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진검을 잡던 날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칼의 에너지는 칼날이 아니라 칼자루에서 나온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칼날을 잡고 있는 칼자루는 묵직했다. 칼자루에 붙들린 칼날은 제맘대로 가볍게 날뛰었다. 더 근원적 힘은 칼자루를 잡고 있는 손이 아니라 몸에서 시작되었다. 몸의 중심이 손의 원심을, 칼자루의 중심이 칼날의 원심을 만들었다. 날뛰는 칼날을 제어하는 것은 '힘'이 아니고 '춤'이라는 사실을 수련을 하고 한참 뒤에 깨달았다.
검劍은 서양의 칼이고 도刀는 동양의 칼이다.(정확하게는 동양에도 검劍과 도刀가 모두 있지만, 전통적이고 일반적으로 쓰던 무기용 칼의 용도에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다)검劍은 직선으로 뻗어 있고 양날이 다 살아있다. 도刀는 곡선으로 휘어 있고 한쪽 날만 살아있다. 검劍은 수직으로 패는(파괴하는) 운동이고 도刀는 곡선으로 베는 운동이다. 검劍은 힘이 지배하고 도刀는 율동이 지배한다.
검도인이 진검베기를 수련할 때 보통 볏단이나 대나무를 베는 연습을 한다. 볏단은 무르고 대나무는 단단하다. 무른 볏단이 단단한 대나무보다 더 베기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첫 볏단 베기에 실패했다. 무른 것이라고 만만하게 마음 먹고 들어간 게 잘못이었다. 힘이 들어갔고 볏단을 팼다. 칼이 볏단에 쿡 박혔다. 부드러운 벼의 줄기들이 뭉쳐 있을 때 칼의 에너지를 품어버린다는 걸 몰랐다. 손목에 무거운 통증이 한 동안 지속되었다.
대나무 베기는 한번에 성공했다. 단단한 것이라서 바짝 긴장하고 들어갔다. 볏단베기 실패의 교훈은 패지 말고 베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패는 것과 베는 것의 중도를 찾는 게 중요했다. 정신을 집중하고 대나무를 우하향으로 손목을 이용하여 칼자루의 무게를 칼날의 에너지로 전달했다. 부드러우면서도 결단력 있게. 한번에 두 동강 난 대나무의 절단면은 반듯했고 내가 베었다는 느낌도 모른 채 베어졌다.
칼의 곡선 운동에너지가 끝나는 지점까지 기다리며 몸은 순응해야 한다. 한 방향의 운동에너지가 상쇄되는 시점에서 몸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을 꾀해야 한다. 동양의 검술은 절도와 끊기가 아니라 회전과 춤에 가깝다. 운동에너지를 힘으로 거스르려고 하면 날카로운 날은 자기 자신을 해하거나 원하는 목표점을 정확하게 공격할 수 없다.
'칼'을 임진왜란 전에는 '갈'이라고 했다. '꽃'은 '곶'이었다. '갈'이 한을 품어 '칼'이 됐다. 전쟁의 상처는 백성들의 언어에도 고스란히 남았다. 칼을 든 자는 분노를 품어서는 안 된다. 분노로는 상대를 이길 수 없으며 칼날처럼 차가워져야만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
이순신은 첫 출정(1592년 5월 4일: 남해 미조항 집결)을 앞둔 전날, <난중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 이 날 여도 수군 황옥천이 왜적의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도망갔는데, 잡아다가 목을 베어 군중 앞에 효시하였다."
한 사람의 병사가 아까운 비상시국, 내일 당장 첫 전투에 임해야하는 절박한 시간에 이순신은 탈영한 병사를 잡아와 참수해서 효시했다. <난중일기>를 읽었을 때 충격으로 다가왔다. 병사를 죽였다는 사실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벼랑끝에 선 장수의 절박함을 읽었다. 이순신을 따라 다닌 수많은 난제들의 시작이었고, 일기의 구석구석에 그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죽은 병사에 대한 죄책감을 정확하고 차가운 한 줄의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난중일기> 속에는 탈영하거나 군량미를 빼돌린 병사를 참수한 기록이 여럿 발견된다.
검도는 위태로운 칼날 위에 자신을 올려 놓는 일이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 모조리 깨워놓는 긴장의 극치를 경험하는 일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는 일이다. 진검 수련을 하면서 유연함이 힘을 통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명이 있는 여린 것에 대해 민감하게 조심하는 마음을 배웠다.
나는 날카로움의 긴장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3년 간의 진검 수련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