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노마드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옥주현 씨는,
사람들은 제게 묻죠. "발레는 어떻게 해요?" "다이어트는 어떻게 해요?" 저는 이렇게 묻는 사람의 지속성을 못 믿어요. 먼저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질문하고 그다음엔 '뭘 공부하면 되지?'하고 물어야죠. 적성에 맞으면 오래 하고 싶고 오래 하려면 탐구하게 돼요. 계속한다는 건 그냥 숨 쉬듯이 놓지 않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오래 한 사람이 보여주는 우주는 깊이가 달라요. 그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찾은 우주예요.
-은유 <글쓰기 상담소> 중에서
나는 가르치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배우러 다니지 않는다. 내가 잘나서 타인에게 배우러 다니지 않는 게 아니다. 타인의 가르침은 자기 시행착오가 생략된 가르침이라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르침이 넘쳐나는 시대. 넘쳐나는 강의와 자기계발서를 찾는 것은 시행착오의 시간을 줄이고 싶은 우리들의 성급함을 보여준다. '배움 노마드'들은 자기 안의 허기에 허덕인다. 아무리 배워도 채워지지 않는 배움 허기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그대로 따라하면 자신도 거기에 도달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배움은 반복되는 시간을 견디는 자의 것이다. 문제는 시간을 견디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시간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다. 결과의 시점에서 시간은 견뎌야 하는 것이지만, 과정의 흐름에서 시간은 즐거운 것이다. 배움은 목표에 있지 않고, 과정 속에서 스며든다.
창작자 되기
이론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에서 이론을 생산하는 주도적인 힘을 가져야 합니다.
- 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 중에서
영화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영화를 직접 만들어 봐야 한다. 미장센, 프레임, 클리셰, 오마주, 오브제, 시퀀스, 콘티... 최초, 언어와 이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를 만들어 본 사람이 있었을 뿐이고, 이론은 필요에 의해서 언어로 정리된 것일 뿐이다.
소설을 알고 싶으면 소설을 쓰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시점, 초점화, 서술자, 입체적 인물, 문체, 형상화... 소설을 써 보면 용어들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게 된다. 쓰는 사람은 자신의 작품이 독창적이기 위해서 새로운 방법을 뚫기 위해 분투한다. 새로운 이론의 밀알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창조, 실행, 문제, 돌파... 제일 마지막에 누군가가 노트 귀퉁이에 정리한 간결한 언어가 이론이라는 협소한 자리이다. 이론가가 큰 소리 치는 사회는 게으른 자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배움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역설적으로 배움이 없는 길에 있다. 배움은 창작할 때, 문제와 필요가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편협의 완성
"연습이 너무 편향된 거 아닌가요?"
나는 안인력에게 그렇게 물었다.
"단점을 보완하는 것보다, 장점을 살리는 게 좋아."
그는 그렇게 말하고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 김갑수 <편협의 완성> 중에서
단점을 보완하려고 시선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자기를 관찰하면 장점이 보인다. 장점은 이미 내부에 장착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장점을 발견하는 일이 자기자신에게로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다. 자기 자신에게 도달한 사람만이 타인에게로 흐를 수 있다.
지상에는 멋있고 화려한 것이 너무 많아, 밤하늘에 은은히 빛나는 달빛을 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아서 밤하늘을 올려다볼 시간이 없다. 나는 외로운 밤하늘을 건너온 독학자들을 사랑한다. 자기 스스로 배움의 주체가 된 뚝심 있는 사람을 보면 사랑에 빠진다.
잊지 말자. 세상은 스스로의 동기로 고독하게 배우며 한 우물을 팠던 미련한 사람들이 바꿔 왔다는 사실을. 진정한 배움은 언제나 독학자들만의 것이다. 독학자들은 편협의 우물을 파서 배움을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