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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Dec 18. 2023

뻔뻔함에 관하여





자신에게 뻔뻔해지기

스스로에게 잘못한 것은 적어도 타인에게 해를 입힌 것이 아니니 반성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도 모르는 자기 반성이 반복되면 '반성중독증'이다. 자신에게 뻔뻔해지면 자유를 얻는다. 자기 자신에게만은 무한대로 허용적이어도 괜찮다. 뻔뻔하게 견디기는 자기를 지키는 마지막 수단이다. 자신에게 뻔뻔해지기 위한 실천 강령,


무엇이 진정 나다운 것일까 놓치지 않을 것.

두려움 없이 뚜벅뚜벅 걷는 여정을 즐길 것.

게을러 보이더라도 느리게 가야할 때를 알 것.

미워할 대상을 정확히 알고 용기있게 미워할 것.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중년이 멋있다는 사실을 알 것.   

마음이 가자는 길로, 결과를 걱정하지 않고 일단 가 볼 것.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지 않을 것.

괜한 자격지심으로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스스로 무너지지 말 것.

관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하고 싶은 말을 편안하게 꾸밈없이 할 것.


자신에게 뻔뻔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손가락질 받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괜찮다. 먼저 미친 짓해서 손가락질 받는 게 살기가 더 편하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자기를 향한 손가락질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손가락질거리를 사냥하러 시선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손가락질 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있는 자들의 것이다. 화가 날 땐 자신이 왜 화가 나는지 설명하려들지 말자. 가끔씩 그냥 질러버리는 게 인간적이다.




글쓰는 자의 뻔뻔해지기  

글쓰기를 할 때엔 겸손하면서 오만하고, 오만하면서 겸손할 필요가 있다. 글에서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욕심을 내는 일에선 오만이 필요하며, 그런 욕심이 드러나지 않게끔 차분하게 논지를 펴 나가는 일에선 겸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글의 마지막을 과거 새마을영화 식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막판에 천사되기', '막판에 낙관주의자 되기', '희망 중독증'
과공은 금물이다. 글에 전반적으로 '당위'가 너무 많고 '어떻게'가 빈약한 것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스스로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방안을 제시해보는 적극성이 아쉽다는 것이다… 부자도 아니면서 부자 몸 사리듯 하지 말고 욕심을 내는 게 좋다.
- 강준만 <글쓰기가 뭐라고> 중에서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대안도 제시하는 뻔뻔함. 내가 제기한 문제점을 다른 사람들은 공감해 줄까? 내가 제시한 대안이 외면당하면 어떡하지? 글쓰는 자는 당당하게 시치미뗌으로써 진짜 자기를 보여줄 수 있다. 진짜 자기를 보여주지 못하면 나의 글이 아니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야말로 시간낭비 지면낭비다.


내 글에 '당위'가 많지는 않지만, '어떻게'가 빈약한 건 맞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방안을 제시해보는 적극성'을 부릴 용기가 없어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하나 같이 자기 나름대로 '어떻게'를 제시하는 적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떻게'를 제시하는 것은 단정이 아니라 하나의 대안일 뿐이니 독자는 알아서 취하거나 버릴 것이다. 미리 선제적으로 피하는 건 글쓰기를 포기하는 태도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까 의기소침해 한다. 아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뻔한 얘기에 아, 이 사람도 나랑 똑같구나고 공감한다. 또는 자신과 다른 모습에서 어, 이런 사람도 있구나. 자신도 모르는 삶의 방식에 놀라워 한다.


글 쓰는 자는 어느 정도 거짓말쟁이기도 하다. 내가 쓴 글이 정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 거짓이 거짓인지 알지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단계는 중증이지만, 거짓을 거짓인지도 모르고 하는 경지에 이르면 불치병이다. 병이 심각해지지 않게 차분하게 점검하고 솔직함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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