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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Dec 05. 2023

중년남 슬기로운 자취생활





일 주일에 두 번씩 내 집에 간다. 식탁 위에 널브러진 물건부터 원래있던 자리를 찾아준다. 물건들이 거주하는 자리는 정해져 있다. 그 자리는 내가 정한 것이다. 공동 공간은 누구든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 비워둔다. 다음은 싱크대 차례다. 현역숟가락통에 자리를 잘못 잡은 예비역숟가락들의 제자리를 찾아준다. 자기 자리를 못 찾고 헤매고 있는 그릇과 찬기들에게 혼잣말 잔소리를 한마디하고 자기 자리로 돌려보낸다.


장인어른의 소행이다. 장모가 환자가 되자, 본의 아니게 장인은 딸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당신이 딸을 위해 도움 줄 일을 찾았을 것이다. 원래 당신의 공간이 아니던 곳. 처가집에서도 주방은 장인의 공간이 아니었으니 주부의 역할을 수행한 경험도 없었다. 그릇에 이가 나가 있고, 컵이 깨져 쓰레통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잊은듯 주부생활 초창기에 내가 치던 사고를 보며 웃음이 났다.


지난 주말에 내가 짧은 시간에 설거지, 빨래개기, 청소와 정리, 자취방에 가져갈 반찬챙기기를 일사천리로 해치우고 사라진 모습을 보고 장인은 아내에게 연신 감탄을 하더라고 했다.

"우와, 박서방 손이 어찌나 빠르고 정확하던지... 우와, 뭐, 후다닥후다닥 하다가 사라렸는데 집이 말끔한 거 있지."

아내는 그저 웃었다고. 당신이 우리들의 일상을 한번도 밀착해서 본 적이 없었구나, 하고 그때서야 생각이 미쳤다. 항상 내 것이어서 내 것인 줄 모르고, 언제나 내가 하던 행동이 처음 본 누구에게는 놀라운 장면일 수 있었다.




이제 주방은 내 공간이다. 이사오자마자 아내가 이미 정리를 끝낸 그릇들을 내 방식대로 정리했다. 아내는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곳이 내 공간이어야 한다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아내는 정리를 나보다 조금 못할 뿐이지, 살림을 안하거나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암환자가 되면서 아내는 운전을 하고, 가족들의 민원들을 처리했다. 나는 위 전체가 없어 삼시세끼를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한다. 기대야 하는 환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해결해야할 일도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주방은 내 공간이 되었다. 밥하기, 설거지하기, 빨래개어 넣기, 분리수거,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청소와 집안 정리... 나는 '집사람'이 되었고, 아내는 '바깥사람'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고급 스포츠 용어로 우리 부부는 '스위칭 플레이'에 능하다. 스위칭은 실력있는 선수들끼리 가능하다. 동료의 빈자리를 계속해서 주시하기, 빈자리가 티나지 않게 조용히 메꿔주기, 그러면서 자기 본연의 역할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섬세한 관찰력과 배려의 마음이 장착되어 있어야 하고,  멀티플레이가 가능하게 경험과 훈련이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중년의 나이에 자취를 시작했다. 운전이 버거워져 출퇴근하기 힘들어서 자취를 하는 거라고 주변사람들에게 둘러댔다. 근무지가 결정되기 이전에 내 글쓰기 공간을 갖기로 아내와 암묵적으로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다. 자취방에 식탁과 의자, 책상을 들여 놓으면서 아내는 여기서 책 한 권을 출판하지 않으면 집에 들어올 생각하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 그렇게 비장하게 시작한 자취생활이 1년이 되어 간다.  


내 '기댐'의 정도를 측정해 보기

가족 밖에서 내 가족 바라보기

'관계의 거리'로만 보던 시선에서 '관계의 온도'를 측정해 보는 시간

실증적으로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 체험하기

방치해 두었던 과거와 화해하기

남은 생에 대한 책임과 의무 확인하기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진지하게 물어보기  

독립체로서 자기 인식하기

그리워 보기

차갑게 사랑하기

지금 내게 자취는 단순히 혼자 밥 해먹고 생활하는 것 이상으로 소중한 시간이다. 더 단단한 어른이 되어서 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힘들겠지만 아내도 그런 시간이길 바란다.




남자에게는 자기만의 '슈필라움:Spiel(놀이) + raum(공간)'이 필요하다고 사회심리학자 김정운이 말했다. 아내는 내가 공간집착형 인간이라는 걸 안다. 나는 공간에 집착하는 아이였다. 삼단스펀지요로 텐트를 만들고, 이불칸 농안에서 잠들고, 창고의 후미진 구석을 좋아하던, 나만의 아늑한 아지트를 찾아 숨어들던 아이. 아늑한 공간에서 엄마의 자궁 속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마음이 편안한 공간을 찾아 다니는 습성은 여전하다.


주말인 오늘도 내 집 정리를 끝내 놓고 자취방으로 쌔앵하고 도망치 듯 나왔다. 나만의 아지트 속으로 숨어 든다. 편안함을 느낀다. 집에서 가져온 반찬들을 정리하고 책상에 않아 노트북을 켠다. 지금 이 글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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