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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Dec 27. 2023

소유한 책 VS 빌린 책





서점에서 산 책과 도서관에서 빌린 책, 결과의 차이는 크다. 나는 아직 내 책을 소유해주기 바라는(내 책을 사주기를 바라는) 작가의 입장이라기보다 독자의 입장에 더 기울어져 있는 사람이다.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품고 있는 사람이기에 이것은 지독한 모순이다. 작가의 책을 사지 않으면서 앞으로 내가 낼 책을 사주길 바라는 작가가 되려는 자.




소유

책을 사서 읽을 때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공산이 크다. 내 소유이므로 언젠가는 읽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미룬다. 읽을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 급하게 닥쳐온 일상의 자잘한 일들 앞에서 소유한 책읽기는 뒷순위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소유한 책은 필사의 동력이 없다. 이미 내 것인데 이것을 또 한번 옮겨 적는다고? 필사의 노동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필요할 때 다시 읽으면 되지 뭐, 하고. 다시 읽을 일은 고사하고 한 번을 제대로 완독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름하여, '소유의 착시 현상'.


읽고 싶은 책을 끝도 없이 사들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사고 싶은 책 하나를 선택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하는 피곤함이 따라다닌다. 선택의 성패는 읽어야만 확인할 수 있고, 실패의 경험이 쌓이면 책 사는 일이 두려워진다. 이름하여, '소유의 무거움'.


책을 사지 않으면, 그나마 간간히 읽던 책읽기도 쉽게 멈춘다. 한번에 완독하지 못한 소유한 책은 책장에 먼지를 뒤집어 쓰며 빛이 바래간다. 감당하지 못할 지경으로 책이 늘어나면 짐짝처럼 어쩔 수 없이 버린다. 또 새로운 책을 사러 나선다. 책을 읽기보다 사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다. 이름하여, '주객전도 현상'.




소유한 책은 다 안다는 착각에 빠진다. 책꽂이에 꽂힌 책등의 제목과 저자를 매일 보면, 친구가 된 느낌을 받는다. 내가 소유한 책에 대해서 누군가가 물으면, 나 그 책 알아, 라고 대답한다. 딱 거기까지다. 읽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말을 보탤 수가 없다.


책을 소유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넘쳐나는 책들에 깔릴 지경이 되거나, 그것을 밟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온다. 책은 정착이 아니라 유목하는 것이다. 소유하고 붙박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다. 책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다.


책을 사야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내 저작물을 쓸 때이다. 반복해서 읽고 분석하며 헤집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내 영혼의 책을 만났을 때이다. 그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소유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다. 마지막은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이다.  




대출

책을 소유하지 않기로 한 순간부터 완독하는 습관이 붙었다. 책사기를 멈추고 책빌리기를 습관화하면서 나의 책읽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내 소유가 아니므로 한정된 시간 (보통 대출기간 2~3주)이 주어진다. 한정된 시간은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하는 힘이 된다.


다시 찾아서 읽으면 된다고? 내 손을 스쳐간 책은 좀처럼 다시 만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서관에는 읽을 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돌고돌아 우연히 다시 빌리게 되는 반가운 책도 간혹 있다. 그 책은 정말 인연인 것이다. 책이 인연이 되는 그 순간에는 반드시 읽게 된다.




도서관 대출을 수십 년 간 하다보니 나름의 원칙이 생겼다. 나의 도서관 대출 방법을 소개하면,  


하나, 반납일은 반드시 지킨다. 반납일에 바로 책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둘, 반드시 일 주일 연장 신청을 한다.  최대한 길게 읽을 시간(3주)을 시간을 확보한다.

셋, 대출 가능한 최대의 권 수를 빌린다. 완독 가능한 책을 만날 확률을 높이기 위함이다. 도서관에 따라 대출 가능 권 수가 차이가 있긴 하지만,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최소 30권에서 최대 40권을 빌릴 수 있다.

넷, 빌려온 책들을 손 뻗어 1m 안 가까운 생활 공간 곳곳에 비치해 둔다. 특히, 이동할 때는 손이나 가방 안에 1권은 반드시 들고 다닌다. 짬짬이 독서가 생활 독서의 핵심이다.

다섯, 모든 책을 다 완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애쓴다고 가능하지도 않다.

여섯, 끝까지 읽혀지는 책이 3~5권은 반드시 존재한다.

일곱, 이런 생활을 루틴화 한다. 3주에 토요일은 도서관 가는 날로 정해진다.

여덟, 한 달에 5~10권 정도 읽게 되니, 1년이면 적게는 50권, 많게는 100권 정도의 책을 읽는 셈이다.

아홉, 대출의 방법을 다양화 한다. 일정기간 동안 작가별, 분야별, 주제별, 관심별, 시기별, 출판사별로 집중적으로 읽는다. 다음 대출할 영역이 자동으로 생긴다.




필사

도서관 책은 내 소유가 아니므로 필사가 필수다. 필사가 빠진 책읽기는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니다. 인간의 기억은 우리가 믿는 것보다 형편없다. 사람들은 기억에 남지 않으니 책읽기는 의미없는 행위라고 치부한다. 이것은 책읽기에 게으른 자기 변명이다. 혹자는 기억에 남지는 않지만, 느낌은 살아있다고 위안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나면 느낌마저 사라진다. 책읽기에서 필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독서의 완결이 필사임을 잊지 말자.




구체적인 필사의 방법을 소개하면,


하나, 필사의 기준을 명확하게 한다. 내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이 필사할 사냥감이다. 남들이 봤을 때 멋있는 문장은 필사의 대상이 아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필사 문장을 다시 읽어도 이유는 재생된다. 생각이 희미하더라도 문장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둘, 나를 건드리는 문장에 띠지를 붙이며 계속 읽어 나간다. 띠지를 쓰지 않고 읽는 동시에 필사에 집중하면 읽기의 흐름이 끊긴다.

셋, 읽기에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환경이 여의치 않으면, 그때까지 읽은 띠지를 떼가며 짬짬이 필사를 하며 문장을 음미한다. 띠지만 잔뜩 붙여놓고 미루어 두면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반납할 때 필사를 끝내지 못한 채 한꺼번에 띠지를 다 떼고 반납해야 하는 고생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넷, 필사의 도구는 스마트폰 메모앱(나는 '에버노트'를 쓴다.)이 접근성이 좋다. 반드시 손가락 노동을 들여 타이핑한다. 타이핑 하면서 반복해서 읽게 되고, 의미를 사유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노트와 볼펜도 좋지만, 접근성이 떨어지고, 피로도가 높으며, 양적으로 빈약해서 필사에 싫증을 느끼게 된다. 필사는 낭만이 아니라, 가치 있는 노동이다.

다섯, 책 읽기의 중간중간 또는 완독 후 필사와 사유의 시간을 반드시 갖는다. 필사의 시간은 중요한 독서의 과정임을 잊지 말자.

여섯, 필사한 문장은 일기나 글쓰기의 모티프나 인용문으로 활용한다. 저술활동을 할 때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일곱, 필사 문장은 모두 아포리즘(잠언)이다. 나만의 잠언 모음집이 완성된다.




소유하지 않을 때 곧 사라질 것에 대해 애틋함이 생긴다. 내 것이 아니기에 잠시 머무는 시간에 최선을 다해 사랑할 수 있다. 소유하는 순간 사랑은 휘발된다. 책과 사람은 순간에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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