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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Dec 01. 2023

기억은 정체성이다




'정체성'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여기서 '변하지 아니하는'에 이의를 제기하여 나는 이렇게 새롭게 정의 내린다. '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이 스스로 내린 대답의 총체'라고. 간단히 말해서 정체성이란 나에 대한 기억의 총합. 내가 누군지 말할 수 있으려면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 규정할 수 없다.




기억상실

나는 특정 기간의 기억을 잃었다. 아무래도 결정타는 위암 수술과 항암치료 때문이었다. 항암치료가 거의 끝나고 몸이 회복될 무렵 알게 되었다. 수술 직전 몇 년 간의 기억이 모두 사라졌다. 우리반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 내가 생활했던 그 어떤 장면도 기억에 없다. 처음에는 어? 기억이 안 나네. 이건 뭐지? 하고 당황했다. 나중에는 큰일 났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하며 두려움이 몰려왔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망각이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 지를 말하며 주변 사람들은 괜찮다고 했다. 사라진 기억은 사라진 채로 그냥 놔두면 그만이라고. 그런데 문제는 기억이 사라지는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염려가 공포로까지 증식하는 것이었다. 내가 불안하고 힘들어 하니까, 아내가 병원에 가자고 했다. 두려웠지만 정확한 상태와 이유를 알아야겠기에 종합병원 알츠하이머치매 검진 센터를 찾아가서 검사를 받았다.


담당의는 검사 소견 상으로는 병이 의심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항암치료 중에 일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공포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사라진 기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메모와 기록에 집착하는, 제법 쓸모있는 병을 얻었다.




기록집착

기억이 모조리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이자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에버노트' 메모 앱에는 5000 개가 넘는 기록이 쌓여 있다. '에버노트'는 김정운의 <에디톨로지>에 소개되어 알게 된 나의 최애 메모앱이다. 내가 '에버노트'를 좋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딱 한 가지만 소개하겠다.


'에버노트'의 최고 장점은 스마트폰, 테블릿, 노트북, 데스크탑 등 여러 대의 단말기를 동시에 접속해서 실시간으로 전 방위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신속성에 있다. 단말기마다 크기와 휴대성이 다르고 물리적 쓸모와 기능이 달라서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하게 된다. 글을 자주 수정하면, 최후의 기록본이 계속 바뀌는 불편한 점이 있다. '에버노트'는 여러 대의 기기를 자기 편한대로 바꾸며 글을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 탁월하다. 글쓰는 작가나 메모쟁이에게는 정말 유용한 기능이다.


메모쟁이들은 알 것이다. 필요할 때 메모도구가 옆에 있어야 한다. 생각과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즉시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휘발되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냥꾼이 항상 무기를 휴대하듯이 작가는 생각과 문장을 낚아채기 위해 펜과 노트(나에게는 '에버노트'가 되겠다)를 항상 허리에 차고 다녀야 한다. 요컨대, 기록 도구의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이것 말고도 '에버노트'는 작가에게 필요한 장점들이 많다. 한번 써보길 추천한다. 사용료 지불하기 아깝지 않다. 나중에 작가를 위한 '에버노트' 활용법에 관한 강의나 글도 계획 중이다.


기록할 때,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정보들을 복사붙여넣는 수집병에 걸리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에버노트'는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내 '에버노트' 카테고리(에버노트에서는 폴더 개념을 '노트북'이라 부른다)는 일기, 몽타주(꿈), 자화상, 잡념, 책, 영화, 일상, 아포리즘, 시 등등 해서 20 가지가 넘는다. 5000 개가 넘는 메모 중 책 문장을 필사(정확히 말해 내 손으로 '타이핑')한 것을 제외하면, 모두 내 머릿속에서 나온 액면 그대로의 생각 메모들로만 채워져 있다. 타인의 문장을 필사한 것마저도 내가 자극 받은 액기스들이니 온전히 '내 안의 것', '나만의 것'인 셈이다. 내 글쓰기의 재료가 정리되어 있는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기록의심

기록의 양이 늘어나면서 고민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기록의 순도와 질에 관한 의심이 생긴다. 지금 쓰고 있는 기록이 진짜 내 마음일까, 얼마전 기억이 혹시 왜곡된 것을 아닐까. 기록의 진심을 의심하게 되면서 생각하는 집중력과 지구력이 확실히 좋아졌다. 매끄럽고 멋지고 좋은 문장을 쓰려는 노력보다 정확하게 쓰는 것에 집중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의 단기기억 상실증에 걸린 주인공 '레니'는 기록 조작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몸에 문신으로 기록을 남긴다.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의 주인공 김병수도 끊임없이 자신이 해놓은 기록을 의심한다. 기록이 사실일까. 믿을 수 있는가. 누군가에 의해 내 기록이 조작되진 않았을까,하고. 주인공들의 자기 의심은 타인에게 투사되며 갈등의 중심축을 이룬다.


기억은 정확하게 기록이 가능한가?
기록이 나의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을까?


기억은 얼마간 변형되고 기록되면서 또한번 가공된다. 팩트와 기록은 절대로 일치할 수 없다. 그런데도 기록은 빈약하기 그지없는 기억을 보존하는 보조 장치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나의 가족들은 내 기록을 신뢰하는 편이다. 가령, 특정 장소에 관한 기억이 엇갈릴 때 아이들은 "아빠 일기 검색해서 확인해 봐. 그때 우리가 간 곳이 여기 맞지?"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스마트폰 '에버노트'에 관련 키워드로 검색해서 의기양양하게 결론을 내려준다. 내 기록은 진실을 가리는 판관이 된다. 추가적으로 그때 내가 또 이렇게 써놨네, 하며 생각 메모를 읽어주면 가족들은 느낌과 추억을 공유한다. 가끔씩 너무 솔직한 말을 써놔서 당황할 때도 있다. 그것마저 함께 웃는 즐거움이 된다.


'선사'와 '역사'를 구분 짓는 기준이 기록의 유무다. 역사란 기록되어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좋아한다. 이순신과 라이벌 원균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 대목이 기록한 자와 기록하지 않은 자에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나는 기록하는 자가 승리한다고 믿는 쪽이다. 기록의 힘은 위대하다.




진실묻기

기억이 진짜일까,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진짜 내 마음일까를 계속 묻는다. 이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하는 작업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글쓰기는 잘 쓰려고 노력하기보다 정확하게 쓰는 태도를 만든다. 정확하게 글을 쓰면 자기정체에 다가간다.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이 쓴 글은 독자에게 신뢰감을 준다. 독자는 신뢰성 있는 글에 공감한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 자신이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산물이다. 기억은 계속 변한다. 이것은 단순히 '왜곡'이라는 말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자기 정체성은 재구성하면서 계속 변한다.


치매에 걸린 사람은 작가로서 삶을 계속 영위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치매는 가까운 시간의 기억부터 과거로 먼 시간의 기억으로 삭제되어 가는 병이다. 기억에서는 삭제되었지만 흔적으로 남아 있는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또 다시 현재를 기록한다. 현재의 기록은 다시 미래 기록의 근거가 되어 글쓰기는 지속될 수 있다.


치매 걸린 노인이 직접 쓴 현재의 기록. 매력적인 저작 아이템이다. 이것은 반드시 에세이여야 할 것이다. 가공한 소설과는 완전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치매 노인이 쓴 소설은 미친 헛소리로 치부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과 마음을 진실하게 받아 적는 일만 남는다. 모든 작가에게 부여된 순연한 임무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아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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