하고 깊게 전달할 시간이 주어져서 내게 잘 맞았다. 글을 쓰는 동안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누군가를 향해 쓸 때 그 사람과 했던 말, 순간의 표정과 눈빛, 몸짓까지 관찰했다가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감을 열어 놓아야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말재주 없던 내가 말로 밥벌어 먹고 살고 있다. 누군가를 향해 말을 하고, 매일 쓰고 있는 내가 좋다. 오늘도 나는 '유리병 편지'를 누군가에게 보낼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있다.


내가 학창시절에 말을 잘 못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한다. 글도 말도 모두 나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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