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든 길도 길이다
축돌이(아들)와 해운대 머리하러 가는 길.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는지 모른다. 처음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자 빠르게 포기한다. 길은 내비게이션이 찾아 주겠지. 두 번, 세 번 네비가 가르쳐준 길을 벗어나자 문득 깨닫게 된다. 어떤 길도 잘못 든 길은 없다.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게 될 것이니. 그 대신, 축돌이와 대화할 시간을 길게 얻었다.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돌고돌아 한 시간 이상을 허비했다. 헛된 소비가 아니라 의미 있는 생산의 시간이었다. 축돌이와 대화하려고 무의식이 고의로 저지른 짓일 지도 모른다. 같이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면 먼 길도 지루하지 않다. 잘못 든 길도 때론 좋은 길이 될 수 있다. 생활 속 지혜이자 인생의 철학이다.
영국첼시 축구캠프
여름방학 동안, 영국첼시 축구캠프 갔다온 축돌이는,
"영국 갔다와서 느낀 건데, 학교 축구팀에 들어가지 않은 건 정말 잘 한 거 같아. 아빠엄마가 경쟁에 목메는 사람이었다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축구부나 클럽팀으로 어떻게든 나를 입단시켰겠지. 매일 대회에 나가면서 부상이나 힘들어서 지금 쯤 축구를 그만 두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그곳에 온 아이들은 축구에 대한 생각이나 목적이 정말 각양각색이었어. 축구를 취미로 하면서 배우러온 아이들, 자기 나라에서 소속 팀이 있는 아이들, 소속팀이 없는 나같은 아이들, 영국, 아프리카, 유럽 각 나라의 아이들... 영어를 못해 직접 물어 보진 못했지만, 훈련이나 시합에 임하는 눈빛과 태도만 봐도 축구 선수의 길로 가려는지 아닌지 표가나."
"그 애들은 우리나라 학생 축구 선수들처럼 공부를 완전히 접고 모든 걸 걸지는 않아. 공부, 진학, 진로 등 자기가 가려는 길은 있지만, 축구 하나에 목메는 무모한 짓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 것 같았고, 축구를 좋아해서 평생하게 될 것이란 걸 아는 아이들 같았어."
"내가 체력이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코치와 외국 애들이 나보고 너 왜 이렇게 체력이 좋냐고 했어. 내가 나의 장점을 몰랐구나 생각했고 자신감도 생겼어. 체력이 약한 게 아니라 여태껏 호흡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애. 깊게 호흡하는 법을 배웠어."
가족을 벗어나면 보이는 것들
국내 전문가들이 하나 같이 외국선수들에 비해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체력은 좋은데 기술이 부족하다고 했다. 2002년 월드컵 국가대표를 맡은 거스 히딩크는 한국선수들은 기술은 좋은데 체력이 부족하다는 정반대의 진단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히딩크의 분석이 옳았다. 체력훈련을 통해 토너먼트를 거침없이 이기며 4강까지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자기 세계 속에 갖혀 있는 자는 끊임없이 자기복제 되는 생각이 전부라고 믿는다. 가족의 문제는 가족 바깥 사람이 더 정확하게 본다. 당신이 나와 우리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해, 라는 생각이 문제의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내가 축돌이에게서 바랐던 축구에 대한 생각을 영국축구캠프 경험으로 깨닫고 돌아왔다. 열 마디의 말보다 한번의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고, 바깥 세상이 좁아터진 자신의 시야를 넓힌다. 어느 곳, 어떤 방식, 어느 수준으로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너는 축구를 평생하면서 살게 될 거라고. 과정을 즐기면서 가면 된다고 말해 줬다.
스페인 비야레알 공개 테스트... 실패할 권리
한국에서 열린 비야레알 공개테스트, 결과는 탈락! 스페인 구단에서 체류비용을 지불하고 현지로 데리고가서 훈련과 경기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영국캠프에서 만난 애들과 연락하면서 얻은 정보였단다. 영국에서 얻어온 자신감으로 내심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두세 명의 유망주만을 뽑는 경쟁이 심한 테스트였다.
소심한 아들 녀석이 남자들 사이에서 자기를 지켜줄 운동 하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여섯 살 때 축돌이를 축구장으로 데리고 갔다. 아내의 적극성이 보태지면서 선수반으로 옮겨가서 초등학생 선수생활을 성공적으로 잘 마쳤다. 중학교 입학하면서 선수는 잠시 멈추고 숨고르기를 하자는 데 모두가 동의했었다.
축돌이는 크게 낙담한 것 같지는 않았다. 독기가 올라오더라고 했고, 실패의 경험이 있어야 성공 서사가 좀 있어보인다나 뭐라나, 허풍도 떨었다. 소심하던 녀석이 배짱도 조금 생겼다. 축구를 즐기고 있었고, 나름의 도전도 멈추지 않았다. 내 아버지와 나, 나와 아들로 이어지는 축구 사랑 유전자는 오늘도 면면히 흐른다. 축돌이는 언제나 내게 축구 얘기로 말을 걸어온다. "아빠, 어제 손흥민 골 넣은 거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